1936년 서른 한 살의 조지 오웰은 그해 7월 부터 시작된 스페인 내전에 참가 하기 위해 여러 절차와 준비를 마치고 12월 함께 의용군으로 전선에서 싸울 의지를 불태우는 동지들을 만난다.

나는 스페인에 처음 왔을 때, 그리고 그 후 얼마 동안도, 정치적 상황에는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알지도 못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 알았지, 어떤 종류의 전쟁인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왜 의용군에 입대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무엇을 위하여 싸우냐고 묻는다면 '공동의 품위를 위해서'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조지 오웰

조지 오웰은 동지들을 만나기 전 참전 서류 절차를 밟는 동안 저널리스트로 전선에 참전 할지 의용군으로 총을 들고 복무 할지를 놓고 갈등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신문 기사를 쓸까 하는 생각으로 스페인에 갔다. 하지만 가자마자 의용군에 입대했다. 그 시기, 그 분위기에서는 그것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

20세기 초 가장 잔혹한 최악의 내전으로 기록된 스페인 내전은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총 3년에 걸쳐서  스페인 제2공화국에서 일어난 대규모 내전으로 이곳에서 불붙어 버린 파시즘, 공산주의, 민주주의, 아나키즘, 반동주의, 군국주의, 반군국주의, 공화주의, 군주주의 등 당대 주류 이념들의 격전장이자 제2차 세계 대전의 서막을 알리지는 전쟁이였다.

스페인의 다른 도시와 달리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카탈로니아에서 내전이 시작된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를 뺏아긴 다른 도시의 노동자들이 권리 쟁취 운동을  활발하게 펼치며 다른 도시로  확장 시켜 나갔고 무정부주의자들이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가 활기 치고 다녔다.

1902년 사라고사와 바르셀로나에서 노동자들이 봉기 하며 이때 부터 스페인 혁명의 불씨가 붙기 시작했다. 정부는 탄압으로 강제적으로 노동자들을 해산 시켜 버렸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노동조합원에 가입하는 노동자들이 늘어 나면서 그 세력은 스페인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1902년 부터 1923 년까지 정권이 33번이나 교체되면서 정치적 불안정이 고조 되었지만 세계 1차 대전 기간 동안 스페인 정부는 절대 중립을 지키며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경제 성장을 이어가는 동안 유럽 땅에서 탄압을 피해 날아 온 사회주의자들이 도시 곳곳에 시위와 봉기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1917년 러시아의 피의 혁명의 시작으로 카탈로니아에서 시작된 봉기는 군대의 무력 탄압이 아니고는 막지 못할 정도로 노동자들은 더 이상 맨 주먹으로 울부 짓지 않았다. 1923년 모로코에서 스페인이 반란 진압에 실패 하면서 스페인 내부에서 정치적 갈등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 된다.

결국 프리모 데 리베라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고 군사 독재 내각을 수립하게 된다.

1929년 전세계 공황의 여파로 군사 독재 정권은 흔들리면서 1931년 군주제를 반대하는 혁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공화파는 지방 선거의 압승으로 공화국 수립을 선언한다.

1930년 제 2공화국의 시작을 알리며 혁명위원회는 임시정부를 수립한다.

1930년 스페인에서 발발했던 내전은 시간이 흐를수록 혁명의 양상으로 변질 되고 있었다. 내전 당시 스페인은 제 2공화국 체제 였다.

1931년 6월 좌익계 공화파는 제헌의회 선거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스페인을 '모든 노동자의 민주 공화국'으로 규정하는 민주적 헌법을 제정했다.

1932년 9월 카탈로니아 자치법이 성립되어 카탈로니아는 독자적인 정부와 의회를 가지고 카탈로니아어를 공식어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32년 10월에는 부재 지주의 토지 몰수를 규정한 신농업법을 공포 했지만 보수세력의 반격으로 좌파 정권은 물러나고 1933년 우익 정권의 수장 알렉한드로 레룩스가 정권을 쥔다.

이에 반기를 든 카탈로니아에서 1934년 10월 무장봉기가 일어났고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로니아 국가'를 선포하지만 유혈 진압 당한다.

1936연 1월 선거를 통해 공화파 공화좌파 사회당 공산당등으로 구성된 인민전선 정부가 수립되지만 우익 군부의 탄압으로 전국 곳곳에 수백개의 봉기가 일어난다.

결국 1936년 7월 스페인령 모로코에서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지휘하는 군이 파시스트 반란을 일으키며 본토 각지의 병영에도 파급 되기 시작한다.

군부는 쉽게 쿠데타에 성공할 것이라 예측했지만 노동 계급의 강력한 저항은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등 대도시를 중심은 군부를 막아내는 승리를 거두며 드디어 스페인 내전의 비극이 시작된다.

파시스트 정권인 독일과 이탈리아는 즉각 반란군을 지원하며 물자와 군비를 보내자 소련도 스페인 정부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면서 스페인 내전은 파시즘 대 반 파시즘의 전쟁의 양상이 된다.

작가 조지오웰, 헤밍웨이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은 반 파시즘 전선에 뛰어든다.

스페인에서 벌어진 일은 사실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혁명의 시작이었다. 스페인 외부의 반파시스트 언론은 그 사실을 일부러 모호하게 만들었다. 쟁점은 <파시즘 대 민주주의>로 좁혀졌다. 혁명적 측면은 최대한 은폐되었다. 다른 곳보다 언론의 집중이 심하고, 또 대중이 언론에 쉽사리 기만당하는 영국에서는 스페인 전쟁에 대해서 오직 두 가지 이야기만이 입에 오르내렸다. 하나는 기독교 애국자들과 피를 뚝뚝 흘리는 볼셰비키들의 대립이라는 우익의 이야기였다. 또 하나는 신사적인 공화주의자들이 군사 반란을 진압하고 있다는 좌익의 이야기였다. 이렇게 해서 핵심적 쟁점을 성공적으로 덮어버린 것이다.

 스페인 밖에서는 이곳에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파악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반면 스페인 내부에서는 아무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중에서

생활고를 겪었던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으로 참가 하기 전에 경비를 대기 위해 집안에 있는 은식기를 전부 전당포에 팔아 넘겼고 은행에서 융자까지 신청을 받았다.

조지 오웰은 가족에게 집안의 은식기들을 가문의 문장을 새기기 위해 장인에게 수작업을 의뢰하며 맡겼다고 들러댔다.

집안에 식기들까지 팔아 치우고 모은 돈 빌린 돈을 탈탈 털어 겨우 군복을 구입한 조지 오웰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작가 헨리 밀러는  소중한 생명을 무모한 권력자들이 일으킨 전쟁에 갖다 바치는 건 무모한 짓이라며 자신의 옷장에서 가장 비싼 코튜로이로 만든 정장 코트를 건넨다.


어린 시절 집 근처에서 토끼 몇 마리를 엽총으로 쏴본 경험만 있었던 조지 오웰은 버마 제국 경찰로 복무 했음에도 사격 실력은 형편이 없었고 오합지졸로 구성된 의용군 부대에서 제대로 된 총기나 탄약이 장전된 무기조차 지급 받지 못한 채 서서히 전선의 격전지에서 멀어져 가버린다.


질흙 같은 어두운 밤,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난 한 남자가 바지를 추스리는 모습이 조지 오웰의 총구에 잡혔다.

그는 저 자를 지금 당장 쏠 것인가, 쏘지 않을 것인가 몇 분동안 갈등하며 어쩌면 저렇게 바지를 추스리는 남자가 자신이 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총구에서 눈을 떼버린다.


<동맥이 날아갔구나.> 나는 생각했다. 경동맥이 잘렸을 때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내가 죽음을 예상한 시간이 2분은 되었을 것이다. 그것도 재미있었다. 그런 시간에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아는 것도 재미있다는 뜻이다. ... 나는 이 터무니없는 불운에 격분했다.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이냐! 전투도 아니고 이 염병할 참호 한 귀퉁이에서 순간의 부주의 때문에 죽게 되다니! 나는 또 나를 쏜 사람 생각도 했다. 어떻게 생겼을까. 스페인 병사일까, 외국인 병사일까. 나를 맞히었다는 사실을 알까 등등. 그에 대해서는 분노를 느낄 수 없었다. 그가 파시스트였다면 나도 그를 죽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만일 그 순간에 그가 포로가 되어 내 앞에 끌려 왔다면 잘 쏜 것을 축하해 주기만 했을 것이다. 


구사 일생으로 전선에서 목숨을 건진 조지 오웰은 바르셀로나 병원으로 후송되는 동안 극렬한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포탄 주변 곳곳에 피어 있었던 꽃 향기를 떠올린다.

'우리 흉벽 앞의 총탄 맞은 나무에도 버찌 송이들이 빽빽이 달리기 시작했다.

찻종만한 분홍 꽃송이를 피우는 들장미들이 토레 파비안 주위 포탄 구멍들 위로 흐드러졌다. 전선 뒤쪽에서는 귓바퀴에 들장미를 꽂은 농부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조지 오웰

스페인 내전 전선에서 115일 동안 복무한 조지 오웰은 참혹한 죽음의 늪 속에서 향기를 내뿜으며 피어 있는 꽃을 발견 했고 죽은자의 시신을 덮은 땅 위에 솟구치는 희망을 보았다.


세상의 모든 전쟁의 시작과 끝은 각자의 이권과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대립하는 이들의  돈의 전쟁이다.


무자비한 방법으로 우크라이나 땅을 초토화 시키는 동안 푸틴의 집권은 무한대로 늘어 나고 있고 2009년 부터 이스라엘 총리를 역임하고 있는 벤냐민 네타냐후도 하마스 정권을 뿌리 뽑겠다는 기세로 달려들어 최첨단 무기를 쏘아 대며 장기 집권을 계속 유지 하고 있다.

세계 제 1의 군사력을 갖춘 대국이 전 세계 물류의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인질 삼아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전쟁 종식 이후 평화의 시대 보다 전쟁 발발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많기에 더더욱 전쟁의 양상은 잔혹함을 넘어선 끔찍한 비극으로 치닫고 있다.


총 3년에 걸친 스페인  내전에서 약70만명이 희생되었다.


천지 지변과 같은 자연 재해 앞에 인간은 지구 상에 존재 하는 동물 개체군 중에 가장 취약한 존재 이면서 모든 생명체와 자연을 순식간에 파괴하고 파멸 하게 만들고 있다.


전선에서 살아 돌아 온 나에게 전쟁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우리로서는 막을  수 없는  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일종의 자연 재해로 여겨졌다.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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