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종생은 끝났으되 나의 종생기는 끝나지 않는다” 는 말을 남기고  지상에서 26년 8개월을 살다 간 세기의 천재 시인 이상(李箱·1910 ~ 1937 본명 김해경金海卿)은 어릴 때 백부에게 입양된 후 21살 때 본가로 돌아갔기에 그는  동료 문인들 중에 따스하고 인자한 성품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면 기이한 행동을 했다.  

“이상에겐 아버지가 없었다. 그래서 심리적 고아라는 정체성에 고정될 수밖에 없고, 불가피하게 입양아적 분열증세 상태에 놓인다. 정신을 좀 먹는 이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진짜 아버지를 찾는 것이다.” 

-장석주의 '이상과 모던 뽀이들' 중에서

27살이 되던 어느 해 겨울 시인 이상은 자신의 진짜 아버지를 찾는다며 무작정 현해탄을 건너가 일본 도쿄에서  무국적자로 떠돌다가 체포되어 일본 경찰서에 구금되고 만다.

급히 전보를 받은 이상의 아내 변동림이 부랴 부랴 동경으로 건너가고 폐결핵을 앓았던 이상은 아내의 품 속에서 눈을 감는다.

당시 도쿄 제국대학 예술학부에 재학 중이였던 화가 길진섭은 이상의 아내 변동림의 전보를 받고 그의 시신이 안치된 도쿄 제국대학 부속 병원 영안실로 달려간다.

1930년대 최첨단 통신 수단이였던 '전보'는 위급한 시기는 물론 긴밀한 연락을 주고 받을 때도 유용했던 수단으로 전화가 보급 되기 전 일반 우편을 통한 편지보다 더 빠르게 전달할 수 있었다.  


1837년 미국의 발명가 새뮤얼 모스가 전신부호 특허를 얻어 7년 만에  워싱턴 D.C.와 볼티모어 사이에 전신선로를 설치해서  모스 부호 송수신으로 전신사업 시작하면서 '전보'는 전 세계의 통신 수단 서비스로 널리 이용되었다.

전보 (telegraph)는 멀리서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tele와 쓴다는 의미의  graphein이 합쳐진 단어로 인류 역사에 150년 동안 쓰였다.

20세기 두 차례 전쟁 이후 전화와 팩스, 휴대폰, 인터넷의 통신 수단으로 서비스가 진화 발전 하면서 1세기 넘도록 인류의 최고 통신 수단이였던 '전보' 서비스가 2023년 12월 종료 되었다.

한국에선 1885년 서울과 인천 사이에 전신 시설이 개통되면서  전화가 보급되기 시작한 1960년대 이전까지는 가장 빠른 연락 수단이였고 각 가정마다 전화기가 설치되기 시작한 1980년대까지도 전화와 전보는 전 국민의 통신 수단이였다.

기프티 콘으로 축하하고 격려하고 응원하는 시대에 전보로 격식 있는 메시지를 담아 꽃과 기타 선물을 받는 기쁨이 더 클지 모른다.

전보 통신 시대에는 소식이 전달 되는데 30분 정도 걸렸고 지금 시대에는 단 몇 초면 소식이 전달 되고 단 몇 분 만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간다.

1858년 미국 뉴욕 타임즈  이런 사설이 실렸다.


전보가 큰 문제를 일으켰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피상적이고 돌연 하고 정제되지 않고 너무 빨라 숙고 할 수 없는 전신 정보의 특징이다.

10분 만에 도착하는 조각 뉴스들이  무슨 소용이며 전보 칼럼은 얼마나 시시한가? 죄다 어디는 눈이, 어디는 비가 왔고, 누가 피살되었고, 누구는 교수형 당했다. 같은 내용 뿐이다.

-1858년, 뉴욕 타임스 사설 중에서 

2026년의 뉴스들도 100년 전의 조각 뉴스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 시대 기자들은 사회 곳곳에 스며 있는 우리 사회의 무질서, 불합리, 부조리를 취재 한 기사 보다 유명 연예인이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올린 지극히 사적인 내용을 고스란히 복사해서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각종 포털 뉴스 메인에 올려 놓고 있다.


한 번 출연으로 서민들이 1년 동안 빠듯하게 일해야만 벌 수 있는 소득을  한 번에 벌어 들이는 유명 연예인들과 달리 일반 국민들은 평생 노력해서 근검 절약하게 살아도  내 집 마련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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