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7월, 성난 파리 시민들이 절대왕권의 첨탑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절대왕정이 무너졌다.
1854년 혁명과 전쟁의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산업혁명으로 도시 근대화 작업에 착수한 파리는 17세기 런던시 재정비에 영감을 얻은 오스만 남작이 17년동안 진행했던 도시 재정비 사업으로 도로가 정비되었고 각종 도시 기반 시설들이 구축되면서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 했다.
혁명에 앞장섰던 시민들이 일으켜 세운 파리 곳곳에 시민 공원과 오페라 거리가 들어섰고 그 거리로 다양한 계층의 예술가 집단들이 모여들었다.
1869년 파리 9구역에 개장한 음악홀 폴리베르제르에 술과 음식을 즐기며 공연을 보는 '카페 콩세르(Café-concert)' 들어서자 이곳에 부르주아, 예술가, 성매매 여성들이 몰려 들기 시작했다.
1881년 어느 날 밤, 파리 폴리 베르제르의 바에 병마에 시달리고 있던 화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가 손님을 응대 하고 있는 여자 바텐더 쉬종(suzon)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네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폴리 베르제르의 바의 독특한 내부 인테리어를 유심히 관찰했다.
2층으로 나눠진 공간에 다채로운 빛을 뿜어내는 조명 빛 아래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와중에도 바텐더 쉬종은 시종일관 냉담한 표정으로 손님이 요청에 쉼없이 응대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 보던 마네는 작은 스케치 북에 쉬종과 주변 배경을 빠르게 스케치 하기 시작했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마네는 부산스럽고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작업을 할 수 없어서 쉬종을 작업실로 초대 했다.
쉬종은 근무가 없는 날에 마네의 작업실로 찾아가 모델을 섰고 마네는 건강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현장에서 작업했던 스케치를 토대로 작품 완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마네의 주변 사람들은 폴리 베르제르의 바 그림을 처음 보는 순간 혼란 스러워 했고 비평가들은 원근법을 알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한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이 작품은 일렬로 늘어선 반짝이는 술병과 과일에 둘러싸인 쉬종의 앞모습과 거울에 비춰지는 모습이 불일치 하지는 것 뿐망 아니라 그 형상 마저 정적이지 않다.
이 그림은 거울로 나뉘어진 두 세계를 보여준다. 그림의 중심에 서 있는 쉬종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거울에 반사된 배경엔 그녀가 한 남성과 대화 중이다.
똑바로 서 있는 쉬종의 거울에 비친 모습은 몸 동작과 얼굴 각도가 다르고 반사의 위치도 맞지 않는다.
마네는 이 작품에서 거울과 반사라는 고전적 장치를 활용하면서도, 그 법칙을 의도적으로 무시해서 서로 다른 시점과 시간을 상징적으로 표출 시켰다.
1839년 사진이 발명된 지 약 50년. 『폴리 베르제르의 바』가 완성된 시기는 1882년, 사진은 이미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
거리의 풍경, 사물과 사람의 형상을 사진기로 찍기 시작하고 부터 사람들은 카메라에 포착된 사물과 사람을 찍는 행위를 통해 그 대상을 소유 하고 전유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진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거나 발견하지 못했던 이미지를 보여주는 세상과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사진을 찍은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데로 세상의 모습을 축소 하거나 확대 시키면서 실제로 보이는 사실과 진실을 왜곡 시켜 나갔다.
그동안 신화나 역사처럼 고귀한 소재가 미술의 정석으로 여겨지던 시대에, 마네는 정통 회화 방식으로 현실의 인물과 장면을 대담한 구도로 그려내며 전통에 정면으로 도전 했다.
그는 정통 화단의 주류 세력과 비평가들로 부터 혹독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작품을 살롱에 꾸준히 출품하며 누구보다 과감하게 기존 예술의 규범을 깨뜨려나갔다.

쉬종(Suzon)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무표정한 얼굴과 다소 뻣뻣한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 이 그림이 포착하고 있는 공간에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
가장 먼저 우측에 보이는 거울에 화려한 객석과 함께 쉬종(Suzon)이라는 이름의 여성의 뒷모습과 고급스런 실크 햇을 쓴 남자 손님의 모습이 비스듬히 비추고 있다.
관람객은 거울에 비춰지는 바의 술병과 여인의 뒷모습 그리고 그 여인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남자 손님의 모습이 왜곡된 각도로 보이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거울을 통해 보여지는 시선에서 쉬종(Suzon)이라는 이름의 여성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을 때 보다 남자 손님을 향해 몸을 앞으로 더 기울이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양한 계층과 계급이 드나들 수 있었던 폴리 베르제르 바에서는 음료와 간단한 식사 등을 하며, 음악 연주, 서커스, 춤 등을 즐길 수 있었고 공공연하게 남자 손님들과 여종업원들과 은밀한 거래가 오고 가는 곳이였다.
화가 마네는 거울이라는 도구로 두 개의 서로 다른 시선을 통해 관람객을 정면으로 응시 하고 있는 쉬종(Suzon)이라는 이름의 여성 앞에 놓여진 판매용 술, 과일, 꽃처럼 거울에 비춰진 또 다른 세상에서 성을 사고 팔 수 있는 추악한 현실을 보여주었다.
1863년 ‘올랭피아’로 명암이나 원근을 최소화하고, 평면적인 색과 대담한 구도를 통해 회화를 현실의 창이 아닌, '회화 그 자체'로 바라보게 했던 마네는 전 생애에 걸쳐서 프랑스 예술계를 뒤 흔들며 숱한 화제와 혹평에 시달려 왔다.
하지만 1882년 마네가 이 작품을 살롱전에 출품하자 놀랍게도 관람객들 사이에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평단에서도 호평들이 쏟아졌다.
그동안 마네에게 회화의 기본조차 알지 못한 채 여전히 붓을 쥐고 있다는 조롱을 쏟아냈던 이들이 사진기를 통해 각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 하고 부터 마네의 그림을 이해 하기 시작했다.
마네는 세상의 시선보다 자신의 눈을 믿고 자신의 방식대로 그리겠다는 고집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기도 했다.
사진기에 부착된 렌즈로 볼 수 있는 세상에서 화가는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닌 '그리는 행위' 자체를 되묻는 존재, 즉 현실을 재현한다는 행위에 대한 자기 성찰, 그리고 철학적 자기 해석이 회화로 표출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마네는 주변의 인상파 화가들이 찰나의 빛과 색을 그리는 데 몰두 하는 동안 , 그는 인간의 내면에 스며든 감정과 시대의 공기까지 담으려 했다.
마네는 <폴리 베르제르의 바> 작품이 세상에 공개 된지 1년 후 1883년 1월,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종 도뇌르 훈장(Légion d'honneur)을 받으며 화가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았고 3개월 후 4월 30일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리 길지 않은 생애 동안 쉼 없이 세상을 자신의 방식대로 관찰하며 420여점의 작품을 남긴 마네는 마지막 작품 ‘폴리 베르제르 바’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한 인간의 고뇌와 용기를 담은 '사유의 도구'이자 20세기를 앞둔 세상을 향한 '질문’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