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4분 33초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메일함을 열고 메신저를 확인하고 답장을 보낸다.

-열차에 탑승하기 위해 개찰구를 통과하고 빠른 속도로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등등의 이런 사소한 행동을 할 때도 4분 이상이 넘는 시간이 흘러간다.


인간의 뇌는 4분이라는 시간 동안 모든 오감을 총 동원해서 주변의 상황과 변화를 본능적으로 감지 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와 첫 만남에서 상대방의 인상을 결정짓는 시간이 약 4분 정도 남짓이면 충분하다.

여기, 반 세기 전 한 예술가가 수 많은 관중 앞에서 정확히 4분 33초 동안 연주를 한 적이 있다.


1952년 미국 음악가 존 케이지는 피아노 뚜껑을 열어 놓은 채 피아노 앞에 앉아 '4분 33초'동안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지 않는다.

피아노 뚜껑을 닫고 일어서기를 각 '악장' 마다 반복하다가 정확하게 4분 33초의 시간이 끝나자 연주자는 청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바로 퇴장 한다. 

존 케이지의 작품 4분 33초는 기존의 음악을 향한 반항이였을까? 

아니면 시대의 소음을 향한 저항이였을까?

피아노 앞의 연주가는 연주를 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연 청중들의 뒤척거리는 소리, 기침 소리 그리고 소근 거리는 소리, 자세를 고쳐 않는 소리, 같은 비 음악적 소리들도 '음악'이라고 주장 할 수 있을까?


1950년대 미국 추상주의 시대에 '콤바인 미술(그림이란 삶과 예술에 결합이라고 주창함)'의 선구자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흰색 회화'에서 작품 영감을 받은 존 케이지는 피아니스트에게 음표가 적힌 악보가 아닌 각 악장의 첫 부분의 침묵을 의미하는 [Tacet]과 피아노 뚜껑을 열고 닫는 지시, 각 악장의 연주 시간만 적혀 있는 '흰색 종이' 한 장을 주고 작품 '4분 33초'연주를 맡겼다. 

피아노 뚜껑만 열고 나서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는 연주자, 객석 곳곳에 들려오는 청중들의 소리가 이날 연주회장의 음악이 되었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 연주 속에는 침묵과 소음 그리고 4분 33초 라는 정해진 시간의 규칙이 담겨 있다.


1912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존 케이지의 아버지는 잠수함을 설계 했던 과학자였고 어머니는 L.A타임즈 여성 섹션을 담당했던 저널리스트 였다.

존 케이지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웠지만 음악가가 꿈이 아니였다. 

다양한 분야에 두루 관심을 갖았던 영특한 소년은 같은 곡을 여러 번 쳐야 하는 걸 견디지 못했고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놀림 받는 아이였다.

그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 이외에 미술,무용, 건축 등 다방면으로 관심 영역을 넓히며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대학에 진학 하지 않고 유럽 여행을 떠난다. 

유럽에서 고딕 건축을 1년 정도 공부 한 후 미국으로 돌아와 캘리포니아 대학에 진학해 문학과 언어학, 기호학을 공부한다.


1933년 독일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유대계 음악가 쇤베르크는 곧바로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다.

12음계를 창시하며 무조성 음악의 대가 쇤베르크는 미국에서 유명인사로 환영 받으며 곧바로 캘리포니아 대학과 버클리 음대로 출근한다.

교내에 유럽에서 건너온 스타 음악가 쇤베르크에게 찾아간 존 케이지는 무조건 제자로 받아 달라고 애걸 복걸 한다.

당시 쇤베르크에게 수업을 들으려면 비싼 수업료를 내야 했다.

1935년 존 케이지는 쇤베르크 앞에서 당당히 '수업료로 지불 할 돈이 없다.'고 말한다.

막무가내로 음악을 배우겠다는 존 케이지에게 쇤베르크는 '자네의 모든 삶을 음악에 바칠 수 있는가?'라고 묻자 이제 스무 살을 갓 넘긴 청년 존 케이지는 고개를 끄덕인다.

쇤베르크의 음악 수업을 듣는 학생들 중 반 이상은 중도 포기 했다.



그의 '무조성 음악'은 12 음계를 아무렇게나 배치 해서 불협 화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불협화음을 만들기 위해 각각의 음표를 수학적 계산 법을 통해 창출 해낸 것이 였다. 

화성학-대위법으로 넘어가면서 존 케이지도 한계의 벽에 부딪치고 스승 쇤베르크는 통과 하지 못하는 벽을 만났다면 떠나도 좋다는 말을 한다.

2년 동안 쇤베르크에게 음악을 배운 존 케이지는 돈을 벌기 위해 캘리포니아 대학 무용 클래스 피아노 반주자로 일하며 여러 소음과 동작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연구 하기 시작한다.

당시 존 케이지는 무용과에서 비좁은 무대 위에 피아노와 타악기를 배치 해 놓고 연주를 하게 되니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돌연 피아노 뚜껑을 열더니 피아노 줄에 못-볼트-너트를 부착 하고는 이 상태로 건반을 누르기 시작한다. 피아노 줄에 장착된 못-볼트-너트로 인해 불안정해진 음정은 서서히 쿵쾅거리는 불협 화음으로 바뀌더니 이내 누군가 둔탁한 소리로 연주 하는 타악기 소리로 변한다.


케이지가 개발한 이 악기는 '준비된 피아노(Prepared Piano)'로 당시 음악계는 그에게 피아노 연주 실력이 좋지 않으니 전위 예술로 실력을 감추고 싶은 거냐는 비아냥 소리를 퍼부었다. 



1944년 작품인 ‘A Room’은 존 케이지가 피아노에 볼트를 장착하고 연주한 작품으로 

마치 인간의 맥박이 일정한 속도와 간격으로 뛰듯이 4, 7, 2, 5; 4, 7, 3, 5라는 리듬 체계로 구성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보수적인 악기, 쉼 없이 조율해야 하는 피아노를 연주자에 따라 다양하게 변할 수 있는 가장 진보적인 악기로 만들어 버렸다.



2차 대전을 피해 유럽에서 미국 뉴욕으로 건너온 예술가들 뒤샹, 몬드리안, 잭슨 폴록, 막스 에른스트는 존 케이지의 연주법을 하나의 행위 예술로 보고 열광한다. 


개념 예술가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을 보고 모든 소리는 음악이 될 수 있다고 깨달았던 존 케이지는 악기가 내는 소리를 넘어 종교의 소리, 불교, 힌두교를 탐구 하기 시작한다.

소년 시절 부터 쇤베르크 음악에 심취 하며 그의 제자가 되고 싶었던 '백남준'은 1959년 독일 다름슈타트 국제 현대 음악 여름 학교에서 존 케이지 연주를 듣자 마자 큰 충격을 받는다.

















백남준은 자신의 예술 세계는 존 케이지를 만나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며 1970년 <Tribute to John Cage> 비디오 작품을 존 케이지에게 헌정 했다.

소리의 명확히 정의된 대립물은 침묵이며 음길이는 침묵을 측정할 수 있는 유일한 소리의 특성이므로, 소리와 침묵을 포함한 모든 타당한 구조는 서양의 전통대로 진동수가 아니라 음길이에 기초해야 한다.

​-존 케이지 


음악이란 전문 교육을 받은 음악가 만이 연주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 아니다. 

우리 모두 매 순간 다양한 소리를 내며 음악이라는 틀 밖에서 끊임 없이 연주 하고 있는 것이다.

만물은 끊임없이 변하고 세상에 정해진 건 없이 언제나 우리 삶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세상에 완전한 침묵도 완전한 소음도 없다.













‘어떤 것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분별심을 내지 말라.

덧없는 세상에서 살아 있음에 머물려고 하지 말라.

깊이 생각하며 부지런히 정진하며 

이 세상 모든 건 내 것이 아니다

생과 죽음 근심과 슬픔을 버리고

지혜를 찾아 세상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라.

-숫타니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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