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하얼빈시 근교에 위치한 핑팡 지구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대부분 '핑팡'이라는 지명을 무심히 듣고 넘기겠지만, 어떤 이들은 핑팡을 '아시아의 아우슈비츠'라고 불렀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전쟁 기간 동안 일본 제국 육군 제 731부대가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고 인체 내구력의 한계를 조사하는 연구의 일환으로 수많은 중국인과 연합군 포로에게 끔찍한 실험을 자행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지 안에서 일본 육군 소속 군의관들은 의학 실험 및 무기 실험, 생체 해부, 신체 절단을 비롯한 조직적인 고문 등을 통해 중국군과 연합군 포로 수천 명을 직접 살해했습니다. 종전이 가까워지자 일본군은 철수 준비를 하면서 남아 있던 포로를 모두 살해 하고 시설을 모조리 불태웠습니다. 남은 것은 본부 건물의 잔해와 병균의 숙주로 이용된 쥐를 사육하던 구덩이 몇 개 뿐이였습니다.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켄 리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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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계 미국 작가 켄 리우의 단편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의 중심 스토리는 일본 731부대로 1940년 중국 하얼빈의 버려진 공장에 차려졌던 일본 군부대의 거대한 생체 실험 현장을 시간여행이라는 상상력으로 펼쳐 보인 작품이다.
여성 물리학자 아케미 기리노는 실험 연구를 수행 하던 중에 '뵘기리노'라는 초미세 입자를 발견하게 된다.
이 입자는 공기 속에서 보이지 않지만 입자를 빛의 속도로 관측하면 과거의 일시적인 공간의 시간과 소리 , 냄새를 초음파로 기록 할 수 있는 입자다.
이 입자를 통해 시간 여행을 하게 된 기리노 박사는 1940년 만주 '핑팡' 공장 지대를 선택한다.
기리노 박사는 '입자'로 하는 시간 여행이기 때문에 이를 경험할 피실험자가 필요해서 모집 공고를 낸다.
이 응모자로 선발된 릴리언이라는 여성은 자신의 고모가 731부대 생체 실험장에서 희생되었다는 이유로 자원해서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드디어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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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켄 리우가 철저한 자료와 기록 문건과 문헌을 토대로 완성한 이 단편 속에 일본 731부대가 인간에게 저지른 잔혹한 실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포로의 팔을 지속적으로 강도를 높여서 때려서 팔안의 혈액이 고체가 될 때까지 때리는 실험
-밀폐된 방안으로 포로들을 집어 넣어서 기압을 높여 '터져' 죽을 때까지 관찰하는 실험
-포로이 양팔을 절단해 각각 반대쪽에 접합하는 실험
-매독 감염 경로를 실험 하기 위해 온갖 실험균을 투입한 남녀 포로에게 성교를 자행 시키는 실험
릴리언은 이런 반 인륜적인 실험을 목격하고 마침내 자신의 고모를 발견하게 된다.
731부대의 생체 실험소로 끌려갔던 릴리언의 고모는 임신한 상태로 잔혹하게 희생 당한다.
작가 켄 리우는 이 작품의 릴리언의 시선과 입을 통해 731부대의 거대한 인체 실험장에서 매일 의사들과 군의관들이 여성들을 강간하고 성폭행 하며 집단으로 만행을 저지른 역사적 사실을 폭로 한다.
일본 731부대가 저지른 만행의 잔혹함은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자행 되었던 걸 넘어섰고 이 전쟁 범죄자들은 단 한 명도 처벌 받지 않았고 군사재판에 넘겨지지도 않았다.
미국의 맥아더 장군은 731부대가 실험하고 자행했던 잔혹한 실험들이 소련으로 넘어갈 까봐 서둘러 덮어버렸고 자료나 증거는 모두 없애버렸다.
중국 공산당은 자신들의 무능이 인민에게 들통 날까봐 모른 척 했다.
미국에서 출간 된 켄 리우의 2017년 단편집 <종이 동물원>에 수록된 총 14편의 단편 맨 마지막에 실려 있는 <역사의 종지부를 찍는 사람들>은 일본에서 이 단편만 번역되지 않고 13편만 편집 번역 출간되었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역사의 종지부를 찍는 사람들>을 일본어로 읽어 본 적이 없다.
중국 당국은 작품에서 공산당이 언급된 단어와 문장은 삭제 해 버리고 기이하게 편집해서 번역 출판했다.
켄 리우는 이렇게 역사적 진실을 지워 버린 일본과 중국에 항의 하지 않고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영어 전문을 올려 놓았다.
<역사의 종지부를 찍는 사람들>은 80여페이지 분량의 짧은 단편이지만 등장인물들의 회고와 심층인터뷰, 기조 연설 영상과 법정 증언 그리고 TV토론과 길거리 인터뷰가 정교하게 맞물려서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미국 하원외교 위원회 아시아 태평양 지구 환경 소위원회 청문회장 자리에 소환된 전범인 야마가타 시로의 증언, 취재 기자들, 군부대 시설에서 일했던 식당 종업원,생체 실험장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사람들의 공통된 증언들은 다음과 같다.
-전쟁 중엔 나쁜 일이 벌어지니 잊고 용서해야 한다.
-가해자들이 모두 죽은 상태에서 누구에게 보상을 받아야 하나?
-중국이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 사람들에게 못되게 굴었으니 그 업보가 아닌가?
전쟁 중에 포로들에게 자행 되었던 전쟁 범죄 행위에 대해 이야기 할 때마다 이를 부정하고 반박하는 세력들이 있다.
이들은 진실을 말하는 자의 입을 틀어 막고, 언론의 눈을 가리고 대중들을 현혹 시키는 선전과 기만 전술을 펼쳐서 범죄 사실을 덮어버린다.
어떤 국가도 어떤 역사학자도 진실을 온전하게 알 수도 없고 밝혀내지 못한다.
하물며 일개 작가나 감독 기타 다른 예술 작업으로도 결코 진실에 다가 갈 수 없다.
켄 리우는 <역사의 종지부를 찍는 사람들>의 주인공 릴리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너무 오랫동안 역사학자들은 그리고 우리 모두는 망자들의 착취자 노릇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과거는 죽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발 딛는 곳마다 마치 창밖을 내다보는 것처럼 죽은 이들의 고통은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비명을 들으며 유령들 사이를 걷고 있는 겁니다. 눈을 돌릴 수도 없고 귀를 막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말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 보고 말해야 합니다.
바로 잡을 기회는 오직 한 번 뿐입니다.'
-켄 리우
일본은 지난 세기 조선과 동아시아 전체에 저지른 극악한 전쟁 범죄에 대해 단 한 번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일본 국가가 파렴치한 행동과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과 달리 매년 2월이면 일본 후쿠오카의 '모모치 서쪽 공원'에서 하늘의 별이 된 시인 윤동주 추모식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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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전문학교 졸업 후 일본 교토의 도시샤(同志社) 대학교 문학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던 윤동주는 1943년 ‘조선 독립을 논의하는 유학생 단체에서 활동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1944년 4월 1일 교토지방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고 형이 확정되자마자 윤동주는 윤봉길 의사가 수감되었던 오사카 위수형무소가 아닌 260km 가까이 떨어진 후쿠오카 형무소로 보내진다.
절친이자 고종사촌인 송몽규도 4월 17일에 형이 확정되어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 된다.
1944년 11월, 첫 연합군(미국과 영국)에 의한 일본 본토 공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미군 공습으로 중상을 입어 출혈 다량으로 죽은 환자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일본은 자국민 환자 치료를 위해 혈액을 대체할 용액이 절실하였다.
대부분의 부상자들이 규슈제국대학 병원으로 이송 되고 당시 대학 병원 응급의였던 의학부 이시야마(石山) 교수는 규슈와 인접한 하카타만의 해수를 사용한 대체혈액을 주입하고, 혈압을 높여, 수혈할 수 있는 시간을 벌고자 했다.
하지만 당장 동물 실험을 할 시간이나 여유도 없고 자국민에게 시도 해 볼 수 없게 된 이시야미 교수는 포로 수용소의 사형 선고를 받은 사형수를 생체 실험으로 사용 해도 된다는 허가를 의학 박사 출신인 문부대신 하시다 구니히코에세 승인을 받는다.
패전 후 미군정의 지배를 받는 동안 일본은 미군 포로에게 이 생체 실험을 했다는 사실만 인정 했다.
[ 처참한 생활 속에서도 윤동주는 오히려 한 마리 가을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귀담아 들었으며 고마워했다. 그래서 그 정결한 문체로 ˝너의 귀뚜라미는 홀로 있는 내 감방에서도 울어준다. 고마운 일이다‘‘라고 써보냈다. 아아! ˝고마운 일이다˝라니! 읽어내리기에 그저 목이 메인다. 그 간악한 일제 감옥의 인간 이하의 취급도 그의 관유하고 고결한 인품에 아무런 손상을 입히지 못했음을 이 구절은 통렬하게 증언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려고 한 그의 정신은, 그가 처한 처참한 상황을 그토록 맑고 지순한 모습으로 견디어내고 있었다.]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 중에서
한국이 반 세기 넘도록 일본에게 어떤 사과도 받지 못한 채 굴욕적인 외교를 하는 동안 2010년 부터 일본의 한 시민 단체에서 일본 전국에서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된 한국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생체실험이 있었다는 조사를 하기 시작한다.
일본에 '시인 윤동주를 사랑하는 모임' 측에서 강력히 항의를 하며 국제 사회에 널리 알리기 시작하자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공식 입장이 아닌 우회적으로 생체실험의 대상을 미군포로로 한정하였으며, 당시 의문사를 당한 윤동주와 송몽규의 사인이 생체실험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고 강력히 부인했다.
2019년 2월 10일에 NHK에서 반영된 윤동주 다큐멘터리 <詩人·尹東柱を読み継ぐ人々(시인·윤동주를 읽어 내려가는 사람들)>에서 윤동주가 당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어떤 생체 실험을 당해 죽었는지 상세 하게 나왔다.
1944년 5월 27일. 후쿠오카 외과학회에서는 '대체혈액'에 대한 의학 세미나가 진행 된다.
당시 세미나를 주도 하고 발표자로 나선 이시야마 교수는 '대체 혈액'의 시급성과 생체 실험의 필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체혈액으로는 일본 바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바닷물을 희석해 멸균하여 만든 용액이 적합한데 이를 사람의 동맥에 희석하지 않은 해수용액을 직접 주사하면 진통을 가라앉히는데 효과적이다"
1944년 윤동주와 함께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독립유공자 김헌술씨의 진술에 의하면, 당시 교도소 의사가 수감자들에게 간단한 덧셈 뺄셈이 적혀 있는 암산 용지를 2~3장씩 나누어 주면서 일정 시간 내에 암산해서 연필로 답을 적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답안지를 거두고 , 주사기를 꺼내 수감자들 정맥 혈관에 5cc~10cc 정도의 주사액을 주입했다.
수감자들이 교도소 의사에게 무슨 용액을 주사 하냐고 묻자 말없이 웃기만 했다.
그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고 난 후 며칠이 지나자 암산 능력이 거의 반으로 떨어졌고 일주일이 지나면서부터 암산 능력이 더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간단한 풀이 조차 풀지 못하게 된다.
당시 수감자들은 우리 모두 일본에 생체 실험을 당하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1944년 11월 부터 매일 5cc~10cc 정도의 주사액을 주입 당한 윤동주는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둔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다.
아들의 시신을 거두라는 연락을 받은 아버지와 당숙은 후쿠오카 형무소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송몽규를 면회했다.
뼈만 남은 송몽규는 윤동주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놈들이 주사를 맞으라고 해서 맞았더니 이 모양이 되었고 동주도 이 모양으로…".
송몽규와의 면회를 마친 아버지와 당숙에게 후쿠오카 교도소 측은 시체 안치실에 누워 있는 아들의 시신을 보여준다.
교도소 측은 윤동주의 병명이 고혈압, 동맥경화증인 '뇌일혈' 이였다며 수감자가 죽기 전에 규슈제대에 해부용으로 쓸 수 있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겨서 방부제를 시약해 놓았다는 시뻘건 거짓말을 한다.
패전 후, 수감자들에게 대체 혈액을 주사하며 생체 실험을 주도 했던 이시야마 교수를 포함하여 규슈제대의 의학 교수 5명과 제1외과 소속자들은 조교수, 강사, 대원학생, 간호부장까지 모두'규슈제대 생체해부 사건(九大生體解剖事件)'이라는 죄목으로 체포된다.
미군정에 의해 B급 전범 재판을 받게 된 이 악마들은 첫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생체 실험을 주도 했던 이시야마 교수는 자살하고 다른 악마들은 교수형, 종신형, 중노동형 등을 받는다.
재판이 종결 되고 나서 일본 재판부는 미군 포로를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을 인정하는 것만 공식 문서로 남겨 두었다.
2019년 이 다큐가 방영되자 마자 일본측은 비로소 윤동주의 사인을 생체실험으로 인정했지만, 여전히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생체실험 여부에 대해서는 공식 문서로 증명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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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유고 시집'. 연세대학교
일본 중등 국어 교과서에 작품이 실리는 국민 작가 이바라키 노리코(1926∼2006년)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일본의 생체 실험으로 사망한 윤동주의 시를 자신의 수필집에 인용하면서 일본 전 국민에게 시인의 작품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도쿄에서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교회(詩人尹東柱を記念する立教の会)'와 교토의 '시인 윤동주를 추모하는 교토회(詩人尹東柱を偲ぶ京都の会)' 그리고 후쿠오카의 '후쿠오카·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福岡·尹東柱の詩を読む会)'이 생기면서 일본 전역에서 윤동주 시를 읽는 사람들이 늘어 나기 시작한다.
이들의 힘으로 현재 교토예술대학 캠퍼스로 바뀐 윤동주의 하숙집터에 시비가 세워졌고 시인이 친구들과 송별 소풍 마지막 날 사진을 남긴 교토 우지강 인근에는 2017년 윤동주 시를 읽는 이들과 지역 주민들이 중심이 돼 건립한 기념비 '기억과 화해의 비'가 있다.
나는 종점을 시점으로 바꾼다.
내가 내린 곳이 나의 종점이요. 내가 타는 곳이 나의 시점이 되는 까닭이다. 이 짧은 순간 많은 사람들 사이에 나를 묻는 것인데 나는 이네들에게 너무나 피상적이 된다. 나의 휴머니티를 이네들에게 발휘해낸다는 재주가 없다. 이네들의 기쁨과 슬픔과 아픈 데를 나로서는 측량한다는 수가 없는 까닭이다. 너무 막연 하다. 사람이란 횟수가 잦은 데와 양이 많은 데는 너무나 쉽게 피상적이 되나 보다. 그럴수록 자기 하나 간수하기에 분망하나 보다.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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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은 매년 현대 시인 100선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1위에 뽑히는 시인이지만 모교 연세대학교를 제외 하고 전국적으로 윤동주 시인을 기리며 시를 읽는 이들을 찾아 보기 힘들다.
심지어 국가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이나 권력자들은 시인의 추모식이 열리는 연세대학교 윤동주 기념관을 방문은 커녕 권력 1인자가 되기 위해 '별의 순간'을 잡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다.
어차피 세상의 만물은 모두 죽으면 하늘의 별이 아닌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운명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序詩>(서시), 1941.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