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스트 Axt 2022.1.2 - no.040, 커버스토리 한강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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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 이후 스웨덴 한림원 측과 공식적인 인터뷰를 한 작가 한강은 여러 달 전에 참석 의사를 밝힌 포니 정 시상식의 모습을 드러낸 것을 제외하고는 겸손하면서 낮은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일주일에 시간이 지났고 작가의 작품을 읽고 싶어 하는 독자들의 열풍은 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 작품이 이토록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적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연일 매진과 품절의 소식이 날아 오고 있다.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열 달 정도에 걸쳐서 이룬 백만부 판매 고지에 단 몇 일 동안 분당 수십권씩 판매되는 기록을 세우고 있는 작가의 출간 작들은 1994년 첫 시집을 발행 한 이후 지금까지 30년 동안 꾸준한 필력으로 쌓아 올린 결과물인 것이다.

은둔형의 내향적인 작가 한강의 오래전 인터뷰들과 영상들, 기고글, 그리고 직접 작사 작곡을 한 음악까지 모두 화제가 되고 있고 지인들에게 추천한 책들, 아버지 생일 날 선물한 책들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책들의 판매 부수가 올라갈 정도로 작가 한강의 말과 글은 읽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시대에 찾아 읽는 열정의 불을 지펴 놓았다.

2년 전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작가가 문예지 Akt에 실린 인터뷰 글을 다시 읽어 보니 단 한 순간도 세상을 향한 따스한 눈길을 거둔 적이 없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있다.

<작별>을 쓰게 된 계기는 먼저 눈사람이 된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런데 눈은 녹잖아요. 무엇이 이 사람을 녹게 할까? 이 사람을 녹게 하는 건 따뜻함이고 사랑이죠. 그러니까 눈사람에게는 뜨거움이 죽음인 거죠. 따뜻함이 죽음이고 눈물이 죽음이고, 사랑이 죽음이고 그걸 생각했을 때 소설을 쓰기 시작 할 수 있었어요.

-한강 인터뷰 중에서


작가 한강은 언젠가 독자들과의 만남의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는 사는 대로 소설을 쓰진 않지만 소설을 쓰는 동안 어렴풋이 떠오르는 형상, 강렬한 이미지가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그 이미지에서 어떤 소리가 들릴 때 메모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건 싸우는 소설이야 들썽 들썽 흔들리고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전진하고...

이렇게 메모해 나가면서 이미지들의 조각들이 맞춰지고 서서히 그 이미지들이 움직이며 제게 말을 걸어 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틀이 갖춰져서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는 동안 죽음 가까이 갔다가 절반을 살고 절반은 죽은 상태로 되었다가 마지막 순간 마침표를 찍을 때 불을 켜고 현실의 제 삶으로 되돌아 옵니다.'

-한강

(c)La vegetariana - Daria Deflorian

채식주의자를 연극 무대에 올리는 연출가이자 배우 다리아 데플로리안은 2018년에 함께 영화 작업을 했던 유명 여배우가 추천한 한강의 책을 읽자 마자 강렬한 감동에 휩싸여서 연극 버전으로 무대에 올리기로 결심한다.

다리아 데플로리안은 채식주의자를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 번역본으로 읽고 나서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의 심리를 깊이 이해 하기 위해 '흰’ ‘희랍어 수업’ ‘작별하지 않는다’를 연속적으로 읽고 영혜의 마음, 그녀의 언니와 형부의 마음 그리고 남편과 시댁 식구들의 겹겹이 감춰진 감정의 실타리를 하나 씩 풀어 나가기 시작한다.

죽는 게 왜 그렇게 끔찍한가요?(Why is it so terrible to die?)

-채식주의자


30년 동안 작품을 써온 한강의 글을 단 몇 줄만 읽어도 작가 고유의 문체에 담긴 목소리가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작가의 필력은 언어로 만들어 놓은 감각 그 자체다.

어떤 언어로 번역 되어도 한강의 작품들은 시적인 산문 속에 드리워진 기괴한 아름다움에서 뜨거운 삶의 희망을 발견하게 되어서 죽음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결국엔 삶으로 가는 소설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이해 하기 위해서 '흰’ ‘희랍어 수업’ ‘작별하지 않는다’를 연속적으로 읽은 연출가이자 배우 다리아 데플로리안은 이렇게 말했다.

'작가 한강의 작품엔 교향곡처럼 음표가 있고, 주제가 있다. 돌아오는 후렴구도 있다. 매번 인간성, 운명, 자매의 사랑, 전쟁과 폭력 등의 후렴구가 계속 돌아온다. 그러면서도 작품은 인류에 대한 위대한 사랑을 말한다.”

30년 전에 발표한 작가 한강의 첫 시 <서시>의 이런 시 구절이 있다.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 안고

오래 있을 꺼야.


언제 어디서든 흘러 넘치는 영상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 시대에 우리들 각자는 몇 날 몇 일 동안 화제의 중심에선 인물이나 즐겨보는 드라마와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에 대한 것을 검색하고 찾아 보며 웃고 즐기는 것에 익숙하다.

인간이 창작한 활자에 새겨진 이야기 속에 인물들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언제인가...

한 없이 버거울 정도로 힘겹게 생을 이어가고 있는 소설 속의 그 남자, 그 여자는 누구의 삶이였던가....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소설들 속에 수천, 수 만명의 사람들이 박제 되어서 누군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한 줄씩, 한 점씩 세상 밖으로 튀어 나와 말을 걸고 웃고 울며 함께 걷는다.

'누군가 앞으로 뭘 쓸 거냐 라고 물을 때 마다 저는 항상 '사랑'에 대한 소설을 쓸 것이라 대답하죠.

막 소설 한 편이 끝나려고 할 때 괄호 속에 들어가 있던 모든 것이 둑을 넘듯 조용히 몸속으로 다시 흘러 들어올 때 언제나 저는 더 머뭇거리고 싶어지고 더 쓰고 싶어지고 더 숨을 불어 넣고 싶어집니다.'

-한강,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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