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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말 ㅣ 풍요의 바다 2
미시마 유키오 지음, 유라주 옮김 / 민음사 / 2024년 7월
평점 :
'풍요의 바다'(Sea of Fertility)는 달의 동반구에 있는 달의 바다 중 하나로 행성 달의 다른 바다들과 달리 '메스콘(중력이 유난히 강한 곳)'이 없다.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문예 월간지 ' 신초'에 '풍요의 바다' 대작 연재를 시작하고 제 1편 '봄눈'의 마지막장 말미의 부기에 '풍요의 바다'는 '하마마쓰 중납언이야기'를 전거로 삼은 꿈과 전생을 다룬 이야기라는 부연 설명을 붙였다.
미시마 유키오의 <풍요의 바다>는 1965년부터 시작해서 1971년까지 총 4부작을 완결 하는데 5년 정도에 시간이 걸렸고 원고용지 총 6000장을 넘긴 대작이다.
1부'봄눈'의 시대 배경은 1910년대 전후로 스무살의 나이에 세상을 뜨는 기요아키가 그다음 이야기에서 특정 신체부위에 동일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다른 모습으로 환생해서 친구 혼다 시케쿠니 삶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차는 벌써 도쿄 시가에 들어 섰고 하늘은 선명한 남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새벽녘 하늘에 걸린 구름은 도회의 지붕위로 길게 뻗쳐 있었다. 혼다는 한시라도 빨리 차가 도착하기를 빌면서도 이번생에 다시는 없을 기이한 하룻밤이 밝아오는 것이 아쉬웠다. 잘못들었나 싶을 만큼 몹시 미약한 소리가 등뒤에서 들려 왔다. 아마도 사토코가 벗은 신발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모래 소리 같았다. 혼다에게 그 소리는 더없이 아름다운 모래 시계 소리처럼 들렸다.
-미시마 유키오의 <봄 눈> 중에서
풍요의 바다 2부의 제목은 달리는 말(奔馬)로 한국어로는 분마 일본어로는 혼바로 읽는다.
풍요의 바다 2부를 읽던 중에 한자어 사전을 뒤적이다가 [달리는 말 奔馬]가 박경리 작가의' 토지'에이 단어가 나왔다.
빨리 달리는 말.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기도 아니거니와 그간 지삼만이 저질렀던 저열한 방법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며 그의 분마(奔馬) 같은 독주에 이를 갈며 분노하기도 했으나 실상 윤도집이 환이를 위험시하고 있는 것에는 다소 한계를 넘는 것이 있었다.
-박경리의 <토지> 중에서
부끄럽게도 토지 7권에서 읽다가 멈추었고 미시마 유키오의 <달리는 말>을 읽다가 奔馬(분마)라는 단어를 이렇게 쓰고 있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되었다.
미시마 유키오가 풍요의 바다 2부를 집필한 기간은 1966년 12월부터 1968년 6월까지로 이 기간동안 일본은 잿더미가 된 한국전쟁을 발판 삼아 활기차게 경제를 일으켜 세우며 경제 굴기를 내세웠던 '쇼와시대'가 배경이다.
이 시기에 발생했던 '혈맹단 사건'이 2부작 '달리는 말'의 핵심 주제로 집필 당시 미시마는 직접 수첩과 녹음기를 들고 사건을 취재해서 사실을 바탕으로 '신풍연의 난( 일명 사족 반란) 메이지 시대 때 번의 사족들이 일으켰던 난에서 활약했던 인물들 170명중에 난을 주도 했던 인물 '경신당' 세력파를 작품에 핵심인물에 투영 시켰다.
미운 사람을 죽이는 건 간단하다. 비열한 사람을 쓰러뜨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는 그런 식으로 적의 인간적 결함을 들어 스스로를 이해시키며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구라하라의 커다란 악은 자기 안전을 위해 세이켄 학원을 매수하는 작고 하찮은 악과 연결되어서는 안 됐다. 신풍련의 젊은이들도 구마모토 진대 사령관을 결코 그런 작은 인격적 결함 때문에 죽이지는 않았다.
이사오는 괴로움에 신음했다. 아름다운 행위란 얼마나 망가지기 쉬운가. 자신은 아름다운 행위를 할 가능성을 불합리하게도 송두리째 빼앗겼다. 그저 그 한 마디 때문에!
-미시마 유키오의 <달리는 말> 중에서
풍요의 바다 2부 <달리는 말>에서는 전작 '봄눈'의 기요아키가 환생한 '이사오'가 애독하는 각종 정치서 교육서 철학서들이 대거 등장한다.
작품에 서술한 일부 책들은 미시마 유키오가 다시 번역했는데 그 이유는 메이지 시대 때 넘쳐 흘러 들어온 각종 서양 서적들을 까막눈에서 조금 벗어난 사무라이들이 번역하거나 성직자들과 신부들이 번역한 것들을 이리 저리 짜집기한 사상의 잡서였기 때문이였다.
이런 번역물을 참고 삼아 작가 미시마도 작품에서 사상의 범람의 시대에 표류 했던 잡서들을 '이사오'가 읽게 만들었다.
1부 <봄눈>에서 일본 귀족들의 덧없고 허무한 감정을 펼쳐 보였다면 2부' 달리는 말'에서는 시대를 변혁 시키겠다는 기세로 펄펄 끓어 오르는 혁명가들과 광신자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피의 세계가 펼쳐진다.
'하마마쓰 중납언이야기'는 11세기 말 헤이안 시대 스가와라노 다카에의 딸이라는 여류작가의 작품으로 이야기의 중심 축은 윤회의 전생담으로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았다.
미시마 유키오는 이 이야기의 커다란 틀을 '풍요의 바다' 4부작의 전체 구성으로 가져왔다.
미완성의 삶을 살다 간 인물이 그다음 번 시대에는 다른 모습으로 동일한 신체 특징을 갖고 시대를 초월하며 다른 인물로 살아간다.
풍요의 바다 4부작의 시대적 배경은 메이지 시대 말기 (1910년 전후)부터 1975년 여름까지로 미시마 유키오는 자신이 살아보지 않았던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불교의 윤회설에 투영 시켜서 일본 근현대사의 모습을 병풍처럼 엮었다.
마지막 4부작은 1970년 시대를 다룬 '천인오쇠'天人五衰)는 천인이 죽을 때 쯤 나타나는 다섯 가지 쇠하여지는 모양(模樣)을 의미 하는데 첫째 몸에 빛깔이 흐려지고, 둘째 나쁜 냄새가 나며, 셋째. 겨드랑이에 땀이 나고, 넷째 화만이 마르며, 다섯번째 스스로에 자리가 즐겁지 않게 된다.
미시마 유키오는 1970년에 할복 자살했지만 마지막 '천인오쇠'는 1971년 1월에 실렸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풍요의 바다 1부, 2부를 연달아 읽고 폭풍 눈물을 흘리며 일본에도 이런 서사 구성을 갖춘 문학이 탄생했다면 탐복 했지만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일본 군국주의를 외치며 웃통을 벗고 돌아 당기는 동안 집필했던 3,4부작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도 내리지 않았다.
영역본 1,2부는 미국 번역가 마이클 갤러 (Michael Gallagher1930년생)가 번역해서 1973년 미국에서 이 책으로 내셔널 북어워드를 받았다.
그는 개신교 선교사로 3년 남짓 일본에 체류하며 영어를 가르쳤고 한국 부산에 잠시 체류한 적이 있었다(전쟁 당시 낙하선 부대원으로 전쟁 후에는 선교 목적으로 체류함)
마이클 갤러는 미시마 책 두 권을 번역한 후 엔도 슈사쿠 책을 번역하고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연극을 가르치면서 일본 출판사 고단샤에서 출간한 영어 일본어 사전을 편역 했을 정도로 일본어 천재 였다.
3부 '새벽의 사원'의 번역은 두 명의 일본어 전공 학자들이 공동 번역을 했다.
공동 번역자 중 한 명인 세실리아 세가와 세이글레( Cecilia Segawa Seigle)은 하와이로 이주한 일본계 미국인자 하와이 주립대학에 동아시아 언어 문명사학과에 학과장으로 그녀는 이 번역으로 일본정부가 수여하는 온갖 훈장을 목에 주르륵 걸으며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했다.
또 다른 번역자 DE Saunders은 1919년생으로 정통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하버드에서 철학을 공부 하다가 불교에 입문해서 일본어에 빠진 학자다
마지막 4부 번역은 일본어 번역가로 유명한 에드워드 G · 사이 덴 스티커로 그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상을 수상 할 수 있게 만들며 미국 출판계에 일본 소설 붐을 일으킨 인물이다
에드워드는 대학에서 경제학과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해병대 어학장교로 일본 파견 당시 온갖 서류를 해독하려고 일본어를 배웠다.
미군은 에드워드의 뛰어난 일본어 실력과 번역을 통해서 일본 문화를 익힐 정도로 그는 일본의 언어 뿐만 아니라 문화 역사에 대한 지식이 대단했다.
에드워드는 종전 후 미국으로 돌아와서 외교관 시험에 단번에 합격 한 후 예일대와 하버드대에서 일본문학을 본격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1948년 그는 일본으로 다시 돌아와서 일본 정치인들에 파벌과 귀족, 화족들의 재산서류들을 분석 하는 일을 담당(일본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신흥 재벌 기업들에 사유재산을 추적하는 일도 함)하며 도쿄 대학에서 일본문학을 공부하는 열혈 학구파로 살았다.
그렇게 일본의 모든 걸 섭렵하겠다는 기세로 달려 든지 단 2년 만인 1950년부터 '겐지 모노 가타리'를 줄줄 읽기 시작하자 동시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니자키 준이치로,미시마 유키오 작품들을 영어로 번역하기 시작하면서 전세계 출판계를 놀라게 만들며 노벨상 후보에 일본 작가들의 이름을 올려놓는 인물이 된다.
일본에서 최고의 위인으로 추앙 받는 동안 에드워드는 일본의 전범 국가 이미지를 지워주고 문인들을 배출하는 문명국 이미지를 이 시기부터 덧칠 해 주기 시작하며 친일 도널드 킨과 손잡고 미국 문학 심사위원으로 들어가서 일본 문학들이 영미권으로 진출하는데 큰 교두보 역할을 한다.
그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산소리' 작품을 미국 내셔널 북어워드를 수상하게 만들며 일본 정부로 부터 각종 훈장 메달을 줄줄이 목에 걸고 '사마'로 칭송 받는 인물이 되고 도쿄 도지사는 2006년에 도쿄 인근 섬을 뚝 떼어서 에드워드 G · 사이 덴 스티커한테 준다고 하자 그는 미국 생활을 모조리 정리하고 일본에 영구적으로 살기 위해 이주한다.
에드워드는 반 평생 일본에서 거주 하는 동안 일본 도자기보다 한국 도자기를 더 좋아해서 밀반출까지 하며 한국의 고미술과 도자기를 집중적으로 수집했던 모순된 인물이였다.
1968년 10월 18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벨문학상 소식이 전해 지던 날 에드워드는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지리산 노고단을 등반하고 있었을 정도로 지진 발생이 빈번한 일본보다 바다 건너 한반도의 산과 바다를 누비면서 심신 건강을 유지 했던 기인이였다.
2007년 산책 도중에 넘어져서 4개월 무의식 상태로 있다가 세상을 뜨기 전 자신의 이름이 새겨질 섬에 있는 도서관에 유품 500여점을 기증했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계가 역사와 이념 전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 동안 일본은 계획대로 방사능 오염수를 착실하게 정확한 시간에 일정량을 쏟아 버리고 있고 세계 문화 유산에 조선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강제로 내몰아 버린 사도 광산을 등재 시켰다.
2024년 나라의 독립을 되찾은 지 80년 만에 대한민국의 권력자들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이념으로 갈라 놓고 일본을 배려 하는 기이한 외교 정책을 펼치자 오히려 일본 언론들이 일본 정부를 향해 한국에 대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 할 정도로 한국의 대일 외교 전략은 세계 무대에서 단 한번도 제대로 위력을 발휘한 적이 없다.
순수란 꽃 같은 관념, 박하 맛이 강한 양치액 같은 관념, 자상한 어머니의 가슴에 매달리는 듯한 관념을 서슴없이 피의 관념, 부정을 베어 쓰러뜨리는 칼의 관념, 대각선으로 내리치는 동시에 튀어 오르는 피바람의 관념, 또는 할복의 관념으로 이어 주는 것이었다. ‘꽃처럼 지다’라고 할 때, 피범벅이 된 시체는 곧 향기로운 벚꽃으로 변한다. 순수란 얼마든지 정반대의 관념으로 전환된다. 그러므로 순수는 시(詩)다.
-미시마 유키오의 <달리는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