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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평점 :
6월 어느 토요일 이른 오후, 한남자가 위스키를 사러 가기위해 스포츠카에 올라 탄다..
메인 주 크로스비에 있는 식료품점에서 올리브 키터리지와 마주 치는 니 차라리 한 시간 걸리는 포틀랜드로 갈 것이다.
그 여자, 남편과 사별한 키 크고 덩치 큰 이상한 여자
포틀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세우고 물가를 따라 걸었다.
6월중순 하늘은 푸르고 갈매기는 부두 위를 날아다녔다.
많은 이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잭 케니슨, 인생의 많은 시간을 키 크고 잘생긴 배짱 없는 남자로 하버드 캠퍼스를 누볐다.
박사학위를 두개나 가진 잭 케니슨,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죽은 아내 벳시를 떠올렸고 동성애자인 딸에 휴대폰 번호를 눌렀다.
큰소리로 울부짓고 싶었다.
전립선 수술 휴우증으로 패드를 차고 있는 것보다 더 불편한 감정이 작은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갈매기를 올려다 보며 생각했다. 나는 살고 있는 게 아니야.
이제 잭은 이상할 정도로 솔직한 여자 올리브 키터리지에게로 마음이 흘러 갔다.
몇 번 저녁을 먹으로 갔고 딱 한번 콘서트를 보러 갔다.
음, 그녀와 키스 하는 순간 따개비가 잔뜩 들러붙은 늙은 고래와 키스 하는 것 같았다.
뉴욕에 살고 있는 아들 내외랑 사이가 좋지 않은 여자
만화경 속 여러 색깔 들이 교차하는 것처럼 그의 눈앞에 헤엄쳐 다니는 자신의 삶 지나간 삶과 현재의 삶을 생각 했다.
'당신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 잭 케니슨.'
그래, 올리브 키터리지
잭은 종이를 꺼내 펜을 들었다.
'올리브 키터리지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혹 당신이 전화해주거나 이메일을 보내거나 나를 보러 와 줄수 있다면 아주 기쁠 거에요.'
잭은 편지에 서명을 한뒤 봉투에 집어넣었다.
침을 묻혀 봉인하지 않은 채 보낼지 말지는 내일 아침에 결정 할 것이다.
손목에 죽은 남편 헨리의 시계를 차고 다니는 여자 ,올리브 키터리지
6월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재킷을 입고 있다.
올리브는 눈 앞에 펼쳐진 만을 혼자서 바라보고 있다.
햇살은 물 위로 영롱한 빛을 튕겨냈고 작은 섬의 나무들은 차렷 자세로 서있다. 음식을 씹는 작은 소리가 들렸고 깊은 외로움이 그녀를 공격했다.
이 모든것이 잭 케니슨 때문이었다.
이번 봄에 몇 주 동안 만난 끔직 하게 늙고 돈 많고 허세 심한 남자.
그가 좋았다.
그의 옆에 누워 그의 가슴 팍에 머리를 대고 심장 뛰는 소리를 들을 때면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는 남편과 사별한 멍청한 여자들보다 올리브를 더 좋아 하고 있다.
아니, 올리브는 항상 남자가 좋았다. 아들을 다섯명 정도 낳고 싶었다.
헨리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 전에도 그렇게 행복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한 남자와 기나긴 결혼생활은 마치 세월에 흔적으로 할퀴고 간 기나긴 돌담 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 이끼로 덮인 움푹 패여 버린 빈자리에 꽃이 피키는 커녕 휘몰아치는 얼음 바람이 몰아치는 것과 같다.
' 당신이 좋아요. 올리브'
올리브 키터리지는 잭에 죽은 아내가 사 놓은 새칫솔을 썼다.
잭과 올리브가 함께 산지 오년째
잭은 일흔 아홉. 올리브는 일흔 여덟
두 사람은 죽기 살기로 서로를 꼭 끌어 안고 잠을 잤다.
잭은 자신에 인생이 이런 여자와 이런 식으로 마지막 나날을 보내게 될 거 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따금씩 어둠 속에서 잭은 죽은 아내의 존재를 느꼈다.
올리브와 함께 사는 시간이 마치 자전거를 타다 넘어진 느낌이였다.
도로에 그어진 흰색 선 말고는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고 강을 따라 달리면서도 옆 좌석에 앉아 온갖 불평 불만 불안을 쉼 없이 지껄이는 이 여자 올리브가 자신에 아내라는 사실, 함께한 시간이 행복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이 함께 한 날은 저물었다.
끝났다. 사라졌다.
찬란한 가을, 잎은 나무에 매달려 그 색깔이 연중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태양이 날마다 그 모든 것에 햇빛을 비춰주었다. 세상은 반짝 거렸고 노란색과 빨간색 오렌지색 연분홍색이 만으로 뻗은 길을 올리브는 차를 타고 지나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집 앞문에서 숲이 보였다 .매일 아침 문을 열 때 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첫남편이 죽었을 때는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집 현관 벽장에 잭의 코트와 스웨터가 그대로 있다.
첫 남편 헨리가 죽자마자 그가 입던 옷은 재빨리 없애버렸다.
요양원으로 들어 갔을 때는 그가 입고 신었던 모든 것을 없애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옷장을 문을 열면 잭의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 나온다.
잭이 잠을 자다 죽었을 때. 공포가 큰 바다처럼 덮쳐서 하루하루 겁에 질려 지냈다.
돌아와 돌아와 잭, 두사람이 함께한 8년에 세월, 눈사태처럼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기이하게도 올리브는 자신에 진짜 남편을 잭으로 생각하고 있다.
분명 헨리가 첫번째 남편이지만 잭은 진짜 남편이었다.
다시, 6월이 찾아왔다.
추도식이 열리는 날 기저귀 팬티를 입고 왔다,
올리브는 두 명의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난 후 자신도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끝이 다가 왔다.
기저귀 팬티를 입은 채 의자 위에서 엉덩이를 조금 옮겨 앉았다.
헨리를 생각했다 젊은 날 그에 눈에 깃들어 있던 다정한 눈빛, 잭에 영리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아들 크리스토퍼
생각해보면 그녀는 운이 좋았다
두남자의 사랑을 받았지만 스스로를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건 자기 자신 이었다는것을
다시 봄이 찾아 왔다.
올리브는 타자기에 이런저런 기억들을 기록하고 있다.
아들 크리스토퍼는 장미 두 그루를 심었다.
올리브는 타자기를 치면서 행복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종이가 쌓여가는 것도 좋았다.
어떤 날은 자신이 쓴 것을 다시 읽었고 어떤 날은 읽지 않았다. 종이는 서서히 쌓여갔다.
헨리는 신을 믿었다.
올리브는 하늘 높이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았고 시선을 내려 장미 꽃을 바라보았다.
심은지 딱 한해 지났을 뿐인데도 그 모습은 참으로 놀라웠다.
피어난 꽃 뒤로 또 한 봉오리가 막 피어나고 있다. 새로 맺은 싱싱한 봉오리 모습
올리브는 뒤로 기대 앉아 자신의 죽음을 생각했다.
그래, 그날이 올 것이다.
안경을 쓰고 타자기에 새 종이를 끼웠다.
자판을 톡톡 쳐서 한 문장을 타자 했다.
종이를 빼내 쌓인 기억 위에 조심스럽게 올렸다.
'내게는 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진실로 나는 한가지도 알지 못한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신이 누군지, 혹은 뭘하는지 모른채 스스로에 삶을 정확하게 표현할 단어조차 찾아내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 세상에 평범한 인생은 없다.
헨리 키터리지,잭 케니슨 그리고 올리브 키터리지에 인생 조차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