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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단편문학에 읽는 맛을 느끼게 한 심리스릴러 기법이 돋보이는 대상작 '음복'
시댁에서 첫제사를 지내는 저녁식사자리 특별한 사건도 없고 중요한 인물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들 모두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며 눈길 말끝마다 긴장감이 도사리고 있다.
결혼후 첫제사였다.
나와 달리 남편은 속 편해 보였다.
돌봄과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여자들 이여자들을 위해 해주는것이 전혀 없는 남편들 이들을 둘러싼 토마토 고기찜이 시뻘건 색을 드러내며 용광로처럼 펄펄 끓어오르고 있다.
'너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
고모가 그집의 악역이였다.
'그런데 애는 안 낳아?'
'네?'
'아기 말이야, 아기, 안 낳아?'
바로 그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사람이구나. 다른 식구들의 신경을 긁어대는 인간. 미움 받을소리를 잔뜩 늘어놓고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 못돼처먹은 거라고 말하는 사람. 같은 공간에서 숨쉬는 것조차 부담스럽고 싫은 사람.
그래, 바로 그녀였다.
금방이라도 끓어올라 누군가에 무릎을 덮쳐 버릴것 같은 토마토 고기찜
그음식,제수,제찬,제물. 새빨간 양념에 버무려진 뼈가 붙은 큼지막한 고깃덩어리 제사상 한가운데 그요리가 놓여 있었다.
그걸 왜 그때야 발견했을까?
지난날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이 집안 남자들 태어날때부터 권력을 쥐고 있어서 어느 누구도 자신들에 지위를 넘보지 못할 것이라는 가부장제도 안에 들어온 여자들
시어머니와 내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내게 미소를 지었다. 몇 분 후에 나는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정우는 다 모르게 해줘.' 시어머니가 그의 등에서 손을 내렸다. 나는 섬찟 놀라 그 자리에 섰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지.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의 얼굴에서 걱정이 잠잠해지는 것을 보았다. 서서히, 고요하게, 모든 그늘이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것을.
작가에 시선은 시기와 질투로 똘똘 뭉친 여자들 내면에 서로에 대한 동경과 사랑이 자리잡고 있었다는것을 은밀하게 보여준다.
네가 나를 이해해줘야지. 네가 아니면 누가 나를 이해해줘.
남편은 복을 누리는것 같았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토마토 고기찜을 앞접시 한가운데 가득 퍼담았다. 그리고 큰고깃덩어리를 손으로 집어 한입 크게 베어물었다. 붉은 양념이 그의 입가에서 접시로 뚝떨어졌다. 언제는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더니
사실 네가 좋아하는거였구나
어둠속에서 나는 대답했다.
'걔는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어. 아무것도.'
남자들을 향한 사랑과 증오 미움들 다음 세대 여자들에게 대물림 하게 된다는 사실을 집요한 시선과 간결한 문장으로 보여준다.
나는 늘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부디 너를 위해 이것만큼은 내가 진짜로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래. 그래서 나는 그날 대답했던 거야. 이것이 너의 드라마, 복(福)이 되길 바라며.
'음복'이라는 작품을 한번 두번 세번 읽을때마다 주요 인물들에 새로운 모습과 이면들이 새롭게 보일 정도로 작가에 구성과 문장력이 탄탄하다.
이 작품집에는 대상 수상작인 강화길 '음복'을 시작으로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김봉곤 '그런 생활', 이현석 '다른 세계에서도', 김초엽 '인지 공간', 장류진 '연수', 장희원 '우리의 환대'가 실렸다.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에 필력 그중에서도 단편소설들이 읽는 흡인력뿐만 아니라 단편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에 매력을 느끼게 만들어서 다음작품을 고대해본다.
*이책에 정가는 12000원이지만 1년동안 독자들을 위해 보급 가격 4950원에 판매되고 있다. 많은 독자들이 여기에 실린 뛰어난 단편 작가들에 맛깔스러운 문장력을 느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