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 윤동주 유고시집, 1955년 10주기 기념 증보판 소와다리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윤동주 지음 / 소와다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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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중국 길림성 용정시 인근에 있는 윤동주 생가 명동촌에 다녀왔다. 윤동주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아담하게 보존되었다. 인근에 문학관도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서울 청운동에 있는 윤동주문학관을 방문했다. 건물은 버려진 물탱크와 수도가압장 시설을 재건축해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물탱크 내부는 영상실로 만들어졌는데 외부에서 한줄기 빛이 스며듦이 마치 후쿠오카형무소가 연상된다.

 

어제 늦은 밤, 영화 동주를 봤다. 시를 사랑하고, 시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윤동주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형무소에서 고통 속에 스물아홉의 생을 마감한다. 흑백 영화 속 동주의 표정에 번뇌, 쓸쓸함이 묻어난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재조명한 사촌 송몽규와의 우정, 꽃 피우지 못한 아련한 풋사랑이 애잔하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성우의 시 낭송과 마지막 장면 속 형무소의 시리도록 눈부신 별빛, 그 안에서 쓸쓸히 죽어간 윤동주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영화의 내용과 시가 잘 어우러져 몰입도가 높고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개봉관이 적지만 자녀와 함께 보면 좋겠다. 올해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은흑백영화가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당시의 암담한 시대상을 잘 표현했고 몰입할 수 있었다는 말을 한다.

 

영화를 개봉하면서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재출간 되었다. 초판본은 1955년에 10주기 기념으로 발행했다. 시집은 초판본의 디자인과 글씨체, 제본을 고스란히 간직한 형태로 출간하였다. 우리에게 낯선 세로줄 글씨와 흐린 인쇄, 한자가 읽기를 방해하지만 덕분에 행간의 의미를 되새기며 읽게 된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면 영화 속 장면과 책의 내용이 오버랩 된다.

 

교토에서 먼저 귀향길에 오르는 사촌 몽규의 뒷모습을 쓸쓸히 바라보는 동주의 시선을 따라 자화상’이 낭송된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 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엽서 집니다//도로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 집니다//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19399)

 

일제 치하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그는 아름답고 결 고운 서정시와 동시도 지었다. 별을 사랑한 순수한 문학청년 윤동주! 그의 안타까운 죽음에 잠시 할 말을 잊는다.

 

 

 

우리 애기는

아래발치에서 코올코올,

 

고양이는

부뜨막에서 가릉가릉,

 

애기 바람이

나무가지에서 소울소울,

 

아저씨 햇님이

하늘가운데서 째앵째앵.

 

 

겨울

 

처마 밑에

시래기 다래미

바삭바삭

추워요.

 

길바닥에

말똥 동그램이

달랑달랑

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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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2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3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걀부인 2016-03-02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제가 사는 곳이 바로 연길이예요. ^^ 지금은 윤동주생가가 돈냄새가 너무 많이 나죠.. 중국조선족작가 윤동주라는 글자도 슬프구요.

세실 2016-03-03 13:30   좋아요 0 | URL
그러시구나. 우리나라 분들이 많이 산다고 하더니 달걀부인님도.....반가워라^^
연길.....다시 찾을 수 있을런지요. 참 많이 안타까워요.

cyrus 2016-03-02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많이 늦었지만, 윤동주 시인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기쁩니다. 시인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되도록 쭉 오래 갔으면 좋겠습니다.

세실 2016-03-03 13:30   좋아요 1 | URL
맞아요. 지금이라도 이렇게 관심을 갖고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니 다행입니다.
책도 영화도 더 대박났으면 합니다.

서니데이 2016-03-02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의 문학관, 그리고 용정의 생가에도 다녀오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세실님,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세실 2016-03-03 13:31   좋아요 1 | URL
그래서 더 애틋합니다.
영화보면서 많이 슬펐어요.
참 순수한, 아까운 문학청년인데.......
커피 한잔 마시며 잠시 여유를 가져 봅니다^^

프레이야 2016-03-03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초, 윤동주문학관 두번째 탐방이었는데 함께해서 더욱 좋았어요. 영상물을 보며, 동주는 한번도 남을 탓하거나 흉보지 않았다고 증언한 몽규의 대사가 기억에 남아요. 그때도 그랬지만 두고두고 부끄러움에 몸둘 바 모르겠다는 생각이 짙어가고 ‥ 시를 쓴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어요. 3월인데 마음도 머리도 손도 더 얼어붙는 듯ㅠ 백두산과 용정에는 내년쯤 꼭 가봐야지^^

2016-03-04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04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6-03-04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세실 2016-03-04 21:50   좋아요 1 | URL
늘 감사합니다^^
푸짐한 간장게장정식 먹고 배 두드리고 있어용

이샤 2016-03-04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보고 참고로 댓글 남깁니다. 영화 동주 속에서 시를 낭송하는 목소리는 성우가 아니라 윤동주 역할을 맡은 <배우 강하늘> 목소리에요. 나레이션처럼 들리는 시 낭송은 모두 배우 강하늘이 직접 녹음했다네요. 목소리가 너무 좋죠? 성우라고 착각 할 만큼. ㅎㅎ

세실 2016-03-04 21:52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옆에서 부시럭거리는 두 남자땜에 몰입하지 못했거든요. 조만간 한번더 봐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