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읽은 책

 

토요일 오전에 친구와  커피 마신것 빼고는 주말 내내 집에 있었다. 집안일도 미룬채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침대에 누워 베개 두, 세개 받치고 구운 감자(과자)를 먹으며 책을 읽는 맛은 소소한 행복이다. 일요일 오후에는 옆지기와 주로 자전거를 타는데 지난 주말엔 '싫어! 책 읽을거야!' 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처음에는 재미 있었는데 몇 권 읽고 나니 내용이 중복되는 느낌이다. 그만 읽어야지 했는데 이번엔 소설이 출간되었다. 하루키의 팬은 아니지만 신간이 나오면 왠지 궁금해지는 작가중 한명이다. 제목처럼 이 책의 주인공은 대부분 실연 당하거나 여자와 헤어진, 현재 솔로인 남자들의 이야기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단편집이다. 

 

아내가 죽은뒤 혼자 생활하는 연극배우 가후쿠와 운전기사 미사키의 일상을 담고 있는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죽은 아내의 불륜이 거론된다. 아내가 죽은뒤 아내의 남자와 친구가 된 설정은 이해는 안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이 또한 일상이다. 

 

어떤 것이 아내의 마음을 사로 잡았는지, 그것까지는 모르겠어. 인간이 그렇게 세세한 핀포인트 수준에서 행동하지는 않으니까.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다는 건, 특히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는다는 건, 뭐랄까, 보다 총체적인 문제야. 더 애매하고, 더 제멋대로고, 더 서글픈거야.        

 

<독립기관>에서 독신주이자 도카이는 능력있는 성형외과 의사다. 그의 여자친구는 주로 유부녀이거나, '진짜' 연인이 있는 여자들로 한정되었다.

 

그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머리 회전이 빠르고 타고난 유머 감각을 지녔으며 뛰어난 지적 센스를 갖춘 여자들이었다. 화제가 부족하고 자기 의견이라는 게 없는 여자들은 외모가 뛰어날수록 오히려 도카이에게 좌절감을 안겼다. 어떤 수술로도 지적 스킬을 향상시킬 수는 없다. 재치 있고 스마트한 여자들과 식사하면서 대화를 즐기고, 혹은 침대에서 살을 맞대고 두서없이 즐거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 시간을 도카이는 인생의 보물처럼 소중히 여겼다.

 

그런 도카이에게 진심으로 사랑하는 유부녀가 생겼다. "그녀의 마음이 움직이면 내 마음도 따라서 당겨집니다. 로프로 이어진 두 척의 보트처럼. 줄을 끊으려 해도 그걸 끊어낼 칼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어요." 라며 마음을 표현하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갔다. 결국 상처받은 도카이는 우울증에 걸리고 죽음에 이르렀다.

 

모든 여자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특별한 독립기관을 태생적으로 갖추고 있다. 는 것이 도카이의 개인적인 의견이었다. 어떤 거짓말을 언제 어떻게 하느냐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모든 여자는 어느 시점에서 반드시, 그것도 중요한 일로 거짓말을 한다. 중요하지 않은 일로도 물론 거짓말을 하지만 그건 제쳐두고, 아무튼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때 대부분의 여자들은 얼굴빛 하나, 목소리 하나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 몸의 독립기관이 제멋대로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그녀들의 양심이 상처를 받거나, 그녀들이 평안한 잠이 방해받거나 하는 일은-특수한 예외를 별도로 친다면-일어나지 않는다.

 

가끔은 나도 사소한 거짓말 혹은 선의의 거짓말을 하지만 모든 여자가 거짓말을 위한 독립기관을 갖고 있을까? 하긴 동료중에 유난히 거짓말을 자주 하는 사람이 몇명 있는데 모두 여자다. 이 책에는 여자가 먼저 죽거나, 배신을 하는 점도 특이하다. 도카이의 이기적인 행동을 보며  '이런 카사노바는 죽어도 싸지' 하며 내심 샘통이라고 했지만 왠지 하루키에게 말린 느낌이다. 일본의 문화가 그런걸까? 아님 하루키의 사고가 그런걸까? 섹스, 불륜이 아무렇지도 않게 묘사된다. 마치 일상처럼......  

인생이란 묘한 거야. 한때는 엄청나게 찬란하고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것이, 그걸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버려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혹은 바라보는 각도를 약간 달리하면 놀랄 만큼 빛이 바래 보이는 거야. 내 눈이 대체 뭘 보고 있었나 싶어서 어이가 없어져.

 

 

 

요즘 이슈가 된 중국의 부자 마윈 알리바바 회장의 '35세까지 여전히 가난한다면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그건 당신 자신의 탓이다' 를 두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박웅현에게 질문했다. 박웅현은 그 기사에 대해 성공한 사람의 오만이라고 일축하며 어쩔수 없는 '가난'도 있다. 삶의 가치를 부로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며 이 책을 거론했다.

 

비싼 사립 대학교 등록금을 벌기 위해 피자가게, 이마트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사고로 죽은 대학생의 이야기는 참 서글프다. 영구임대아파트, 대출 사기단, 미혼모 등 가난이 되물림되는 나라에서 성공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한겨레 임지선 기자의 노력으로 탄생한 이 책은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는 부제가 달려있다.

 

지금까지도 힘들었는데 앞으로가 더 힘들 것 같아요.

내 앞에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던 스무 살 대학 새내기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는 서울까지 올라와 소위 명문대에 입학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 값비싼 등록금 앞에, 교재비 앞에, 하다못해 몇 만 원짜리 모꼬지 비용 앞에서도 그는 한없이 초라해졌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가난은 깊어졌고 옆자리 친구와의 격차는 도드라졌다. 시궁창 같은 현실보다 더욱 두려운 것은 미래에도 나아질 리 없다는 절망이다. 세수도 하기 힘들 정도로 깊은 우울과 무기력이 그를 덮쳤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책의 첫 문장이 좋아 가끔 생각나는 책.

김훈의 글은 시처럼 정돈되어 있고, 여러 의미를 함축한다. 건조하면서 담백하고, 간결해서 좋다.   

 

 

 

 

2. 주문한 책

 

요즘 옷을 산 기억은 없는데 책은 수시로 구입한다. 직장이 바뀌어서 옷을 사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는데 책은 사지 않으면 허전하다. 아니 불안하다. 책베개 하나로는 외로워보여 하나 더 선택한다는 합리화를 하며 어느새 장바구니에는 5만원이 초과된 책이 들어있고, 주문을 눌렀다. 창문넘어 100세 노인을 샀으니 카프카의 꿈을 신청했다. 장서의 괴로움을 선택할걸 그랬나?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특히 기관의 리더는 선택을 잘 해야 한다. 선택을 번복하거나, 선택을 하지 못해 직원에게 다시 물으면 무능력해 보인다. 선택을 하고 난 뒤에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합리화 내지는 주문을 건다.    

 

 

 

  김훈의 자전거여행 개정판이 출간된다.

  주말이면 옆지기와 자전거를 타러 가는데 여행 삼아 떠나는 자전거 여행도 좋을듯.

  주변 풍경을 더 찬찬히, 꼼꼼히 볼수 있을테니까.

  얼마전, 옆지기와 청남대 버스타는 곳까지 간적이 있다. 코스모스 가득

  피어있는 길도 걷고 막국수도 먹고, 맛있는 핸드 드립 커피까지 마셨다. 편안했던

  기억이다. 이 책 읽고나면 자전거 여행을 계획할수도.....

  자전거여행2를 구입하면 파우치와 미니 태슬을 준다기에 두 권 모두 주문했다.

 

 

 

 알라디너 몇 분이 강추한 책. blanca님은 심지어,  

 "아직 <오만과 편견>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이 책에서 누릴 즐거움이 부러울 따름이다." 라는 말을 남기셨다.

 아득한 옛날에 읽어 책 보다는 영화의 장면만 떠오르는데, 다시 읽으면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밀당을 즐기는 맛도 누릴수 있을듯. 소장 가치도 충분하다.

 

 

 

 

  

 소설가 김영하의 에세이는 낯설어 구입을 망설였지만 책베개를 얻으려면 이 책을 포함해야 한다.

 그리고 난 김영하의 팬이라고 자처했기에 구입하는것이 예의일지도...

 그러나 에세이는 솜털처럼 가벼워, 읽고나면 허무해진다. 이젠!

 

 

 

 

 

 

 

 

 사서라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을 하나 정도는 읽어주는게 센스겠지.

 본인도 의외의 수상이라고 하지만 탈 만 하니까 탔을 것이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된지도 꽤 오래된다. 이 작가의 책은 주로 문학동네에서 번역되었으니

 문학동네 대박 났다.

 

 가끔 드는 생각인데 나, 대학때 대체 뭔 책을 읽은거니?

 

 

 

 

책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은, 마치 복권 한 장 사고 기다리는 것처럼 설레인다. 책은 읽을때보다 주문하고 기다릴때가 더 행복하다. 내가 주문한거고, 다른 무언가가 올리도 없는데 왜 설레이는걸까? 책 쇼핑 중독인가? 어쨌든 주문 했다. 패브릭 파우치가 떨어질까 조바심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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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10-15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올리신 책들만 가지고 이야기를 해도 한참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만나면, 더구나 취향이 비슷하다면 만나서 절대 화제가 떨어지지 않을거예요. 김훈의 <바다의 기별>의 첫문장, 좋네요. 아마 김훈 식으로라면 저 문장에서 방점은 ˝기어이˝에 찍히지 않을까 혼자 아는 척도 해봐요 ^^
<오만과 편견>을 저는 고등학생때 읽었는데 무척 기대를 많이 했던 것에 비해 무슨 연애담, 결혼담만 계속되냐고, 그당시 오만하게 판단했었지요. 영국 사람들은 제인 오스틴에 대해 거의 열광적이라서, 그것에 대한 반발로 더 제인 오스틴 작품을 안읽기도 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면 아마 다른 느낌이겠지요?
파트릭 모디아노는 어린이책도 썼더라고요. 어쩌면 한권쯤 읽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세실님도 책베개 기다리시는구나 ^^

세실 2014-10-15 10:58   좋아요 0 | URL
그래서 5공주를 만나면 헤어질때 늘 아쉬워한답니다. 어쩜 그리도 할말이 많은지......
책이라는 공감대는 대화를 풍성하게 해줘요.
무라카미 책도, 현시창도.....오만과 편견까지....ㅎㅎ
책에는 안찍혔지만 기어이에 찍어도 좋을듯요^^ 개정판 나올때 꼭 찍어달라고 건의할까요?

이 가을에 오만과 편견 읽으면 달달할꺼 같아요~
책 오늘 오면 읽기 시작해야 겠어요.
그러면 더 이야기가 풍성해 지겠지요?


맞아요. 파트릭 모디아노 어린이책 표지만 봤어요. 요즘 어린이책은 전혀 읽지 않아서...아이들이 크면서 어린이책은 스톱했어요.
꿈 기다리고 있어요~~~

페크pek0501 2014-10-17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 님의 가을은 책 이야기가 많아 풍성할 것 같군요.
저도 오늘 주문한 책을 받아서 기분 좋아요. 새 책을 받는 기분은 즐기는 자만이 알 듯...
쓸쓸하게 느껴지던 가을 날씨였는데 갑자기 기분이 퐁퐁 밝아지는 느낌이에요. ^^

세실 2014-10-17 13:54   좋아요 0 | URL
김영하의 <보다> 읽고 있는데 나름 괜찮아요~~~~
본인의 일화를 소개하고 글을 풀어냅니다. 영화, 책이야기, 사회문제도 나오네요.
저도 어제 새책 받고는 좋아서~~~ 바라만 봐도 행복합니다.

지금 도서관 창으로 보이는 학교 운동장엔 어르신들이 게이트볼을 열심히 하시네요.
노년의 아름다운 취미생활도 필요할듯요. 책만 보는건 좀 재미 없겠죠? 눈도 침침할테고......

희망찬샘 2014-10-19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리 많이 읽으시는 거에요~ 부러워용~~~
깊어가는 가을 책을 끼고 살아야겠어요.

세실 2014-10-21 09:56   좋아요 0 | URL
마음은 하루 한권씩 읽고 싶어요. 책 욕심..ㅎㅎ
요즘 책은 많은데 구미에 당기는 책은 없다는게 문제 입니다.
어제 가을바다 보고 왔는데 좋았어요^^ㅎ

수퍼남매맘 2014-10-21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주 공감하며 읽었던 <현시창>이 들어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솔직히 시간 나도 책 읽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 안 드는 저는 님의 경지가 부러울 따름입니다.

세실 2014-10-22 14:53   좋아요 0 | URL
현시창은 마음 아프죠. 대학생들이 특히 안되었어요. 아무 걱정없이 즐길 나이에 등록금때문에 허덕이다니....반값 공약은 어떻게 된걸까요?
저도 요즘 쉬운 책만 읽는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