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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ㅣ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평점 :
<1Q84>와 <상실의 시대>로 잘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번째 에세이인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는 일본의 이십대 여성이 주 독자인 잡지 <앙앙>에 일년동안 연재한 오십편의 모음집이다. 글을 쓰기 전에 오십개 정도의 토픽을 미리 정해놓고 생활 속의 새로운 화제가 생겨나면 목록에 덧 붙인다고 한다. 오십오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그의 글은 발랄하면서 쿨하고 유머러스하다. 동시에 단순한 신변잡기가 아닌 음악, 영화, 그림에 조예가 깊은 박학다식함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도 그의 글을 읽는 즐거움이다.
친절심이라는 키워드로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에 '사랑은 가도 친절은 남는다'말을 인용하며 다음의 글을 도출해낸다.
에세이든 소설이든 문장을 쓸 때 친절심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되도록이면 상대가 읽기 쉬우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시도해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알기 쉬운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생각을 깔끔하게 정돈하고, 거기에 맞는 적절한 말을 골라야 한다. 시간도 들고 품도 든다. 얼마간의 재능도 필요하다. 적당한 곳에서 "그만 됐어"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다.
p.23
글을 쓸때 재능이나 깊이는 없지만 가급적이면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쓰려는 내 글쓰기 법칙과 통한다. 글을 써놓고 출력해서 몇번이고 읽다보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나 난해한 부분을 발견해서 수정을 하게 된다. (알라딘 서평은 다 써놓고는 제대로 읽지 않지만!)
<여덟단어>에서 박웅현이 추천한 음악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하루키도 추천했는데 시공간을 초월한 음악의 힘이다. 영화의 한 장면을 인용하면서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가 "Soup or Salad?"를 슈퍼 샐러드로 오해해서 몇번을 반복한 내용을 다루면서 메뉴로 슈퍼 샐러드가 있었으면 한다는 그의 채식 사랑에 웃음이 난다. 선물을 잘 고르는 사람은 선물을 고를때 에고가 드러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의 마음이 되어 물건을 고른다는 이야기는 배려심과 연결된다. 그의 취미중 하나인 마라톤이나 철인 3종 경기에 임하는 자세는 마치 소풍 전날의 초등학생과 같은 기분이라는 그의 운동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부럽다. 전화받는 것, 파티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싫어하고 인터뷰에 답하는 것, 메일에 답장쓰는 것도 힙겨워하는 하루키는 천상 글쓰는 사람이다.
시간적 여유는 없지만 책을 읽고 싶을때, 마음이 심난해서 깊이 있는 책 읽기는 어려울때 하루키의 에세이는 쉽게 읽히면서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되어 읽는 즐거움을 준다. 글의 키워드를 완벽하게 소화한 코믹한 삽화도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유쾌하면서 경박하지 않은 작은 울림이 있는 하루키의 에세이가 좋다.
가을
기야마 쇼헤이
새 나막신을 샀다며
친구가 불쑥 찾아왔다.
나는 마침 면도를 다 끝낸 참이었다.
두 사람은 교외로
가을을 툭툭 차며 걸어갔다.
p.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