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도서관학(현재는 문헌정보학)을 전공하며 시골 도서관장을 꿈꾸었다. 지도교수님은 "시골 도서관은 관장이랑 직원 한명밖에 없어 힘들다." 고 반대 했지만 도서관장은 꽤 근사해 보였다.

 

파울로 코엘류의 저서 '연금술사'에서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를 도와준다"는 말처럼 사서 공무원이 되었고, 몇 년 전에 관장의 꿈을 이루었다.

교수님의 걱정과 달리 군 단위 도서관도 조금씩 발전해 정규직 다섯명(사서 네명)에 파트타임으로 청소, 주말 근무를 도와주는 비정규직 두명이 상주한다.  

 

시골 도서관장은 매력적인 직위다. 도서관을 주도적으로 꾸밀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직장을 옮기면 한 달은 메모를 하며 방관자적 자세를 취하라고 하지만 마음 급한 나는 다음 날부터 자료실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무언가를 조금씩 바꿨다

 

먼저 한 일은 환경미화다. 도서관에 들어오면 보이는 자료실 입구의 커다란 목재 사물함을 창고로 내렸다. 빈 공간에는 이용자를 위한 계단식 알림판을 비치하고, 보랏빛 난 화분을 두었다. 지하부터 2층까지 연결된 스테인리스 봉에는 작은 화분을 걸었다. 차가웠던 공간이 작은 변화로 따뜻해졌다. 이용자들은 도서관에 들어오면서 "여자 관장님이 오셨나 봐요. 도서관이 예뻐졌어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두 번째 한 일은 자료실 북 큐레이션이다도서관에 갔을 때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스럽다. 검색하면 되지만 그마저도 귀찮을 때 누군가 책을 골라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책 읽고 서평 쓰는 일이 취미이니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는 '사서 추천도서' 코너다. 읽어본 책 중에서 무난한, 보편적인 책으로 선정한다.

책을 전시할 책상을 꾸며야 하는데 마음이 급하니 인터넷으로 주문할 여유가 없다. 다이소에서 3천 원인 식탁보 장을 샀다. 한 공간은 '사서 추천도서'로 어른을 위한 추천 책 코너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 김형석의 '백 년을 살아보니' 등을 전시했는데 하루 만에 매진이다. 서점이라면 같은 책을 다시 전시하면 되지만 도서관엔 단 한 권뿐이다. 수시로 전시대를 기웃거리며 다른 책으로 빈 공간을 채워야 한다소소한 선물로 책 속 한 구절을 적은 책갈피를 준비해 '필요한 분 가져가세요' 박스도 준비했다.

다른 공간은 초등학교 신입생을 위한 주제 '학교 가는 날'이다. '학교 가는 날', '학교가 사라진 날', '지각대장 존', '칠판 앞에 나가기 싫어', '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 '전학 온 첫날' 등의 책을 전시했는데 뜨거운 반응이다.

 

도서관에 발령받은 날, 생각보다 이용자가 적어 놀랐다. 인구 23천 명인 읍소재 도서관이지만, 주변에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젊은 엄마들이 많을 텐데... '찾고 싶은 도서관, 또 오고 싶은 도서관'으로 만드는 일이 내 소명이다.

내일은 뭐할까?

 

                                                                                                                   2019. 3.

 

여우꼬리) 전에 적어 두었던 글을 이 공간에 정리해 보려구요.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eta4 2022-05-26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집니다.

세실 2022-05-27 08:1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책읽는나무 2022-05-27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도서관 꾸미시느라 그동안 바쁘셨었군요?^^
저기 혹시 다음 번엔 저희 동네 도서관에도 오셔서????ㅋㅋㅋ
지금은 이용객들이 엄청 많아졌겠습니다.
그래서 또 바쁘신 거죠??ㅋㅋㅋ
바쁘셔도 건강 잘 챙기시구요^^

라로 2022-05-27 19:08   좋아요 2 | URL
세실님 대신 제가 댓글 다는 건 그런데 이 글은 2019년 때 글이에요.^^;;
지금은 다른 곳에 가서 일하고 계시죠.
나머지는 세실님이 알려주시는 것으로.^^;;

세실 2022-05-28 08:30   좋아요 1 | URL
호호 라로님 말씀이 맞아요. 지금은 다른 기관에 근무합니다.
지금은 도서관 전체 리모델링해서 더 멋진 도서관으로 탄생했지요.
요즘 충북에 있는 오래된 도서관들은 열린 공간으로 리모델링합니다. 건의하세요~
지금은 덜 바쁜데, 괜히 분주하네요.
늘 감사드립니다~~

페크pek0501 2022-05-27 15: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기의 꿈을 이룬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노력과 성실성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 건 필수이고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세실 님의 생은 ‘잘하고 계십니다‘가 되겠습니다. ㅋㅋ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많아 도서관학과가 인기였어요. 저는 그때 좀 모자란 사람이었으므로 그게 왜 하고 싶을까 했었죠.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30대 초반이 되어서야 그들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어요.
대학 때 독서 좀 많이 해 놓을 걸 하고 후회한 적도 있으나 지금은 젊음은 한때이니 그때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았다고 생각해요
그 덕분에 넷이 모이는 동창생 모임이 아직까지 있거든요. 후후후~~.
이런 페이퍼, 무지 좋습니당~~~

세실 2022-05-28 08:37   좋아요 1 | URL
호호 칭찬 감사합니다.
삶은 모든 것이 좋을수도 없고,
짊어질 십자가도 있고,
내일도 모르는 불확실성도 있지만,
현재를 누리려 합니다.
에이~~
전 고3 담임샘의 한마디에 선택했어요. 고딩때 학교도서관을 자주 갔거든요. 우연히...
대학 동창생!
저도 네명 있어요~~
지금도 카톡 자주하구, 여행도 갑니다.
삶의 비타민이죠.
편안한 주말 되세요^^

라로 2022-05-27 19: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신 것 같아요!!^^;
울 세실님 엄청 야무지고 현명하죠..
삶을 대하는 태도등 많이 배웠어요, 세실님께!!
근데 이런 글 계속 올리기!!
올리다 그만두기 없기!!!^^;;;

세실 2022-05-28 08:40   좋아요 1 | URL
아 감동이다! 어쩜 이리 멋진 칭찬을~~♡♡
ㅎㅎ 그니깐요.
사무실 직원이 늘어나니 챙길 업무도 많구,
부모님도 연로하셔서 챙겨야하구,
남편도 건강이 안좋아졌구요...
이젠 주1회는 글 꼭 올릴게요.
늘 고마운 라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