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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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잭과 콩나무야. 이대로 콩나무를 타고 오르면, 어느새 하늘, 어느새 구름, 어느새 죽음.-26쪽

존 메이슨, <방사능 낙지>-63쪽

럭키!

그렇지, 바로 이 순간 자신의 득점에 운이 따랐을 뿐이라고 외쳐주는 거야. 탁구의 중요한 예절이지. 인류가 바로 이 경우에 속하는 거야. 인류의 폼이 반격을 당하지 않은 이유는 순간 이런 행운이 따라줬기 때문이지. 그래서 실은, 인류는 다 함께 <럭키>라고 외쳐야만 해. 공이 왔던 곳을 향해, 자신들의 자세를 받아주는 곳을 향햇 ㅓ말이야.-142쪽

존 메이슨의 소설 <핑퐁맨>-172쪽

존의 유작인 <여기, 저기, 그리고 거기>-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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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 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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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느낌으로는 서로 호감이 있는 것 같은데......
그걸 마리가 어떻게 알아요?
그네는 주름잡힌 자기 콧잔등을 검지로 콕콕 찍어 보였죠.
여기로 알지. 나는 깊은 밤 어둠속에서도 병 속에 보드카가 들었는지 쉬납스인지 꼬냑인지 다 알아요. 술처럼 사랑에는 남다른 향기가 있는 거야.-2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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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 상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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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스크림을 받아 여자처럼 혀를 조금만 내밀고 꼬리 부분을 핥았다. 입안에서 차가운 액체로 녹아내리면서 무슨 그림같이 열린 창가에 나부끼는 작은 꽃이 프린트된 포플린 커튼이며, 창 너머로 불어들어오는 아카시아꽃의 향내며, 잉잉거리며 유리창을 오르내리는 꿀벌의 나른한 날갯짓 소리며, 하는 것들이 지나갔다. 거기 덧붙여서 옛날 전쟁 터지고 피란시절에 장사 나간 어머니가 머리맡에 두고 가던 미제 젤리의 맛이 지나갔다. 빨강, 노랑, 파랑, 보라, 초록 그리고 무엇보다도 검정색 젤리의 그 이국적이고 독특한 향내. 그건 무슨 풀로 향기를 냈을까. 나는 이것이 무엇인 줄 잘 알면서도, 세상의 모든 물건이 이제는 다 그쪽으로 간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워하면서. .-20쪽

오래 전에 불경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사람이 죽으면 정이 맺혔던 부분들이 제일 먼저 썩어 없어진대요.-39쪽

누렇게 퇴색한 옛날 사진의 인물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어른스럽고 무슨 현자처럼 은근한 권위가 있어 보이는 걸까.-83쪽

그러나 사람세상의 이 미완은 멋있지 않니? 미처 해내기 전에 같은 무렵에 살던 모두가 죽어버리니까. 불교에서 그걸 뭐라고 하더라. 백년 후에는 현재 세상에 살고 있던 모두가 존재하지 않는댄다. 그맘때 사람들은 모두가 새사람들이지. 그렇게 거듭된단다.-147쪽

비가 오기 시작할 때 열에 달았던 땅이 식으면서 신선한 흙냄새가 올라오고 시원한 바람이 일면서 맛잇는 대기가 코 안에 가득 차지요.-228쪽

그 비가 밤새껏 오던 날, 내가 당신의 머리를 잘라주던 생각이 나셔요? 당신의 웃통을 벗기고 무릎 앞이랑 궁둥이 밑에다 신문지 깔아놓고 보자기를 어깨에 둘러주고 갑갑할 테니까 손에 거울을 들려줬지요. 나 예전에 친구들하구 서로 커트를 해주던 솜씨가 있어서 별로 걱정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쓰던 양면 면도날 하나만 엄지와 검지 사이에 쥐면 되었으니까. 한손을 빗처럼 벌려 당신의 머리카락을 물듯이 잡고선 면도날로 살살 그어내려가면 가지런하게 잘렸죠. 그런데 가위로 자르면 단면이 싹둑 잘리니까 그렇지 않은데 면도날로 잘라서 그런지 머리카락 끝이 불빛에 반사되는 거예요.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반짝거리는 거예요.
음, 솜씨가 괜찮은데.
하면서 거울을 들고 머리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당신이 말했어요.
그런데 이건 뭐야. 반짝반짝하는 게......
면도날로 자르면 그래요. 보기 좋잖아. 머리에 별이 내려앉은 거 같애.-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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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 상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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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젊은 시절 황석영과 구로공단에서 자취했다는 얘기를 알고 있는지.... 그들은 운동권이었다. 그리고 난 그들이 어려웠다. 그 시대에 살아보지 않은 나는, 그 시대 자체를 항상 어려워했기 때문인데... 황석영에게는 익숙하고 그리운 오래된 정원일테지만 나에겐 언제나 낯선 정원인 그 시대. 그래서 그런지 환타지로 느껴지기까지 했으니 말 다했다.

그런데, 황석영의 소설에서 만나는 그 시대는 꽤나 진득한 냄새를 풍긴다. 그래서 황석영의 책을 읽고 나서야 환타지가 아닌, 실제로 느껴졌다. 처음엔 중단편들로 황석영을 접하기 시작했는데, 오래된 정원을 읽으니 나 자신의 인식변화가 더욱 실감난다. 고마운 일이다.

또 하나 고백하자면, 대부분의 경우, 소설을 먼저 접한 후 매력을 느껴야 영화를 보게 마련인데, 이번엔 약간 달랐다. <예의없는 것들> 심야상영을 보러갔을 때였던가. 예고편은 <오래된 정원>이었다. 그런데... 예고를 보면서 그렇게 숨죽였던 적이 없었다. 비오는 날, 한윤희가 오현우를 보내면서 읊조리던 말, "밥해주고 재워주고 몸까지 줬는데 가버리냐." (정확한 대사는 아닐 테고). 아, 가는 남자를 보내면서 하는 말 중 제일 현실적이지 않나. 예고가 끝나자마자, 나란히 앉아있던 동행자와 "우리 저 영화 꼭 보자"라고 다짐을 했더랬다. 그리고 각각 이 책을 사들였지. 그런데 내 가슴에 찡하게 박혔던 저 대사는 책 속에 없드라. 원작에 충실하지 않았단 얘긴데... 이 부분에 대해서만은 나는 원작에 충실하지 않은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 한 마디가 없었더라면 나는 원작을 읽어볼 생각도 못했을 테니. 그 신랄한 한 마디는 나에게 황석영을 다시금 알게 해 준 고마운 인연이다. 아직 보진 않았지만 훌륭한 영화임에 틀림없을 테고, 그건 황석영의 원작을 기초로 했기 때문일 거다. 

 

아. 오류 하나 발견.

교도소에서 수감자들이 소일거리 삼아 생쥐며 곤충이며 비둘기 따위를 기른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한 수감자가 자신이 생포해 기르는 생쥐의 이름을 뽀삐라고 지었단다. 이유인즉슨 휴지광고에 나오는 토끼의 이름을 딴 것이라는데...

근데 그거 토끼가 아니라 강아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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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북 - 서은영과 장윤주의 스타일리시한 이야기
서은영.장윤주 지음 / 시공사 / 2006년 8월
평점 :
일시품절


전반부는 스타일리스트 서은영, 후반부는 모델 장윤주의 얘기.

전반부에선 그럭저럭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를 따라가려고 용쓰는,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고 애쓰는 한 스타일리스트의 이것저것 패션 조언이 많은데, 의외로 군데군데 유용한 팁이 많다. 화이트셔츠 연출법이라든지, 구두에 대한 소견이라든지. 게다가 우드판에 핀을 꽂아놓고 귀걸이를 주렁주렁 걸어놓아 아침에 찾기 쉽게 하는 방법은, 몇 달 전에 내가 직접 만들기도 한 터라 괜히 동질감도 느껴졌다. 몇 페이지에 한 번씩, 그녀가 쓱쓱 그린 듯한 그림도 정답다. 특히 흑색 색연필로 거칠게 칠한 샤넬 트위드 수트는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나는 언제쯤 옷장 가득 샤넬의 수트를 걸어놓고 아침마다 무얼 입을지 고민할 수 있을까.. 부럽기만 한 남의 떡이다, 참. 밑줄 그어놓고 나중에 써먹을 만한 문장도 몇 개 있었다.

반면!!!! 정말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들게 한 뒷부분!!! 우선, 문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문장력 뿐 아니라 단락 간 연결도 안 되고, 별 주관도 없는 것 같고, 그냥 누군가가 '윤주야. 그래도 네가 모델 중엔 고참이니까 책 한 번 써봐라, 은영이랑.' 이라고 권하길래 '아, 그럼 모처럼 시간도 나는데 몇 줄 끄적거리고 푼돈 좀 받을까' 하는 기분으로 썼다는 느낌. 패션잡지에서 숱하게 보아왔던 장윤주의 사진 몇 컷이랑, '나 잘났소이다' 풍 일화 몇 가지 뿐이다. 정보도 없고 감회도 없다. 결국은 마지막 몇 페이지를 채 참지 못하고 팔랑팔랑 넘기곤 책을 탁! 덮어버렸다.

 

퇴근도 일찍 한데다 후배랑 저녁 약속도 있어서, '오늘은 사보텐 가서 돈까스 먹어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던 중. 택배 상자를 열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면서 스타일 북을 읽기 시작했는데, 서은영(전반부) 부분에서는 약속시간이 좀 더 늦춰지길 바랬다. 후배가 좀 더 일이 늦게 끝나서 10분이라도 전화를 늦게 주기를. 굉장히 배가 고프고 사보텐 돈까스의 특별하게 파삭파삭한 빵가루가 눈물나게 생각났지만, 그래도 그 부분은 다 읽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장윤주(후반부) 부분으로 진도가 나가면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 문제!!!! 장윤주보다는 돈까스가 한 1000배쯤 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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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10-20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장윤주씨가 쓴 부분이 상당히 못마땅 했어요 성의가 없다고 해야 할까, 원래 문장력이 많이 딸린다고 해야 할까?

고도 2006-11-0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모델 장윤주는 정말 최고죠. 사람은 각기 나름의 분야가 있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