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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변명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 - 아버지를 인터뷰하다
김경희 지음 / 공명 / 2021년 11월
평점 :
아버지와의 인터뷰라니 놀랍고 부럽다. 나는 평생 아버지와 한 가지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아버지가 워낙 이른 연배에 돌아가신 것도 있지만 그때 경상도 산골 부자지간은 대개 그랬다.
김경희 작가가 쓴 <아버지는 변명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을 읽기 전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헤겔의 <정신 현상학>을 들추었다.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는 문장을 붙잡고 이틀을 끙끙 앓았다. 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면 애초에 집어 들지도 않았을 책들이다. 그런데 헤겔의 한 문장은 종일 이리저리 생각해보면 어렴풋이 대충이라도 짐작을 할 수 있지만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생각은 알 길이 없다.
<아버지는 변명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을 부러운 마음으로 읽는다. 그리고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읽는다. 나와 아버지는 대화하지 못했지만 나와 딸아이는 앞으로 대화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다행히 딸과 나는 한 시간 이상 전화통을 붙잡고 있을 때가 많다. 서로 심심하다고 무심히 전화를 걸지만, 온갖 수다를 이어나가고 진로 고민도 나눈다. 다른 집 부녀지간은 어떤지 궁금했다. 그래도 그렇지 김경희 작가처럼 아버지와 약속을 정하고 인터뷰를 하는 것은 아무래도 나는 어색해서 못할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작가는 모두 존경받을 만하다.
부녀가 정답게 만나 커피를 나누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갑자기 심장이 멎는 듯한 문장을 눈에 들어왔다.
2019년 여름, 아빠가 떠났다.
겨우 30쪽이 채 되지 않은 분량을 읽었는데도 김경희 작가의 아버지가 내 아버지처럼 느껴졌었다. 마치 내 아버지가 돌아가신 순간처럼 놀랍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런 면모를 작가적 역량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분을 내 아버지처럼 느끼게 해주는 공감의 문장이라니. 실상 김경희 작가의 아버지는 내 아버지와 닮은 면이 없지 않다. 임종을 앞두고 병실에 모인 자식들에게 건네신 손편지가 눈에 들어온다.
착한 우리 아들, 우리 딸,
너무 사랑은 하는데 표현을 못 했다.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그랬다.
내 아버지는 글 대신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셨다. 아무래도 우린 말이 낯설고 어색했다. 잠들었다고 생각한 내 손을 꼭 잡는다거나 자전거를 태우고 마을을 나다닌다거나 하는 그런 행동 말이다. 그러나 내 아버지도 저런 편지 한 줄 남겨주셨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변명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은 저자 김경희 선생이 방송 작가라는 정체성이 잘 발휘된 책이다. 작가 개인의 생활, 아버지와의 추억, 아버지의 죽음이 절묘하게 겹치면서 이어진다. 그래서 독자들은 김경희 선생의 일상에 늘 아버지가 함께한다는 그림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잔잔한 수필인데 마치 영상 드라마처럼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공감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어디에도 억지스러움이 없지만, 어디에서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온다. 표현의 절묘함도 물론이지만 절묘하게 아버지와 자신의 일상을 배치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물리적인 울림을 던진다.
아버지에게 던진 100가지의 질문은 형이상학적이거나 거창한 것은 아니다. 돌아가시고 나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아버지와 가족 간의 이야기일 뿐이다. 김경희 작가는 아버지가 남겨준 재산이 없다고 했지만 나는 이 100가지 질문에 대한 아버지의 대답이야말로 세상 그 어떤 아버지의 유산보다 더 값지고 아름다운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몇 가지의 질문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난다.
71. 아버지, 그때 택시 운전을 하시면서 퇴근길에 꼭 먹을 걸 사 오셨어요. 기억 하세요?
100. 아버지, 마지막 질문이에요. 막내딸인 저에게 마지막으로 해주실 말씀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