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빠른 독자들의 치명적인 단점은 이미 산 책인지 모르고 또 산다는 것이다. 최근에 우엘벡의 <소립자>를 재미나게 읽다가 100쪽 가까이에 이르러서야 이미 읽은 책인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둔해도 그렇지 이토록 짜릿한 내용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어쨌든 나는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는 격언을 철저히 책 구매에 적용하는 사람이다. 우엘벡의 모든 저작을 주문하려다가 간신히 참고 다음 기회로 미뤘다.
그런데 어쩐지 싸한 느낌이 들어서 서재를 뒤졌는데 세상에! 우엘벡의 나머지 저서가 빼곡하게 한자리에 있더라. 산 책을 잊고 있었던 우매함보다는 책 구매에 관한 나의 열정과 집요함에 감탄하게 되더라.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정말이지 경천동지할 일이다. 그런데 나는 몇 해 전 <채식주의자>를 읽다가 너무나 내 취향과는 맞지 않아서 포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줘버린 이후로 한강 작가의 책은 읽지도 사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긴 나는 한국현대소설은 아예 읽지 않는 편에 가깝게 된 지 오래되긴 했다. 그런데 웬걸! 한강 작가의 시집이 떡하니 서재 구석에 있다. 이 시집을 보고 한강 작가가 시도 쓴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분명 누가 좋다고 해서 사긴 샀을 텐데 누가 왜 추천했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