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대구에서 잠깐 직장 생활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도 참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동료들과 일식집에서 회식하고 주말에는 볼링을 쳤다. 그때 나만의 낙이 있었는데 월급을 받으면 양복 한 벌을 사고 점심시간엔 동네 서점에 가서 책을 샀다.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그 무렵 사들였다. 조금 웃기는 게 이 책을 사두기만 하고 오랫동안 읽지 않았는데 ‘싱아’를 ‘상아’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십 대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자 이 책을 꺼내 읽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구절은 박완서 작가의 독서 통찰 부분이었다.
책을 읽는 재미는 어쩌면 책 속에 있지 않고 책 밖에 있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창밖의 하늘이나 녹음을 보면 줄창 봐 온 범상한 그것들하곤 다르게 보였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나는 우리 집 거실에서 보이는 창밖 풍경을 볼 때마다 너무 예뻐서 행복하다. 이 집에 산 지 무려 25년이 지났는데 왜 그간은 이토록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풍경을 무심히 넘겼는지 참 안타까울 지경이다. 어쩌면 내가 책을 가까이해서 이 풍경이 이토록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