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2024 문학나눔 선정작이 발표되었다. 심의위원으로 참여했는데 한정된 기한 안에 대략 100여 권의 소설 중에서 단 몇 권의 추천작을 선택하기는 쉬운 일은 아니기도 하고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여러 다른 심의위원들의 심사평을 읽어보니 지나치게 스릴러 범죄를 다룬 작품이 많았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나는 외국 번역 작품을 심의했는데 정말 기겁할 정도로 스릴러 범죄를 다룬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더라. 그다음으로는 최근 십 수 년간 첨예한 갈등을 초래한 사회적인 이슈를 다룬 책들이 자주 보였고.
내 아내는 워낙 반듯한 사람이라 내가 감히 잔소리할 일이 거의 없고 주로 내가 훈육 당하는 신세인데 아내에게 딱 한 가지 잔소리를 한 적이 있다. 왜 아내는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한 사무실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죽일 듯이 상대를 노려보면서 이야기하고, 걸핏하면 살인 장면이 등장하며 형사나 검사 변호사 없이는 만들 수 없는 범죄 드라마를 자주 보는지 좀 화가 나더라. 자칫 집사람 정신 건강에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지도 않고.
그런데 아내 탓만 할 것이 아닌 것이 요즘 티브이를 보면 태반이 그런 부류의 범죄 드라마다. 이와 관련해서 마광수 선생의 일갈이 자꾸 떠오른다. 드라마에서 야한 장면이 나오면 뭐라고 하는데 그것보다는 살인이나 폭행 장면이 더 해로운 거 아니냐는 것이다. 담배 피우는 장면은 모자이크 처리하면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은 아무런 제약 없이 내보내는데 가당키나 한가 말이다.
출판계도 먹고 살아야 하니 잘 팔릴법한 스릴러 범죄 소설을 많이 내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다. 또 스릴러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런데 공적자금으로 지원하는 공모 사업에서는 다소 심심하지만, 의미가 깊고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며 약자를 대변하는 언더독을 응원하기가 쉽다. 내가 낸 책이 잘되는 것도 기쁜 일이지만 자칫 묻힐 수도 있는 책을 골라내서 적지 않은 지원을 받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더 기쁜 일인 것을 새삼 또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