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복 - 개정판
버트란드 러셀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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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안에 갇히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들수록 즉, 자신에게 집중할수록 행복하고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 같지만 결과는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이다. 우리들이 겪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관심의 대상이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권태, 피로, 질투, 피해망상, 죄의식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행복에의 정복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관심의 폭을 넓혀 좀 더 유연한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정답이다.

 인생의 폭이 협소할수록 우연한 사건이 우리 인생의 모든 의미와 목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되기 쉽다. 가령 극단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패했을 때의 좌절감은 엄청나지만 사고의 폭이 넓은 사람은 세상에 내가 죽을 만큼 중대한 일도 걱정할 일도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이러한 유연한 사고는 삶을 좀 더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도와준다.  흔히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은 스스로의 감옥에 갇혀 침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심의 폭을 외부로 향하라는게 더 맞는 말 같다. 1930년에 나온 책임에도 행복에 대한 처방이 오늘의 현대인들에게 적용하기에 전혀 어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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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아프가 본 세상 2
존 어빙 지음, 안정효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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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어빙의 소설 중 "사이더하우스 룰즈"를 먼저 읽었고, 당장에 반했었다. "가아프의 세상"은 섬뜩하고 처절하고 집요하다. 포스트잇을 수십군데 붙여놓을 정도로 베끼고 싶은 구절이 많고 그래서 다시 읽고 싶기도 하지만 반대로 다시는 읽기 싫을 정도로 가학적인 묘사가 많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인간의 욕정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거의 모든 인물이 이 욕정에 의해 자신의 삶이 휘둘린다. 인간의 욕정을 철저히 부정하는 제니 필즈는 가아프를 단 한번의 섹스로 낳기만 할 뿐 욕정 없는 평생을 산다. 그에 반해 가아프는 평생을 이 욕정에 휘둘리며 산다. 무자비한 욕정으로 희생당하는 혀짤린 열한살 소녀 엘런 제임스, 그리고 스스로의 혀를 잘라버린 제임스파들이 있다. 그밖에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도 욕정이라는 관점에서 서술되고 분류된다.  

 이러한 서술방식에 처음에는 낯설고 사실은 조금 짜증까지 났었다. 하지만 존 어빙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은 도중에 이 책을 닫아버리도록 하지 않았다. 가아프 가족에게 불어닥친 우연한 사건들로 마치 폭풍우를 견뎌내듯 이들은 살아간다. 가아프가 본 세상에서는 저녁에 허리를 잡고 웃다가도 이튿날 아침은 살인적일 수도 있었다,는 말처럼 예기치 못한 오히려 희극적이기까지한 여러 인물의 죽음이 수긍이 갈 정도이다.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안은 던컨이나 엘런에게는 가슴아픈 동정심이, 여러 해동안 글쓰기자체를 힘겨워하는 가아프에게는 또 그런대로의 아픔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이 많은 인물들 중 이 소설의 출발이기도 한 제니 필즈의 간호사, 작가로서의 강인한 인생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그녀가 과연 여권주의자였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인생을 자신의 선택에 의해 추진해나가는 힘이야 말로 그녀가 가진, 그리고 가망없는 환자와 같은 우리들이 갖어야 할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가아프가 꿈꾸던 안전하고 평화로운 아버지의 환상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하지만 어쨌거나 가아프 이후에도 삶은 계속 존재한다. 그리고 어쩐지 그런 삶들이 존재하는 방식마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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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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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에게 사랑없이도 살 수 있냐고 묻는다. 소설은 로자아줌마와 모모라는 아이의 관계를 통해 사랑없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아무리 비참한 환경에서 살아갈지라도 사랑만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이 소설의 결말은 그래서 슬프지만 따뜻하다. 창녀들의 아이들을 키우는 로자 아줌마는 역시 창녀의 아이인 모모와 헤어지기 싫어 모모에게 나이를 속인다. 자신의 출생의 슬픔 때문에 모모는 나이에 비해 조숙하다. 아이의 조숙함, 그러한 자기 앞에 놓인 생을 이끌어가는 아이의 모습은 나를 쓸쓸하게 만들었다. 로자 아줌마, 카츠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와 같은 마음 따뜻한 어른들의 믿음 속에서 모모는 자신의 생을 등에 지고 한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몇 안되는 것들 중 한가지는 그들을 진실로 믿어주는 일 뿐이 아닐까. 모모는 자신을 지켜주었던 로자 아줌마를 떠나 보냈지만 로자 아줌마와 진실된 사랑을 나누었기 때문에 올바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소설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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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양장)
로버트 뉴튼 펙 지음, 김옥수 옮김, 고성원 그림 / 사계절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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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히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주인공과 저자의 이름이 로버트 펙으로 같고, 주인공의 아버지인 헤븐 펙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되어 있어 실화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의 직업은 돼지를 잡는 일이다. 돼지를 죽이는 일을 하는 사람의 몸에선 항상 돼지냄새와 죽음의 냄새가 났다. 행여나 이런 일을 하는 아버지를 부끄럽게 여기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다. 노동의 신성함이 아버지의 몸에 배어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소설의 말미에 나오지만 아무래도 이 아이는 늦둥인것 같다. 누이들은 모두 시집을 갔고 형들은 어떤 이유로 죽고 이 아이만 농장에 남아 십삼년의 시간을 아버지와 보낸다. 글 조차 읽고 쓰지 못하는 아버지이지만 아이는 이러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검소함, 예의, 농부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며 곧게 자란다. 특히 어렸을 때 부터 함께 자란 돼지 핑키가 새끼를 낳을 수 없는 암퇘지여서, 그리고 가난 때문에 먹을 것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하는 장면은 이 소설 전반부의 밝고 따뜻함을 한없이 무겁고 어둡게 만든다. 아이는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가난했지만 한번도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여기지 않았던 아버지의 가르침, 차분한 말투가 소설 곳곳에 배어있어 숙연하게 만든다. 돼지가 왜 한마리도 죽지 않았는지는 이 소설을 직접 읽어 확인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밝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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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미술관 - 그림이 즐거워지는 이주헌의 미술 키워드 30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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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은 미술의 개념들 총 30가지에 대하여 너다섯페이지 정도씩 풀어서 서술하고 있다. 그림들은 익숙한 그림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똑같이 눈을 뜨고 보더라도 자신이 아는 것만 혹은 보고자 하는 것만 보이듯 이러한 개념들을 알고 보는 그림은 그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미술에 관한 지식들을 아는 것이 그림 감상에 도움을 주는가를 생각해보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는 애매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견해이다. 어떤 개념이란 것을 알게 되면 보이지 않는 일종의 울타리가 만들어져 그 선을 넘어서 감성적으로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방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서문에서도 말하였듯이 그림감상이란 것은 어찌보면 하나하나를 분석해가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직관이고 인상이고 느낌인 것이 아닐까. 다만 아, 이 그림은 너무 좋구나, 에서 그림감상이 끝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을테니 지식과 직관이 서로 도와가며 상승작용할 수 있는 식견을 길러야 할 것이다. 좋았다면 무엇이 구체적으로 좋은지 스스로에게 물어가며 그림을 봐야겠다. 우연히도 이 책과 요즘 같이 읽었던 <바덴바덴에서의 여름>에 나오는 "시스틴 마돈나"의 그림을 이 책에서 설명과 함께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이런 우연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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