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 한두 줄만 쓰다 지친 당신을 위한 필살기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
이만교 지음 / 그린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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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글쓰기가 인생의 최대 목표가 되어야 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 같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정작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전념을 다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고로..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은 있지만 별다른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면 글을 잘 쓰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책은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를 논하기 전에 이러한 각오, 의지, 결심 같은 것을 묻고 있다. 당신은 정녕 간절하게 쓰고 있느냐고.. 글쓰기에 대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서 뜨끔한 것은 왜일까. 그 다음에 말하는 것은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은 그저 묵묵히 열심히 글을 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글쓰기 선생님을 찾아다니고 사람들과 모여 자신의 글들에 대해 논의를 하고 누군가의 조언에 따라 글을 수정하는 것은 결국 자기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잣대에 의해 참신한 글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기존의 장르, 쓰기 이론들에 꿰어맞추어서는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고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주의깊게 보았던 것은 글쓰기에는 타자의 눈을 의식하는 '도덕적 정직'보다는 인간의 미묘한 심리를 잘 포착해내는 '실질적 도덕'의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결에 교차하는 이질적 심리들을 잘 포착해낼 수 있는 것이 글을 잘 쓸 수 있는 비결이다. 자신의 심리상태를 잘 살피는 사람은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고 이는 언어적 감각을 키우는데 기초가 된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좋은 글을 많이 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독서량으로 그것을 판단할 수는 없다. 전태일은 비록 한권의 책을 읽었지만 그 한권의 책이 그의 인생을 뒤흔들어놓았다. 성실한 독서, 능동적인 독서.. 기억해 두어야 한다.  

 광대한 우주속에서는 나라는 존재는 없어도 되는 아주 미약한 존재이지만 없어도 되는데서 생겨난 '잉여'에서 오히려 자유로움이 피어난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살 권리가 있다는 것.. 글쓰기 책이지만 이 책의 말미에 씌여진 이부분에서 큰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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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사전
A. C. 그레일링 지음, 남경태 옮김 / 에코의서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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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기, 절제, 희망, 관용... 이런 키워드들은 일상을 무심코 살면서는 대개 깊이 생각하는 것들이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나름의 기준을 내면에 세워두고 실천하며 사는 것은 자신의 삶을 좀더 풍성하게 만든다. 덕이란 것은 태어나면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길러지는 것들이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생각만 하는 것들은 결코 덕이 아니다. 행동으로써 실천되었을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이 책은 미덕과 악덕의 여러가지 주제들에 관해 서너페이지 분량으로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다. 글은 짧지만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다.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이라도 인지하는 순간 우리의 삶의 방향은 조금 변화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저자의 다양한 인용들 덕분에 재밌게도 읽을 수 있었다. 밑줄친 부분이 엄청 많은데 그중 몇가지만 옮겨본다.  

 

관용은 다양한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이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만약 우리가 타인의 행동에 불쾌감을 느낀다면 그것을 지나치게 신경 쓰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관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남들을 제대로 관용할 수 있다. 그 방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문명 생활이 달성해야 할 한 가지 목표다.

용기와 양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가장 힘든 상태(패배가 대표적인 예다)에서 가장 값진 교훈이 나온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보면 진짜 패배란 패배감에 빠져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는 경우다.

희망은 실현여부를 떠나 하나의 미덕이다. 희망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가치이자 목적이며, 용기와 상상력, 가능성과 기대에 찬 긍정적인 태도와 관련이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업적이 아니라 그 사람의 희망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최선은 희망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증오하는 것은 그 내부에 있는 자신의 일부분을 증오하는 것이다. - 헤르만 헤세 

건강할 때는 누구나 아픈 사람에게 좋은 충고를 한다. - 테렌스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알지만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냉철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은 다음의 진리를 말해준다. 자신이 받은 선물이 진정 무엇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선물을 준 상대방을 아주 잘 알거나 무척 사랑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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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수집하는 노인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현정 옮김 / 아고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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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실린 단편들은 어떤 원작들에서 착상을 하여 저자가 지어낸 얘기들이다. 실제로 그 원작들을 찾아읽고 싶은 마음들이 뭉글뭉글 피어오른다. 대문호들의 마지막 모습들은 어떠했을까. 젊은이에게 조차 고독이란, 어떻게 해결할 수 없이 늘 곁에 두고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물며 글을 쓰는, 노년에 이른 이들에게 고독은 어떤 숙명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하게 된다. 그 고독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게 그려진다. 마크 트웨인은 열여섯미만의 해맑은 소녀들을 통해 인간의 추악함을 잊고자 했다. 헤밍웨이는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하고자 노력하고, 헨리 제임스는 병원에서의 자원봉사를 택한다. 에드거 앨런 포는 등대지기로 어떤 박사의 실험에 동참하며 고독에 잠식되어 가는 포유류의 변화를 일기로 기록한다. 에밀리 디킨슨은 좀 다른데 레플리럭스라는 인형으로 새로 태어나 자신의 은둔생활과는 대조되는 당황스런 처지에 놓인다. 살아생전 작가로서 성공의 반열에 오른 이들도 노년의 황량함에는 어쩔 줄을 몰라한다. 황량함을 그려내는데 뛰어난 재주가 있는 조이스 캐롤 오츠의 글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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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팔로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고서, 어머니를 위해 내가 벌이려고 하는 모든 투쟁들을, 내가 내 인생의 새벽에 나 자신과 맺은 약속을 생각하였다. 어머니 말이 다 옳았던 것이 되게끔 만들리라, 어머니의 희생에 의미를 주리라, 저들과 당당히 세계의 소유권을 두고 겨루어 이긴 다음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는 약속을. (p.13)

나는 인생의 가장 어둡고 구석진 곳에 숨겨진 은밀하고 희망적인 논리를 믿고 있었다. 나는 세상을 신용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부서진 얼굴을 볼때마다 내 운명에 대한 놀라운 신뢰가 내 가슴속에 자라남을 느꼈다. 전쟁 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나는 항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느낌을 가지고 위험과 대면하였다. 어떤 일도 내게 일어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어머니의 해피엔드이므로. 인간이 절망적으로 세계에 부과하려 하는 천칭의 균형 이론을 통해 나는 항상 자신을 어머니의 승리로 보았다.
그 신념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그것은 어머니가 아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당신의 삶과 희망의 유일한 근거가 된 그 아들에게 품어온 신앙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으리라. (p.46)

나는 사는 동안 놀라운 행복을 체험했고, 지금도 느낀다. 예를 들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소금 친 오이를 좋아했다. 작은 오이가 아니라 진짜 오이. 유일무이한 오이. 사람들이 러시아 오이라고 하는 것 말이다. 언제 어디서나 나는 그것을 살 수 있다. 나는 자주 그것을 한 파운드 사서 햇빛이 비치는 어느 곳, 바닷가, 아니면 보도나 벤치 등 어느 곳에서라도 내 오이를 깨문다. 그러면 나는 완벽하게 행복해지는 것이다. 우정 어린 시선으로 사물과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평온해진 가슴으로 햇빛을 받으며 그렇게 머물러 있는다. 그러면 나는, 인생은 진정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며, 행복은 도달 가능한 것이고, 단지 자기의 싶은 소명을 알아, 자기가 사랑하는 것에 헌신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안다. 자아를 완전히 버리고서. (p. 136)

'용기를 내라, 내 아들아. 너는 월계관을 이마에 두르고 집으로 돌아오리라.......‘ 그랬다. 그처럼 단순했다. 어머니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낡고도 가장 천진한 상투어법을 아주 자연스럽게 다시 찾아내곤 하였다. 나는 어머니가 그런 편지들을 필요로 했다고, 어머니는 어머니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해, 내가 도모하는 일보다는 훨씬 어머니 자신에게 용기를 주기 위하여 그것을 썼다고 생각한다. (p.209)

나는 어머니의 노고와, 어머니의 건강을 빨아먹고 살고 있었다. 내가 마침내 내 약속을 실현시키기 시작하고, 소매에 소위의 띠를 늘어뜨리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 인생에 첫 승리를 가져다주기 시작할 때까지는 적어도 이 년이란 세월이 가로놓여 있었다. 나에겐 도망칠 권리가, 어머니의 도움을 마다할 권리가 없었다. 나의 자존심, 나의 남성다움, 나의 존엄성, 이 모든 것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내 미래에 대한 전설이 어머니를 살아 있게 하는 힘이었다. (p.213)

나는 죄의식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 책들이 모두 존엄성과 정의에의 호소로 가득 차 있고, 그 속의 인물들이 그토록 열심히, 그토록 소리 높여 인간됨의 명예에 관해 말하는 것은, 아마도 내가 스물두 살이 되도록 병들고 지친 늙은 여인의 노동에 의해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어머니가 무척 원망스럽다. (p.214)

나는 크루아상에 대해서 매우 큰 애정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의 생김새, 그 바삭대는 맛. 기분 좋은 온기 등에는 무언가 마음 통하는 우정 같은 것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옛날처럼 그것들을 잘 소화시키진 못한다. 그래서 우리의 관계는 다소간 플라토닉해졌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바구니에 담겨 카운터 위에 놓여 있는 것이 나는 좋다. 그것들은 공부하고 있는 청춘을 위해 제3공화국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하였다. 드골 장군식으로 말하자면, 그것들은 좋은 프랑스인들인 것이다. (p.229)

나는 문으로 갔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미소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완전히 마음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
어머니의 용기 안에 어떤 것이 내게로 옮겨와, 내 안에 영원히 남았다. 지금도 어머니의 용기가 내 안에 깃들어 살며, 절망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내 인생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p.283) 
 

 

* 이 책은 너무 좋은 구절이 많아서 머릿속에 다 입력해놓고 싶을 정도였다. 어머니때문에 절망할 수 없고 그래서 힘든 삶이었지만.. 그렇기에 늘 내 곁에 희망이있었다는 것.. 어머니는 자신의 존재를 통해 그 모든 것을 알려 주었다.  

* 주인공이 좋아하는 간식이 '러시아 소금 친 오이'다. 이 소설에는 '소금 친 오이'가 정말 자주 나오는데 그 맛이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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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약속
로맹 가리 지음, 심민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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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인생의 가장 어둡고 구석진 곳에 숨겨진 은밀하고 희망적인 논리를 믿고 있었다. 나는 세상을 신용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부서진 얼굴을 볼때마다 내 운명에 대한 놀라운 신뢰가 내 가슴속에 자라남을 느꼈다. 전쟁 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나는 항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느낌을 가지고 위험과 대면하였다. 어떤 일도 내게 일어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어머니의 해피엔드이므로. 인간이 절망적으로 세계에 부과하려 하는 천칭의 균형 이론을 통해 나는 항상 자신을 어머니의 승리로 보았다.
그 신념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그것은 어머니가 아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당신의 삶과 희망의 유일한 근거가 된 그 아들에게 품어온 신앙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으리라. (p.46) 
 

로맹가리의 이 소설은 1차 대전이 발발한 1914년에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태어나 폴란드를 거쳐 프랑스에 정착하여 난민의 신분으로 성장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남자의 삶의 배경에는 언제나 '어머니'라는 이름의 존재가 있다. 누구에게나 있는 어머니.. 어머니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소설에서는 어머니의 부서진 꿈, 미완의 꿈들을 성취해내는 일이 내가 이땅에 태어난 이유이다. 전쟁통에서도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지탱해주는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어머니의 모습이 사랑과 헌신이라는 단어로만 표현하기에는 이 소설은 너무나 많이 담고 있는데 마치 어떤 종교적 신앙과도 같은 모습이다. 소설의 말미에 주인공이 영국에 있을 때 당뇨병을 심하게 앓고 있던 어머니와의 연락이 점점 뜸해진다. 하지만 알고보니 어머니는 이미 삼년 반전에 죽은 것이고 그 편지들은 죽기 전에 자신의 아들을 위해 살아있는 것처럼 써 놓은 것이었다. 신은 세상의 모든이에게 신을 보낼 수 없어 어머니라는 존재를 만들었다고 한다.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다.) 내 삶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힘, 무한한 사랑, 거역할 수 없는 신념.. 그곳엔 어머니라는 존재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살아간다. 나는 내 어머니의 해피엔드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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