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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약속
로맹 가리 지음, 심민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2월
평점 :
나는 인생의 가장 어둡고 구석진 곳에 숨겨진 은밀하고 희망적인 논리를 믿고 있었다. 나는 세상을 신용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부서진 얼굴을 볼때마다 내 운명에 대한 놀라운 신뢰가 내 가슴속에 자라남을 느꼈다. 전쟁 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나는 항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느낌을 가지고 위험과 대면하였다. 어떤 일도 내게 일어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어머니의 해피엔드이므로. 인간이 절망적으로 세계에 부과하려 하는 천칭의 균형 이론을 통해 나는 항상 자신을 어머니의 승리로 보았다.
그 신념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그것은 어머니가 아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당신의 삶과 희망의 유일한 근거가 된 그 아들에게 품어온 신앙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으리라. (p.46)
로맹가리의 이 소설은 1차 대전이 발발한 1914년에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태어나 폴란드를 거쳐 프랑스에 정착하여 난민의 신분으로 성장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남자의 삶의 배경에는 언제나 '어머니'라는 이름의 존재가 있다. 누구에게나 있는 어머니.. 어머니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소설에서는 어머니의 부서진 꿈, 미완의 꿈들을 성취해내는 일이 내가 이땅에 태어난 이유이다. 전쟁통에서도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지탱해주는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어머니의 모습이 사랑과 헌신이라는 단어로만 표현하기에는 이 소설은 너무나 많이 담고 있는데 마치 어떤 종교적 신앙과도 같은 모습이다. 소설의 말미에 주인공이 영국에 있을 때 당뇨병을 심하게 앓고 있던 어머니와의 연락이 점점 뜸해진다. 하지만 알고보니 어머니는 이미 삼년 반전에 죽은 것이고 그 편지들은 죽기 전에 자신의 아들을 위해 살아있는 것처럼 써 놓은 것이었다. 신은 세상의 모든이에게 신을 보낼 수 없어 어머니라는 존재를 만들었다고 한다.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다.) 내 삶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힘, 무한한 사랑, 거역할 수 없는 신념.. 그곳엔 어머니라는 존재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살아간다. 나는 내 어머니의 해피엔드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