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   정   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하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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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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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개성에는 사람을 따분하지 않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성실성 때문이었을까. 그는 파리를 처음 보면서도 별로 감격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에게는 낯선 풍경일 텐데도 그다지 놀라는 기색 없이 덤덤히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파리를 수없이 많이 가보았지만 갈 때마다 늘 마음이 설렌다. 파리의 거리를 걷노라면 뭔가 모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그런데 스트릭랜드는 아무런 변화 없이 평온하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는 자신의 영혼을 어지럽히고 있던 영상 말고는 아무것도 눈앞에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71쪽

삶의 전환은 여러 모양을 취할 수 있고,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성난 격류로 돌을 산산조각내는 대격변처럼 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마치 방울방울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에 돌이 닳듯이 천천히 올 수도 있다.-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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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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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고는 인도인인 애인과 헤어지고 나서 말을 잃는다. 짐을 모두 싸서 고향으로 내려간 주인공은 고향에서 달팽이식당이라는 가게를 연다. 하루에 손님 한 테이블만 받는 이 식당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찾아온 사람들은 링고가 해주는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리게 된다. 생명력을 얻고 다음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힘 말이다. 아주 짧은 소설이어서 뭔가 말을 하다만 느낌이 든다. 엄마와의 불편한 관계가 그려지는데 소설의 마지막에서 엄마와 화해를 하게 된다. 기르던 돼지의 몸 전체를 각종 요리로 승화시키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누군가는 늘 요리를 하고 누군가는 그 요리를 먹고 힘을 얻는다는 것, 나는 전자일까 후자일까. 다양한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묘사하는 부분은 괜찮았지만 그 요리들이 이야기로 엮어지는 부분이 좀 역부족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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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더 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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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부 의사를 다시 만났다. 어딘지 삐걱거리는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의사 이라부를 생각만 하고 있어도 흐뭇해진다. 몸의 병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병만큼 표는 나지 않으면서 사람을 좀먹는 것도 없다.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이 그렇다. 특히 마지막에 논픽션 작가인 강박신경증 환자의 사례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확인의 습관을 끊임없이반복하는 것이다. 집밖으로 나갔다가 가스밸브를 잠갔는지 한번 더 확인하러 들어오는 경우가 나도 적지 않다. 아, 세상은 걱정을 끼치는 사람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걱정을 하는 사람들로 나누어진다고 했던가. 나는 정말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이라부의 해결안은 그것을 완화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더 걱정하게 만들면서 스스로 제풀에 나가 떨어지도록 하는 방법을 썼다. 또 그런 습관이 꼭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니 오히려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기도 하잖는가. 사람들의 병세를 오히려 자신이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인지하도록 하는 것이 이라부가 한 일이었다.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살기란 어렵다. 또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모두들 자신만의 마음의 병에 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병을 치유하기 위한 가장 첫 단계는 두렵겠지만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직시하고 상황파악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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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윤상인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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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는 <산시로>,<그 후>,<문>으로 이어지는 3부작 중 중간에 해당한다. 나는 이 사실을 모르고 어쩌다가 중간을 가장 먼저 읽게 되었는데 이 소설 하나 만으로도 완성된 하나의 작품이므로 뭐..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이스케는 서른살이 되도록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않은 채 거기다가 결혼을 한 것도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닌 상태이다. 집안에서는 결혼을 하라는 압박이 심하다. 아버지는 물론 형에 형수까지 가담한 상태다. 그런 그에게 대학시절부터 친구인 히라오카와 그의 아내 미치요가 찾아온다. 미치요는 그 둘의 절친의 여동생이다. 화근은 자신이 사랑하고 있던 미치요를 무슨 객기로 친구와 결혼하게 만들었다는 것. 그것으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이제와서 자신이 미치요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덕적으로 번민에 빠진 다이스케는 미치요를 책임지겠다며 히라오카에게 말하고 그와 의절을 하게 된다. 소설은 더 이상의 결론도 보여주지 않은 채 답답하게 끝나버렸다. 아마도 다음 소설을 보면 알게 될 수 있는 듯하다. 평소에 우유부단하고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을 경멸하는 다이스케는 어떤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설의 중간에 잠깐 나오는데 다이스케가 매사에 우유부단한 것은 모든 면을 고려할 줄 아는 융통성을 지녔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나온다. 어쩌면 그러한 다이스케의 성격에 비추어보았을 때 미치요를 책임지기로 한 것도 본인의 강력한 의지라기 보다는 상황(결혼을 하라는 집안의 압력 등)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추측을 해본다. 인간은 상황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라는 생각에 점점 더 동조하게 된다. 그런 인간의 심리를 매우 잘 포착하고 그려낸 나쓰메 소세키의 시선에 감탄을 하게 된다. 어쩐지 현실에서는 다이스케처럼 용감한(?) 고백을 하는 자는 아마도 드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보다는 다이스케의 고백을 듣는 히라오카의 절제되지만 무너지는 심정에 공감을 할 사람이 아마도 더 많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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