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옷의 세계 - 조금 다른 시선, 조금 다른 생활
김소연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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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묘하게 단어와 단어 사이를, 보이지 않는 간극을 표현해내는 능력이 시인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인 것 같다. 나의 이해의 범위는 시인이 말하는 그 어디쯤을 맴맴 돌다가 한 곳에 가만히 앉아 아마 이것일꺼라 생각하며 다음장으로 넘기곤 했다. 마음이 참 편안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모국어를 읽는 느낌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어찌보면 어려운 것 같기도 한 이 책. 산문이지만 산문이 아니라 한권의 시집같기도 하다. 아래 시인이 되기 위한 각오같은 것이 나온다. 비단 우리가 살아가면서 시인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가 되기 위한 마음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아 옮겨본다.

 

나에게 시를 배우는, 시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물었다.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가능한 일인지요. 어린 후배들에게도 자주 받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을 한다. 비경제적 비사회적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적어도 내게는 가감 없이 가능한 일이다. 가능할뿐더러, 최소한의 자본 논리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덤으로 높은 자존감까지 준다. 경제적 사회적 무능에 대한 비참보다 더 큰 비참이 우리에겐 있다. 우리들의 삶은, 삶의 규율들은 어째서 이토록 허약하고 허위인가. 인간이라면 과연 이런 정면과 배면에 대하여 어떤 응전력이 있어야 하는가. 허기에 찬 나의 영혼과 끊임없이 세상 끝의 가능성에 저 혼자 가닿곤 하는 나의 심연은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가 등등. 시인으로 산다는 비참은 방식이 좀 다르다. 먹고 사는게 비참하여 더 큰 비참을 외면하는 삶이 아니라, 더 큰 비참의 참담함 때문에 먹고사는 비참을 외면하게 되는 삶.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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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31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대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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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와, 몇년 째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다 읽었다. 내용은 둘째치고 내가 끝까지 다 읽었다는데 의미가 크게 부여된다. 까라마조프 씨네 삼형제에 관한 이야기인데 결국 첫째인 미짜가 친부살해의 누명을 쓰게 되고 소설은 진짜 범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결론으로 귀착된다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아들사이의 여자문제, 돈 문제까지 개입되어 상황이 복잡해진다. 범인으로 의심받던 스메르자꼬프가 자살해서 결국 미짜가 범인으로 유죄판결이 나게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그 사람을 싫어하는 마음이 살인이라는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살인과 버금가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미짜가 실제 범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미짜는 그런 마음만으로도 죄에 대한 형을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왜냐면 친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그에게는 늘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짜를 변호하는 과정에서 미짜의 성장기에 하등 도움이 안되며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이 친부를 과연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도 생각할 거리다. 그럼에도 그 역시 한 인간이기에 그 존재자체 만으로도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심오한 문제들이 소설 곳곳에 숨어있다. 일류사의 가슴 아픈 죽음에서 작가의 아이들에 대한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미짜의 친부살해사건과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읽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동일 인물에 대해 이름이 바뀌는 거야 적응하면 되지만 나는 도무지 그루센까와 까쨔 이 두 여자의 심경이 이해가 잘 안되었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고나 할까. 어쨌든 한달에 걸쳐 읽고나니 성취감은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철학적인 문제들을 많이 다루고 있어 역시 고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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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9
제임스 M. 케인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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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는 따로 카테고리를 만들 정도로 모으고픈 욕구가 충만했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하나씩 사모으니 30여권은 되는 것 같다. 요즘 다른 출판사에서도 고전들을 예쁜 디자인으로 출간하고 있어 오히려 민음사판이 조금 촌스럽게 느껴진다. 어쨌거나 거칠한 종이며 조금 기다란 판형은 여전히 나를 기분좋게 한다. 이 책은 사둔지 좀 된 책인데 얇은 책을 읽으려 꺼내들었다가 몇시간안에 다 읽었다. 제목이 무색하게도 소설에는 포스트맨도 벨도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저자가 제목을 짓는 과정에서 발생된 에피소드로 이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하드보일드라 하는데 요즘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폭력적이지도 성적이지도 않은 장면들이 담담히(?)그려지고 있다. 그만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자극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한 것이겠지. 사랑했던 두 남녀는 무모한 순간의 판단에 의해 살인까지 저지르고 운좋게 죄값을 치르지 않고 빠져나왔으나 끝내 비밀을 공유하며 살아가야 하는 죄책감에 서로를 의심하기에 이른다. 결국 둘다 파국으로 치닿고 생을 마감하게 된다. 단순한 플롯이지만 더없이 행복할 것만 같았던 그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과정의 심리묘사를 따라 읽는 다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책장 한켠에는 역시 읽지 않은 <시계태엽오렌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이 겨울이 다 가기전에 읽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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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허풍담 3 - 피오르두르의 은밀한 열정, 완결
요른 릴 지음, 백선희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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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는 곳은 1월 초에 거의 한 2주간 영하 15도에서 머물렀던 것 같다. 지금은 기온이 좀 올랐지만 1권을 읽을 즈음만 해도 정말 추웠다. 뉴스에서 냉장고가 바깥보다 온도가 높다고 했으니 할 말 다했지;; 나는 추위를 많이 타서 밖에서 들어오면 아랫목에 똑바로 누워 그대로 잠이 들곤 했다.

오랜만에 정말 재밌는 책을 만났다. 북극 허풍담이라는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제목처럼 유쾌하기도 하고 철학적이기도 하다가 가슴 찡해서 울 뻔 하기까지 했다. 북극에서 살아가는 이 사람들의 직업은 사냥꾼(곰이나 사향소등을 잡는)이다. 그러니까 모두 다양한 이유로 사냥을 업으로 삼는 회사에 취직한 셈이다. 직장이 북극이라니.. 상상도 가지 않는다. 읽는 내내 <남극의 셰프>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인간이 살기에는 극단적인 환경을 갖춘 이곳에서 살아가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지애다. 모두가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고 주로 실내에만 머물다보니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지 않고는 살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말이 필요없다. 한번 읽어보시라는 말밖에... 3권까지 나왔는데 정말 책 뒷날개에 써있는대로 열린 책들 사장님에게 출간 압박용 메일을 보내면 어서 출간해주실까? 잘 부탁드립니다. 4권 이후로 쭉쭉 출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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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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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다보면 하루키 특유의 심드렁함이 여전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가 들었어도 그 성격이 어디가겠냐만 젊은 시절의 글에서부터 시작해 이토록 일관되게 심드렁할 수 있는 것도 작가의 개성이 되는 플러스요인이 될 수 있겠다. 나도 비교적 심드렁하게(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 살아가는 처지(?)이지만 때론 아주 작은 것에도 눈물흘리기도 하고 그런다. 심드렁하게 사는 건 장단점이 있는데 왠만한 충격에도 잘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멘탈이 된다고나 할까.. 좋게 말하면 이렇게.. 문제는 실제는 속안에서는 싸우는데 그걸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면 좀 곤란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는 이런 내 성격을 사랑(?)하기로 하고 잘 지내왔다. 중요한 건 나이가 들어 만사 귀찮고 매너리즘에 빠지는 게 아니라 적당히 감정적으로는 매트하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 라든가 생활의 신조를 유지하면 살아가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다. 하루에 한 꼭지씩 읽으면 좋다.

 

사람이란 나이에 걸맞게 자연스럽게 살면 되지 애써 더 젊게 꾸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애써 자신을 아저씨나 아줌마로 만들 필요도 없다. 나이에 관해 가장 중요한 것은 되도록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가 꼭 필요할 때 혼자서 살짝 머리끝쯤에서 떠올리면 된다.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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