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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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진실을 알고 싶지 않다는 건 아냐. 하지만 지금 와서 그런 건 그냥 잊어버리는 게 좋을 거라는 느낌이 들어. 아주 오래전에 일어난 일인 데다 벌써 깊이 묻어 버린 거니까."

 사라는 얇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는 건 분명히 위험한 일이야."

"위험하다고, 어떻게?"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한 역사를 지울 수는 없어." 사라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것만은 기억해 두는 게 좋아. 역사는 지울 수도 다시 만들어 낼 수도 없는 거야. 그건 당신이라는 존재를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p.52

 

그의 이름처럼 색채도 없고, 평범하기 그지 없는 쓰쿠루의 삶에 사건이 일어난다. 겉으로 보았을 때 사건의 수준은 너무나 미미하다. 한때 친했던 친구들이 동시에 등을 돌려버린 것이다. 이유를 모른다. 그 사건으로 죽음에 가까이 다가갈 정도로 힘들어하지만 쓰쿠루는 그렇게 그 사건을 묻어버린채 십육년을 살아간다. 한참이 지난 후에 만난 사라라는 여자친구의 권유로 그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이야기다. 그 친구들을 만나는 과정을 바로 순례라고 한 것이다.

우리 일생에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겉으로 보았을 때 경미한 사건이 돌덩이같은 충격이 되어 그 이후의 삶을 흔들어놓기도 한다. 그런 소소한 사건들의 의미와 그 사건으로 인해 우리 삶이 어떤 영향을 받고 변화해가는지에 대한 소설이다. 사실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대다수는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시로는 왜 그런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했을까. 심지어 죽음의 원인조차 이해할수 없을 때도 있다. 시로는 왜 교살당했는가와 같은..

중요한 것은 그 사건들이 나의 인생의 역사를, 궤적을 만든다는 것이다. 사라의 말처럼 역사를 지울수는 없다. 설령 그것으로 인해 나의 삶에 어떤 변화를 끼치지 못했을지라도. 색채가 없는 인생은 없다. 다만 그 빛깔을 빨리 찾느냐 조금 더디게 오느냐,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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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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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용이 재밌다고 한다면 어디까지나 지은이가 글을 맛깔나게 쓰기 때문이다. 소재는 암울하고 단 한달이라도 이런 일들을 체험하라고 한다면...

제목이 인간의 조건이다. 최소한 책을 읽는 나를 포함한 우리는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으로 태어나기만 하면 인간이란 말인가. 아니다. 인간답게 살아야 인간인 것이다. 지은이가 일을 시작하려하면 사람들은 한결같이 물어보았다. 젊은 사람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저자가 어떤 의도에서 이런 다양한 힘든 일을 전전했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객관적인 시각에서 우리가 흔히 경험하지 못하는 일들을 서술하고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는 점에서는 고맙다.

가장 재밌게 읽었던 점은 그나마 나에게 친숙한 아르바이트인 편의점과 주유소 알바였다. 감정노동의 힘든 점이 잘 그려져 있다. 와, 세상에 이렇게 안하무인인 사람들이 많단 말인가.

원양어선을 타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소개소에 40만원을 주는데 이 돈이 아까워 선주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돼지농장의 더러움과 오이 비닐하우스의 쪼그려 하는 일의 힘듦. 공장 생산직 노동의 무료함과 위험성이라는 양면성. 하지만 섣불리 그 일들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유지하는 최고의 신성한 노동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그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글은 정말 재밌지만 현실은 슬프고 힘들다. 노동의 고됨이 문장 하나하나에 배어있다. 읽는 것만으로도 일을 한달 한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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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지구를 돌려라
칼럼 매캔 지음, 박찬원 옮김 / 뿔(웅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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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돈다. 우리는 휘청거리며 계속 나아간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p.589)

 

이 소설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맞물려 돌아간다. 처음에는 코리건의 수도사같은 삶이 흥미로워 이 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갑자기 이야기가 끊기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알고보니 여러명의 이야기가 서술되면서 우연히도 서로 스치게 되는 내용이었다. 인종도 삶의 배경도 상처도 제각각이지만 사람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게 된다. 누군가의 상처는 생명과 맞바꿀 정도로 치명적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상처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상태에서 우연히 세계무역센터 사이를 무모하게 걷는 남자를 바라보게 된다. 그저 그렇게 하는 행위가 의미 있다는 것,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나는 그 이전의 나가 아닌 다른 내가 되는 것.. 그렇게 삶은 돌고, 삶이 무료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나이를 먹어간다. 글쎄다.. 세월을 보내는 것이 곧 삶의 내공으로 연결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모든 사람이 꽃이고, 위대하고, 소중하다는 마음이 들어 타인의 몸짓, 말소리, 눈의 표정 하나에도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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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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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읽는 소설 마다 너무 재미있다. 역시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말하려는데 오늘 오후부터 급격히 추워져서 조만간 얼음이 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매년 10월에는 독서열이 불타오른다. 연말이 머지 않았으니 할당량을 채우듯 독서에 가열차게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별 기대없이 잡은 이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 읽다가 2시에 잤는데 다음날 어찌나 졸리던지.. 이젠 2시에 자면 다음날 지장받는 나이가 된 것이다. 흑;;

에벌린이란 중년의 위기를 맞은 여인이 요양원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니니라는 친구(나이차이는 물론 많이 난다.)에게 스레굿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제목처럼 루스와 이지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사람들은 요즘 말로 힐링이란 것을 하게 된다. 하도 여기저기서 힐링힐링 하니 나에게는 거부감이 조금 들기도 하는 그 힐링.. 날씨가 쌀쌀해서 그런지 가을이라 그런지 이렇게 따뜻한 이야기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다. 요리 이야기가 나오는 이야기는 언제나 좋다. 작은 흑인마을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이며, 나름의 상처를 안고 살지만 서로 의지하며 극복하는 이야기들도 좋다. 아마, 한 여름에 읽었다면 그렇게 좋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 같다. 덜 익은 토마토를 튀기면 어떤 맛이 날까. 정말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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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링킹
캐럴라인 냅 지음, 고정아 옮김 / 나무처럼(알펍)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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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롤라인 냅의 책이다. 저자가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결코 내가 읽지 못했을 그런 종류의 책이다. 왜냐하면 나는 술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우리 가족 모두 술을 마시지 않는다. (아니 유전적으로 마시지 못하는 것이라고 해야..) 여튼 이 책은 고통스럽고 유혹적이고 그야말로 중독 그 자체이다. 전문직에 유복한 가정(그러나 비툴린..)에서 자란 키 크고 예쁜 젊은 여자가 무엇이 부족해 알코올에 집착하게 되는지.. 그 극복과정을 그린 것이다. 정말로 솔직하고 술로 말미암아 저자가 겪었던 과정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정신분석가 아버지와 감정표현을 전혀 하지 않는 어머니 아래서 자란 저자는 애정결핍에서 오는 허기를 술로 채웠다. 사람들과 쉽게 사귀지 못하고 건강한 인간사이의 관계를 힘들어한다. 그런데 술을 마시면 너무나 안전하고 편안하다.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일종의 방어, 변명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흔히들 알코올 중독은 의지가 부족해서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알코올이 신체에게 미치는 영향이 마치 질병처럼 중독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한마디로 이 중독에서 치유되기 위해서는 주변의 도움과 병리적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읽는 내내 안타까웠던 것은 저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녀가 살아있다면 이토록 솔직하고 재밌고 아름다운 글들을 더 썼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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