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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소설, 맛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홍서연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선 안타깝다 이 책. 리뷰가 달랑 2개 뿐, 게다가 품절이라니.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읽었다.
사실, 이 책은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에세이 같은 느낌이다. 딱히 줄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각 소재별로 길어봐야 서너장 정도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고 얇은 책을 다 읽은 지금, 아, 코와 혀와 같은 내 감각의 촉수들이 하나하나 선명하게 되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상상만으로도 흐뭇한 그 많고 다양한 음식 냄새들, 탁월한 묘사들이 어딘가에 적어놓고 싶을 만큼 너무나 적절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밝고 따뜻한 느낌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야기의 시작은 주인공이 48시간안에 죽는 다는 선고를 받는 것으로 시작하고, 시종일관 차분하고 조용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음식칼럼을 쓰는 미식가인 주인공의 시점에서, 사망선고를 내린 의사의 시점에서, 유년기의 주인공의 시점에서, 이웃사람의 시점에서 같은 장소, 혹은 같은 음식들에 대한 다양한 묘사들을 볼 수 있다. 그것은 토마토나 버터를 듬뿍 머금은 토스트, 혹은 굴과 같은 흔한 음식이기도 하고, 잘 모르는 프랑스 요리 이기도 하다. 그렇다. 모든 사람은 먹는다.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음식, 맛, 냄새 같은 것들은 우리 생의 출발에서 부터 죽음을 앞둔 시점까지 늘 함께 하는 것이다. 너무나 많이 인용되고 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마들렌 같은.. 그런 먹을 것들이 이 책의 주인공을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쉽게 이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상의 나의 식사는 형편없기 짝이 없다. 그래서 대조적으로 이런 책을 읽고 너무나 큰 감흥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나의 식사가 아니라 그것이 타인의 식사이기 때문에.. 마치 주인공이 삼촌의 식사를 타인의 식사로 인지하고 그 경이로움에 마비 된 것 처럼 말이다.
멋드러진 문장으로 그 음식을 어떻게 묘사할까 머릿속을 쥐어짜내려 하느니 차라리 정성들인 요리 하나를 먹기 위해 식탁에 단정하게 앉아 있는 그 마음에 비유될까.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서늘해져옴은 차가워진 9월의 공기 때문일까 아니면 형편없는 나의 초라한 식사 때문일까.
먹는 것은 쾌락의 행위이고 이 쾌락을 글로 쓰는 것은 예술활동이지만 진정한 단 하나의 예술 작품은 결국 타인의 식사이다. 나의 식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 일상의 최후에 범람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크 데스트레르 삼촌의 식사는 완전함을 갖추었고 완결된 자기 만족적 단위로서, 내 기억속에 시간과 공간을 넘어 새겨진 유일한 순간으로서, 내 인생의 감정들로부터 해방된 영혼의 진주로서 남을 수 있었다. (p.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