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

정현종

내가 기운 없어 보일 때는
기운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기운을 내지 않는 거라고
나는 옆에 있는 사람한테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낼 필요가 있을 때는
무슨 기운이든 기운을 냈다)
듣는 사람은 의아해했으나
정령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호랑이들도 만족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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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와 바다 이야기
마르틴 발저 외 지음,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조원규 옮김 / 민음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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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이다. 예전에 책그림책이라는 책을 먼저보고 그림들이 참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던 작가였다.

살면서 홀로 외로이 자신과만 대화할 수 있는 그런 기회는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생활에 파묻혀 자의이건 타의이건 그것이 좋건 나쁘건 사람이란 타인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게 마련이다. '자신'에 대해 '자아'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조차 잊고 살아가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책속에서 나는 해변을 달리는 사람을 본다. 석양에 달리는 사람의 그림자에서 숨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내 자신과 온전히 만나는 일, 혹은 내 자신을 실험하는 일. 끊임없이 탐구하고 한편의 영화로 한편의 소설로 만들어지는 일. 그 모든 일이 너무 값지다. 이 책은 그런 것을 한번쯤 생각해보도록 한다. 고요하게 말을 걸어온다. 내가 빨리 읽고 오늘 집에와서 엄마 에게 이 책을 한번 보라고 했다. 그림이 많고 글자도 적은 책을 한쪽 펼쳐보고 엄마가 계속 소리내어 읽으신다. 근데 이게 무슨 소리지. 엄마는 잘 이해가 안가는데 라고 아이같은 말씀을 하신다. 엄마 나도 실은 잘 이해가 안가. 그냥 자기 마음대로 상상하는 거야. 원래 책읽기란. 가끔 엄마가 소녀 아니 아이같이 느껴질때가 있다.

그래, 이런 책이 이해가 안되어도 뭐가 문제랴. 생활이 삶이고 체험이고 숨소리이면 되는 것을.

앗! 이 서평은 앞뒤가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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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숙만필
황인숙 지음 / 마음산책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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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숙만필을 읽는 내내 나는 내가 아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다 읽고 나서 생각했다. 아 다행이야. 황인숙의 나이에도 이렇게 세상살이가 재밌는데 나는 그 나이가 되려면 15년도 더 남았잖아!

표지의 황인숙의 사진은 긴 머리에 조금만 부스스한 듯한 퍼머머리이다. 어딘가를 넋놓고 응시하는 듯한 이 표정이 나는 너무나 맘에 들어 읽는 내내 자주자주 쳐다보았다. 정말 작가 같은 생김새와 왠지 보고만 있어도 그녀의 시에서 읽었던 톡톡 튀는 생생한 단어들이 보이는 듯 했다.

책 뒷 부분에 친구인 고종석의 글이 또한 예술이어서 아, 정말 끼리끼리 노는 거 맞잖아! 했다.
그렇다 기품있는 사람들끼리는 기품있는 친구가 되나 보다.

아, 나도 기품있게 살고 싶다.
가난이 스스로를 남루하게 만들지 않는 그렇다고 그것에 자부심을 갖는 것도 아닌 그야말로
무관심한 그런 인간이 세상이 어디 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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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주위 사람들에게 발견한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들의 몇 가지 공통점.
겨울에 태어났다는 것, 유소년 시절을 복되게 보내지 못했다는 것, 성질이 온순하다는 것,
의지가 박약하다는 것, 샛길로 잘 빠진다는 것, 참을성이 없다는 것, 옷을 두텁게 입지 못한다는 것......


나도 추위를 굉장히 잘타는 데 이제는 한술더떠 더위까지 잘 타는 것 같다.
딴 건 잘 모르겠고 성질이 온순하고 유년시절이 복되지 않았다는 건 맞는 것 같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정말 싸구려 천으로 만든 교복때문에 얼마나 추웠던지. 아 생각만 해도 너무 추웠다. 내 다리가 이렇게 두꺼워진 이유는 너무 추워서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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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자
배수아 지음 / 열림원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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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앞날개에 있는 배수아의 사진이 인상이 강했던 탓인지 그녀의 책들을 볼때도 그런 느낌으로 마주 앉게 된다. 일단 이 책의 제목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워낙에 모든지 독학(?)을 좋아하는 나는  어떤 것을 배우는데 독학으로 이루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생각과 실천의 문제는 별개이지만.  책을 읽고 아니나 다를까 주인공은 독학자의 길을 접어들기 위해 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그저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직업을 택하며 마흔살까지 관심과 집중할 대상을 위해 독학을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한때 나도 직업을 그저 생계수단으로만 생각하고 내 관심은 일터가 아닌 곳에 두려고 했던 적이 있다. 문제는 직업이 너무 고된 일이라 관심과 에너지를 그 외에의 곳에 쏟아붓기 에는 역부족이었다. 일터에서의 시간은 일종의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이고, 일터 밖으로 탈출했을 때 나는 이미 그 힘을 다하여 탈진된 상태였다. 그런 나날들이 하루이틀 나의 일부를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결국 나는 생계를 위한 노예였거나, 특별한 열정이  없는 그저 그런 한 인간일 뿐이라는 자괴감이 그때 늘 엄습하곤 했다. 그 때 느꼈던 불안감, 고독감, 생의 무게....

이 책을 통해 젊은날 어느 시기의 나의 고뇌를 되돌아 보는 것 같다. 마흔살까지 노동을 하며 밤에는 세가지의 외국어를 공부해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싶다는 그 문구만으로도 이 책의 인상은 나에게는 강하다.  배움, 공부, 독서를 신성시하는 내 자신, 그러나 나는 고독하고 외롭고 늘 혼자이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세상사람들이 다 그렇게 고독하게 독학하고 있는 것일까.. 인생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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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의 중국식당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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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건 언젠가 인터넷에서 인용된 '공부할 만한 사람'이란 부분을 보고서 였다. 이제서야 허수경이 시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뚱뚱하고 우울했던 소녀는 시인으로 자라서 10년째 독일에서 고대 근동 고고학이란 학문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유적을 발굴해내는 일 생활이 상상도 안가는 고대인들의 자취를 찾아다니는 행위는 무언가 인류의 근본을 밝혀가는 내가 익히 보았던 대학의 학문들과는 다른 어떤 근엄한 것이 있는 듯 했다.

언어를 알지 못하는 내가 태어난곳도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땅에 가서 낯선 이국어를 대했을 때의 그 홀가분함이 무얼까 생각해 본다. 내가 하는 말도 알아듣는이 없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그들이 하는 말도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무, 암흑의 세계이자 자유 해방의 느낌이 다가올 것만 같다. 그리하여 다시 태고적으로 되돌아가 아기처럼 새로이 세상을 배우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부란 것, 그리고 학문을 한다는 것의 의의를 살면서 어디에다 둘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 10년이면 금수강산도 변한다는데 이 곳의 일상을 훌훌 털어버리고 낯선 곳으로 그것도 '고고학'을 공부하러 떠난 것은 우리 같은 범인들은 감히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그녀의 인생이고 그녀의 몫이고 다만 그녀가 그곳에서 그리하여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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