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
조 R. 랜스데일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미국 역사에는 오래된 인종 차별이 남아있다. 지금은 다인종 국가가 되었지만, 불과 백년전만 하더라도 흑인과 백인은 한 장소에 있을 수 조차 없었다. 그런 시기에 일어났던 살인 사건은 대상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범인을 찾을 수도 있고, 찾지 않을 수도 있었다. 흑인이 죽었을 경우에는 다들 이상한 추측만 난무한다. 하지만 백인이 죽었다면 그 범인은 꼭 찾아야만 한다. 이런 것부터 사회적인 차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린 아이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사건은 비교적 단순해지고 순수하며 직관적인 시각에서 서술되는데, 그 이면에 품고있는 사회적인 모순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은 문명의 때가 덜 묻었던 목가적인 텍사스 동부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고, 무지하고 단순했던 마을 사람들이 살았던 동네의 이야기이다. 언뜻 보면 허클베리 핀이나 톰소여의 모험과도 같은 분위기의 이야기인데, 주제가 살인 사건이라는 점에서 이 이야기가 좀 더 스릴있다. 약간 나른한 이야기 전개가 이어지기는 해도 마지막을 달려갈수록 과연 범인이 누구인지 종잡을 수 없게 된다. 덕분에 끝까지 독자를 궁금하게 만드는 힘이 실려있다. 고요할 것만 같은 강바닥에서 자꾸 시체가 튀어나오니 마을 사람들은 안심하고 잠을 잘 수가 없다. 아직까지 연쇄살인이라는 개념이 사람들에게 인식되지 않았던 시점이라, 범인은 조금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 

그저 작은 아이인줄만 알았던 소년이 이 사건을 통해서 어른으로 조금씩 성장하고, 사회의 모순을 깨달아가는 과정 또한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항상 모든 것을 척척 해내는 아버지가 때로는 좌절하고 바닥까지 가는 모습에서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이야기 전개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순리에 맞춰 전개하다가 갑자기 급격하게 새로운 사건을 등장시키며 그동안 있었던 모든 사건들을 단숨에 해결해버린다. 조금 급작스럽기는 해도 그리 어색하지는 않아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무지한 대중들이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그리고 새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지 이 책을 통해 어느정도 엿볼 수 있었다. 그리 중요하지 않지만 사회적인 편견이 한 사람의 목숨을 죽음으로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섬뜩하다. 그래서 항상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공정하게 듣고 보다 폭넓은 시각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교육의 힘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이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인터넷 세상에서 어떤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일이 충분히 가능해졌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나 하나부터라도 노력하다보면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사람들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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