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어처리스트
제시 버튼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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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는 작은 인형의 집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아기자기한 소품이 가득 들어있는 나만의 집을 갖는다면 그것만큼 멋진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이런 소망이 현대의 아이들에게만 있는 줄 알았더니, 옛날에도 있었나보다. 작은 모형들을 만들어주는 미니어처리스트라는 직업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직업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다. 


나이들었지만 멋있고 돈 많은 남자와 어린 여자의 결혼은 돈 많은 남자의 특권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린 신부에게는 다소 불공평한 계약일 수도 있갰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생존 수단으로 어린 나이를 이용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넬라는 그런 어머니의 생각에 의해서 부유한 상인의 집으로 시집을 왔다. 어리긴 하지만 한 집안의 안 주인으로 환영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새롭게 만나게 된 집은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인테리어도 우울한 분위기를 잡는데 한 몫했다. 과연 이런 집에서 주인공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궁금했는데, 약간 비정상적인 분위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보게된 미니어처리스트의 광고를 보고 넬라는 그녀만의 인형의 집을 위한 장식품을 주문한다. 그런데 그 미니어처리스트는 단순히 모형을 만들어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그녀의 존재는 매우 비밀에 싸여있다. 주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계속 방관자로 등장한다. 이런 관계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직접 이 책을 읽어보면 되겠다. 


한 가족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건들이 계속해서 벌어지면서 긴장감의 끈을 놓지 않지만, 전반적으로 이 작품의 분위기는 매우 우울하다. 그것은 온갖 규율과 소문들로 둘러싸인 사회적인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단순히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처녀라고 생각했던 넬라의 예상치못한 행동들 덕분에 비밀로만 간직되었던 일들이 점차 베일을 벗기 시작한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리고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는 사람들의 위선이 조금은 지긋지긋하게 여겨질 때쯤이면 이 책에 등장하는 사건의 전개는 정말 알 수 없는 미궁으로 빠져든다. 독자들을 들었다놨다하는 작가의 필력이 놀라울 정도로 매 순간이 새롭게 여겨진다. 


마지막에도 그 끝이 애매하게 마무리된 덕분에 독자의 상상력은 한 층 더 날개를 달 수 밖에 없다. 굳이 이 책의 장르를 구분하자면 중세 미스터리 소설이라도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냥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약간 장르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구분하기가 애매한 성격이라 상당히 넓은 범위의 독자들을 포용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그동안 정형적인 작품들을 읽느라 조금 지루했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결코 끝을 예측할 수 없는 전개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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