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혼 - 기억 없는 시간
감성현 지음 / 네오북스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단순히 다른 사람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몸에 나의 혼이 들어가서 행동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혼돈에 빠질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몸을 빌릴 수 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나쁜 짓을 할 것이라는 성악설이 유력해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맹점은 모든 사람들이 성향이 다르고 양심이 있는 사람도 있어서 모든 수혼인들이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양심과 범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은 가능하다.

 

처음에는 아무 관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이야기의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조금씩 우연한 기회로 인연을 맺게 된다. 정상적으로 보였던 톱니바퀴들이 어긋나면서 등장인물들의 인생은 꼬여만 간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까지 될 수 있는 건지, 잔인한 것을 별로 좋아히지 않는 나로서는 인간 본성의 끝을 보는 것 같아 조금 불편했다. 가능하면 세상의 아름다운 것만 봐도 시간이 모자라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렇게 어둡고 불편한 세계가 현실이라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리 길지 않은 작품이지만 여기에는 왠만한 사건들은 다 녹아들어있다. 살인은 기본이고, 그외 일반적으로 비윤리적이라고 생각되는 범죄들이 등장한다.

 

자극적인 장면들이 많이 등장해서인지 몰라도 작품의 흡입력은 굉장히 높다. 아마 단순히 범죄 소설로만 끝났다면 이 작품의 매력은 별로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품 전체적으로 인간의 본성과 선악에 대한 심도깊은 고찰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과연 어떤 것이 옳은 길인지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단순히 사람의 외모가 껍데기에 지나지 않고, 본질적인 것은 내면에 있는 혼인데 이 혼에 대한 진실성은 어떻게 가릴 것인가. 과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수혼인이 없다고 명백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인지 다소 혼란스럽다. 이렇게 무겁고도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도 흥미롭게 풀어낸 작가의 재주가 놀라울 따름이다. 색다른 디스토피아적인 현대 SF소설을 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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