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6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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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은 다른 작가의 작품과는 달리 무척 독특한 서술방식으로 쓰여졌다. 그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댈러웨이 부인'이나 이 작품 모두 이른바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으로 쓰여졌는데, 그나마 대화는 구분되었던 '댈러웨이 부인'과는 달리 이 작품은 어떤 문장이 대화이고 어떤 문장이 생각인지 구분하기조차 무척 어렵다. 술술 읽히는 다른 소설 작품들과 다르게 어떤 등장인물의 생각과 대화인지 끊임없이 유추해내야 하는 덕분에 다른 책보다 이 책을 읽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일반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가져왔던 습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사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끝을 맺었다고 보기가 굉장히 어렵다. 자는동안에도 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뇌는 끊임없이 상상력을 발휘하며, 눈을 뜨고 깨어있는 동안에는 당연히 이 생각과 저 생각을 오가게 된다. 보통 소설이라고 하면 이런 생각들을 한 번 정리해서 글로 옮기는데,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은 그 생각들을 그대로 종이 위에 옮겨놓았다.

 

이야기의 발단은 등대에 가고 싶어하는 아들을 달래는 어머니의 말로 시작한다. 나이가 들어도 아름답고 주변 사람들 돌보기를 좋아하는 램지 부인의 생각을 주로 서술하고 있는데, 학문을 연구하는 남편을 둔 아내이자 여덟 아이들의 엄마로서 그녀는 거의 완벽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녀가 다소 자기 중심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정작 본인 또한 지금 내가 옳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제대로 된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집을 고칠 비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그런 사정을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나, 등대에 가고 싶어하는 아이의 희망을 부질없이 꺾어버리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결국 오랜 세월이 지나서 등대 원정을 떠나는 아이들과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이렇게 쉬웠던 일을 그 때는 왜 못했을지 아쉽기만 하다.

 

이 작품에서 등대는 하나의 상징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절대로 등대에 갈 수 없다고 하고, 그에 반하는 아이들은 등대에 꼭 가고싶어 한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등대에 도착하는 순간, 아버지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 배에서 내린다. 등대는 가족 간 불화의 상징이자 해소의 계기로 작용한다.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아우르고자 했던 램지 부인이 없어지자 아이들은 아버지에 대해 더 많은 반감을 쌓는다. 이 책의 후반에는 램지 부인을 대신해서 릴리 브리스코의 독백이 등장한다. 초반에는 그저 진취적인 여성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면, 후반에는 다소 원숙한 여인으로서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인다. 많은 세월이 흐르고 그녀에게도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그러한 그녀의 시선은 단순히 그녀 한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어느정도 나이를 먹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했을 법한 그런 내용들이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그 시대의 보편적인 인물상을 대표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이 시대가 얼마나 보수적이면서도 관습에 물들어 있으며, 여성에 대한 편협한 시각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세계는 상당히 심오하면서도 독자들에게 지금까지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처음에는 다소 접근하기 어렵지만, 계속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점은 고전만이 지닐 수 있는 힘이다. 작가는 여러 작품들 속에서 주체적이면서도 현실의 제약에 한계를 느끼는 여성의 모습을 그리면서 독자로 하여금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나서도 한동안은 계속 다양한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서 맴도는 바람에 꽤나 어지러움을 느꼈다. 이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버지니아 울프 문학의 진수를 맛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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