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 봄꿈
한승원 지음 / 비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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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 속에 나오는 전봉준은 동학 혁명을 일으키다가 결국 처형당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거기에서도 워낙 짧게 나와있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그의 일생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가 일본군에게 붙잡혀서 한양으로 이송되는 119일간의 기록을 세세하게 묘사한 팩션이 나왔다. 샛노란 표지에 수레 그림이 그려진 이 책은 그냥 보기에는 잔잔한 사랑 이야기가 실려있을 듯한 분위기이다. 그러나 이 책 내용은 자못 심각한 분위기로 일관되며, 동학 혁명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다. 그래도 읽기 난해한 내용이 아니라 생각보다 술술 읽힌다.

 

이야기의 시작은 동학 혁명이 실패한 뒤, 전봉준이 옛 동지를 만나러 가는 장면이다. 물론 그 옛 동지가 자신을 배반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앞으로 자신의 운명도 예상되는 바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설정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장면이 전봉준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때에 따라서 작가의 목소리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일본군에게 갖은 만행을 당하는 조선인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 끌려가는 내내 괴로워한다. 다소 거친 문체를 통해 주인공의 남성다움과 기백을 엿볼 수 있었다. 전봉준이 한양으로 이송되는 동안, 한국인이면서도 일본인의 앞잡이를 하고 있는 이토가 끊임없이 전봉준에게 일본인으로 귀화할 것을 회유한다. 중간에 잠시 흔들리는 대목도 있었지만, 결국은 한양에서 처형을 당하는 쪽을 택한다. 일본인으로 귀화하게 되면 죽음 대신에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고는 하나, 아마 그런 삶은 본인에게 치욕적인 기분이 들 것이다.

 

그 당시의 생활에 얼마나 어려웠는지, 그리고 동학 혁명이 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는지 전봉준의 생각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해답이 나온다. 각 장이 그리 긴 호흡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아니라서 읽는 동안 지루함은 별로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관련 역사적인 사실들을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들었다. 조선은 왜 그리도 오랫동안 겨울잠을 잘 수밖에 없었는지 안타깝다. 그러나 아직도 제대로 된 봄날은 오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그 봄날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계속되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봉준 장군의 마지막 모습을 심도있게 그려놓아,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이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언젠가는 그가 꿈꾸던 봄날이 꼭 오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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