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로스 & 토르소
크레이그 맥도널드 지음, 황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예전에 교과서에서 초현실주의 미술에 대해서 본 적이 있다. 기괴한 모양의 형상을 한 사물들이 나열되어 있는 화풍이었는데, 아직까지도 나는 그들의 그림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더군다나 그 모양들은 내가 좋아하는 형태가 아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초현실주의 그림에 빠진 살인자가 등장한다. 사람의 몸을 반으로 잘라서 그 안에 다른 물건으로 채워놓는다든지, 일단 그 모습은 그리 자세하게 상상하고 싶지는 않다. 아마도 머리와 팔다리가 없는 모습에서 이 책의 제목이 토르소가 되었나보다. 그러나 토로스의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은 헥터라는 범죄소설가를 중심으로 쓰여졌다. 온전히 그의 시각으로만 사건들이 묘사되고 있으며, 유명한 범죄소설가답게 그의 체력도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튼튼하다. 보통 글을 쓰면 글을 쓰는 사람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인데, 아마 이 책의 주인공은 말 그대로 자신이 쓰는 소설의 주인공이 된 듯하다고 묘사되고 있다. 제목은 즐비하게 나오나, 그 중에서 내가 읽어본 작품은 없고, 정확하게 그 책의 내용에 대해서도 이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냥 추측만 할 뿐이다. 아무튼 이렇게 용감무쌍한 주인공과 그의 친구인 헤밍웨이는 어러모로 자유로운 것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미국인 스타일이다. 물론 이런 설정은 이 책의 작가가 만들어낸 것이기는 하지만, 실제 헤밍웨이의 모습을 비교적 정확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헤밍웨이의 인간적인 면을 새롭게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내용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초현실주의자들이 벌인 전대미문의 살인사건의 모습일게다. 그냥 그림을 그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그 장면을 연출하려고 했다는 점이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지 사람을 죽이는 것은 용서를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중간중간에 헥터와 헤밍웨이도 어떤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데, 아마도 이 시대는 살인에 대한 광기로 미친 시대가 아닐까 싶다. 어떠한 정확한 증거도 없이 사람을 마구 죽여도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섬뜩할 뿐이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뭔가 남은 듯한 아쉬움이 남는다. 책의 말미에 놀랄만한 반전이 있기는 해도, 약간은 그런 상황이 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도 했었다. 아무튼 뭐니뭐니해도 이 책의 주인공은 충분히 남자로서 멋진 매력을 지녔다. 아마 이 점 하나만으로도 책 전체의 분위기가 살아나는 기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무법자들이 활개를 치던 시절의 이야기로, 그 시절에는 자신의 목숩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이 소설도 그만큼이나 하드보일드한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감돌고 있다. 아마 이른 느와르적인 소설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상당히 재미있을 것이다. 책 속의 모든 이야기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빼먹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앞뒤 문맥을 힌트 삼아 스스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머리를 쓰면서 함께 주인공의 행적을 뒤쫓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랜만에 굉장히 쎈 소설을 만났다. 동일 작가의 앞으로 나올 작품들도 무척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