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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안네 - 60년 만에 발견한 안네 프랑크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
베르테 메이에르 지음, 문신원 옮김 / 이덴슬리벨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어릴 적 안네의 일기를 무척이나 감명깊게 읽은 독자 중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알고 있지 못하는 안네의 또 다른 이야기는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러나 미리 말해둘 것은, 이 책은 안네를 위한 책이 아니라 안네 프랑크를 잠시 보았던 베르테 메이에르의 이야기이다. 아마도 안네가 지금까지 살아남았더라면 아마 저자와 비슷한 아픔을 겪지 않았을까 싶다. 그녀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베르테의 이야기를 통해 독일의 나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는지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아픔은 우리나라의 일제 시대에 고문 받고 힘겹게 살았던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일도 되리라 생각한다.
저자가 안네를 만난 것은 집단 수용소에서였다. 그 때 안네는 어린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는 등 친절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다른 곳에서 생활하게 되고 결국 집단 가스실로 가버려서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저자는 정말 죽을 것만 같던 상황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아 고아원에서부터 착실히 성장하여 지금은 네덜란드의 성공한 푸드스타일리스트로 살고 있다. 굉장히 어린 시절에 집단 수용소 생활을 했지만, 그 때의 그 기억이 너무나도 끔찍하여 평생을 따라다닌다. 과거에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독일 나치에게 끌려가면서 모든 재산을 몰수당한다. 부모님은 수용소에서 노동을 하다가 돌아가시고 어린 여동생과 본인만 살아남았다. 유럽과 미국에 친척이 있었으나 전후에 모두 어려운 생활을 겪었기에 따로 받아줄 곳은 없었고 자매는 고아원에서 성장을 해야했다. 살아남는 법만 배웠을 뿐, 살아가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여 그녀는 평생을 갖가지 공포에 시달리면서 산다. 일단 기차나 비행기와 같은 대중 교통 수단은 수용소에 끌려가던 기억 때문에 타는 것만 해도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나마 자유롭게 탈 수 있는 수단은 자동차이다. 그리고 집에 어떤 숨을 비밀 공간이 없으면 굉장히 불안해한다. 요리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수용소 생활 당시 너무나도 배고팠던 기억 때문인데, 지금도 냉장고에 음식을 가득 채워놓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는다. 이러한 강박증상은 나치가 어린 아이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책 전체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따르고는 있으나,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은 제외를 하고, 중간에 끊어진 기억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완전히 그녀의 전 생애를 파악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지금까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고, 그 상처가 절대로 치유될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게 알 수 있었다. 나는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로서 굉장히 풍요로운 삶을 누려왔다. 적당히 돈도 있고, 물건도 풍부했기 때문에 굳이 절약을 하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소비가 미덕이 될 수 있다는 논리도 많이 들어보았다. 그렇기에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 어떠한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미처 알 길이 없었다. 이렇게 책으로나마 그들의 고통을 조금 알게되었다는 사실이 다시는 전쟁을 겪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수용소에서 끔찍한 일들을 겪은 사람들은 그 기억이 평생을 따라다닌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래도 지금은 사회적으로도 명성을 얻고 안정을 되찾아서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온전히 그녀의 힘으로 일어선 것이기 때문에 그 노력이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 땅에 다시는 이와같은 고통을 겪는 일이 없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