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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아 쿠피 - 폭력의 역사를 뚫고 스스로 태양이 된 여인
파지아 쿠피 지음, 나선숙 옮김 / 애플북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아프가니스탄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탈레반, 테러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들이다. 분명히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평범한 사람이 있을텐데도 모든 아프가니스탄인들은 테러범이라는 인식이 박혀서 예전에는 나쁘게 보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아프가니스탄을 보는 시각은 많이 달라졌다. 아프가니스탄이 가진 지리적인 위치로 인하여 보통 사람들이 얼마나 심한 고통을 겪었는지 알게 되었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여성의 강인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평화로운 시절부터 무자헤딘, 탈레반까지 어려운 현대사 시기를 훌륭하게 겪어낸 한 여성의 이야기에서 무한한 감동을 받았다. 여성을 차별하는 탈레반이 통치하던 시대의 암울함은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안타깝고 화나는 일이었다.
파지아 쿠피는 아버지의 두번째 부인인 비비 잔의 막내 딸로 태어났다. 아프가니스탄도 남성 중심의 사회라 여성은 남성에 비해 환영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파지아가 태어났을 때는 아들을 몹시 바랬던 터라, 태어나자마자 하루 동안 사막에 버려졌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이후 잘못을 깨닫고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 준 덕분에 파지아는 무럭무럭 자랄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똑똑했던 그녀의 인생은 아버지가 무자헤딘에게 살해되면서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된다. 마냥 평화로울 것만 같았던 시절이 이제 끝난 것이다. 바다흐샨에서 카불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그녀는 학교 교육을 받는다. 학교에서도 총명한 학생에 속했지만, 무자헤딘 시절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게 된다. 탈레반은 종교를 앞세운 단체로 특히 여성에 대한 차별 대우가 심했다. 여성이 밖에 다닐 때는 부르카를 입지 않고는 다닐 수가 없었으며, 반드시 남자와 동행해야 했다. 또한 화장이나 하얀색 옷을 입는 것도 금지되었고, 밖에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도 불가능하여 여성들은 집안에만 있는 것이 안전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남자들도 조금이라도 반역의 기미가 보이면 무조건 잡아들여서 고문과 감금을 서슴치 않았다. 처음에는 극단적인 종교단체였으나 점점 그 세력을 키우면서 일반 사람들에게도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들을 피해서 파지아는 굉장히 여러곳으로 이동을 해야했다. 마땅한 거처도 없이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생활이 결코 만만치 않았으며, 그나마 힘이 되었던 것은 강력한 혈연 관계로 이루어진 아프가니스탄이 전통 문화였다. 그리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친척이라면 친절하게 잠잘 곳과 먹을 것을 내주었기에 어려운 시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책에는 파지아 쿠피가 어떻게 성장을 해왔으며, 죽음을 피하기 위해 어떤 여정들을 거쳤는지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여성의 섬세한 감정 묘사와 정확한 시대적인 상황에 대한 해석,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원했던 상황에 대한 이야기들이 뛰어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상당히 두꺼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책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다. 아무래도 전쟁이 일어났던 시기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고, 정치인으로 데뷔한 후에는 간략하게 중요한 사건들만 다루었다. 뒤에 실린 사진을 보니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정치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활동을 했을 것 같은데, 그녀의 정치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개략적인 내용만 실려있어서 막연히 추측만 할 뿐이다. 그러나 많은 언론들이 후에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면 파지아 쿠피를 강력한 후보로 꼽는 것으로 보아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녀의 위치는 상당히 높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이 자리에 오르기 까지 정말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많이 갔었다. 어떻게 보면 운이 상당히 좋은 경우도 있었는데 아마도 그것은 그녀가 가진 운명이 단순한 여성으로서만 끝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좋은 시절이라고 말하는 2,30대를 전쟁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했지만 앞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이런 아픔을 겪지 않게 해야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덕분에 이슬람 사회에서는 보기 힘든 여성 정치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뭔가 아쉬우면서도 엄청난 노력을 하는 주인공의 열정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뭔가 나도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물스물 기어나온다.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동안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아프가니스탄이 이런 나라였는지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될 것이고, 앞으로 그 나라에서 벌어지는 뉴스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마도 파지아 쿠피와 같은 정치인이 많이 나온다면 분명히 아프가니스탄은 새로운 국가로 재탄생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