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기억의 파괴 - 흙먼지가 되어 사라진 세계 건축 유산의 운명을 추적한다
로버트 베번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건물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어린 건물이 파괴되는 것을 보는 일은 상당히 고통스럽다. 만약에 그 건물이 너무나도 낡아서 사용하기 어렵고 미관을 흐린다면 모를까, 의도적으로 단순히 사람들의 정복욕에 의해서 파괴된 건물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어마어마한 피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 한 구석이 떨어져나가는 느낌이다. 그런데 통치자들은 사람들의 이러한 상징성을 가진 건물에 대한 의미를 이미 파악하고 정복하기 위한 사람들을 공격하는 동시에 그들의 문화를 상징하는 건물을 파괴함으로서 피해자들의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노력한 역사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고대 뿐만이 아니라 현대에 이르러서 더욱 조직적이고 지능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는 만행이기에 고등 교육을 받았다는 현대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이 책에서는 19세기, 20세기에 들어 파괴된 건물의 사례와 그 의미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사실 요즘 세워진 건물에 대해서는 최근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하지만, 과거에 사라진 건물에 대해서는 그 정보를 접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가해자는 그 사실을 숨기려 하고, 피해자는 앞으로 나아가기 바쁘기 때문이라고 봐도 좋을 듯 하다. 저자가 책을 쓰면서 각 장을 나눈 주제는 극히 개인적으로 분류를 했는데, 어떤 한 사례를 가지고도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어떤 점에 가장 중점을 두고 바라보았는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있기에 이런 관점으로도 이 사건을 바라볼 수 있다는 신선한 시각을 갖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처음에는 건축과 기억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서술을 하고 있고, 그 뒤에 이어지는 장에서는 문화청소, 정복, 테러, 분할, 재건, 보호의 주제를 통해서 그 동안 일어났던 사건들을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사실 익숙하게 접했던 주제가 아니고, 인물 이름이나 건물명, 지명 들이 그리 익숙하지 않은 탓에 이 책을 소화하기에는 약간 버거운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건물을 파괴한 해당 사건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책을 소화하려니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건물 파괴가 인류 학살만큼이나 잔인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기에 현대 문화 파괴의 현실을 좀 더 정확하게 보고 싶다는 욕구에 의해서였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의 목숨보다 건물 하나가 뭐 중요하다고 여길 수도 있으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사람의 목숨은 100년에 지나지 않으나, 잘 지어진 역사적인 건물은 천 년 이상을 이 땅에서 살아 남아 대대손손 문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말하면 건물이 없어진다는 것은 그 민족이 쌓아온 문화가 한 순간에 사라지고 절멸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족의 문화를 상장하는 건물은 필수적으로 보존하고 가꾸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 동안 세계 곳곳에서는 알게모르게 수많은 건물의 파괴, 약탈 행위가 이루어져 왔다. 이미 파괴된 건물을 온전히 원상복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슷하게는 만들 수 있으나, 재건된 건물은 이미 옛 시대의 문화가 훼손되어버려서 예전의 미학을 되찾을 수는 없다. 이미 저질러진 인류의 만행을 되새김으로서 앞으로는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것이 중요하는 차원에서 저자는 열심히 이 책을 쓰지 않았나 싶다. 비록 우리나라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일제시대에 우리나라 건물들도 많은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 것의 소중함, 더 나아가 세계 문화 유산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고 보존하기 위해 전 인류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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