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전철
아리카와 히로 지음, 윤성원 옮김 / 이레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추운 겨울날이면 유난히 옆구리가 시리다. 무더운 여름날에는 더위를 피하느라 사실 옆에 사람이 없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는데, 겨울에는 왜 이리도 친구가 간절하게 필요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날씨가 춥다보면 하나보다는 둘이 더 따뜻하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무미건조한 자기 계발서 보다도 부드럽고 달콤한 사랑이야기가 마구마구 읽고 싶어지는 것도 그런 영향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일본 소설 특유의 말랑말랑하고 가벼운 사랑이야기가 담뿍 담겨있는 옴니버스 소설집이다. 모든 이야기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세세하게 살펴보면 각 장의 주인공들이 다음 장에서는 보조인물로 등장하는 등 서로 얽히고 얽힌 관계들이 모여서 하나의 멋진 책을 완성했다. 서로에게 무심한듯 하면서도 숨은그림찾기 하듯이 연결되어 있는 고리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한 책이다.

 

이 소설의 주요 등장 무대는 전철이다. 일본도 수많은 전철이 있지만, 우리나라도 수도권에는 전철로 출퇴근을 하거나 장소를 이동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래서 전철이라는 장소는 상당히 친숙한 장소임에 틀림없다. 사실 낯선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차례 스쳐지나가는 장소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무관심한 것이 대부분인데, 그런 와중에서도 전철에서 어떤 인연들이 만들어지고 헤어짐을 반복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 어떤 교통수단보다도 편리한 전철이 모르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고 이야기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주 남의 이야기만은 아닌 듯 싶다. 나도 지하철 역에서 재미있는 인연을 만든 적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워낙 짧은 만남이라 그리 여운은 길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특이한 인연이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얼굴도 희미해서 잘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사람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주 가끔은 궁금해진다.

 

일본의 전철은 이 책의 각주에 나와있듯이 굉장히 다양한 종류가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전철은 한큐전철이라는데, 인테리어가 예뻐서 철도 매니아들로부터도 사랑받는 노선이라고 하니, 일본에 가면 꼭 한번 타보고 싶은 노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본의 분위기 및 문화가 많이 등장하는 대목에서는 번역자가 친절하게도 해당 내용에 대해 각주를 달아 설명을 해주고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소설이기는 하지만 바탕 내용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 책을 완벽하게 읽었다고 볼 수 없기에 이러한 각주가 더더욱 반가워진다.

 

이 책에는 상행선과 하행선을 오가면서 주인공들이 2번씩 등장한다. 나는 그 중에서도 지하철에서 풋풋한 인연을 만든 마사시와 유키 이야기가 참 마음에 든다. 사실은 굉장히 현실성이 없어보이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소설일 따름인데 말이다. 그냥 소설을 읽으면서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남녀가 도서관에서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다가 결국 전철에서 인연을 맺게된다는 달콤한 러브스토리는 읽는 이로 하여금 막연한 환상에 젖게 한다. 물론 이 책에는 청춘남녀의 사랑 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안타깝고 훈훈한 사랑이야기도 수록되어 있다. 쌀쌀한 요즘, 따뜻한 커피와 함께 마음도 따뜻해지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볼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아마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에는 읽는 이의 마음도 부드러운 솜사탕이 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