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의미
마이클 콕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출생의 비밀이라는 주제는 은근히 한국 드라마에서 참으로 많이 나온다. 하류 인생으로 살던 착한 심성을 가진 주인공과 태어날 때부터 부자로 태어나서 굉장히 성격이 좋지 않은 경쟁자의 구도는 마치 한국 드라마의 너무나도 뻔한 레파토리가 아니었던가. 주인공이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출생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경쟁자와 위치가 뒤바뀌었을 때 복수를 하지 않고 너그럽게 용서를 해주는 천사와도 같은 행동은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끔찍한 짓을 했던 사람에게 똑같은 강도의 복수를 하고 싶어하는 것이 본능이다. 아무튼 이 책은 우리에게 왠지 친숙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나, 내용의 전개나 깊이면에 있어서는 일일 드라마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그 때문에 엄청난 두께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게 책을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처음에 이 책을 봤을 때, 과연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내심 걱정도 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러한 나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책이 두꺼워서 불편한 점이 있다면 무게가 좀 나가기 때문에 휴대성이 떨어진다는 점과 내가 누워서 책을 주로 읽는 습관이 있어서 책을 오랫동안 읽으면 팔이 아프다는 것 외에는 분량에 대해 전혀 불만이 없다. 이 책이 이렇게까지 두꺼워진 이유는 단순히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분량의 주석과 그 시대를 묘사하는 대목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꼼꼼하게 쓰여진 주석을 읽으면서 이해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별다른 참고 서적을 활용할 필요가 없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사랑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은 언제나 환영이다. 이 책의 주인공도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학구적이고 머리가 좋은 청년으로 책을 읽는 내내 또다른 책과 함께 호흡하는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현대 소설 속에서 고서의 향기를 발견하는 즐거움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가진 많은 지식과 끊임없는 집념에 감탄했다. 사실 영국에서 손에 꼽히는 가문의 숨겨진 후계자가 바로 내가 된다면 누구라도 끝까지 그 사실을 밝혀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데에는 상당한 실력이 필요하다. 주인공은 다소 은둔자 스타일이면서도 그가 가지고 있는 뛰어난 능력 덕분에 결국에는 원하는 문서를 손에 넣고야 만다. 사실 이런 소설들은 중간까지 지루하게 사건을 끌다가 마지막에 가서 갑작스럽게 결말을 맺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오랫동안 준비되어서 그런지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안정적인 흐름을 보여주며 주인공의 결말도 조금은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런 내용으로 전개가 된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일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쓰여져서 다소 편협된 시각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워낙 이야기거리가 풍부한 주인공이라 그리 지루하지는 않다. 책에 대한 묘사를 할 때는 오히려 좀 더 길게 해주어도 좋을 법 했다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긴장감이 팽팽하게 느껴지는 빠른 이야기 전개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뒷 이야기가 무엇일까 궁금하게 만들어서 끝까지 책을 읽게 만드는 강한 흡입력을 가진 매력적인 소설이다. 독서와 추리 소설, 역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한 번 손에 잡은 순간부터 끝까지 이 책을 눈에서 떼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나 역시도 동일한 경험을 했고,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다 읽은 지금은 뒷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하면서도 허전하기까지 하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의 저자가 '밤의 의미'속편을 집필하고 있다니, 그 책이 출판된다면 반드시 서점으로 달려가서 구입할 의사가 있다. 그 정도로 상당히 매력적인 소설이다. 요즘에 읽을만한 소설을 찾지 못해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당신이 어떤 타입의 독서가이든,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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