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만화 공화국 일본여행기 - 만화평론가 박인하의 일본컬처트래블
박인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7월
평점 :
10대 후반에 만화에 나름대로 심각하게 빠진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만화는 굉장히 좋아하지만, 애써서 찾아 읽을 정도는 아니다. 만화책보다도 더 재미있는 책들을 많이 발견했으므로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아무튼 만화는 가볍게 생각없이 읽기 딱 좋은 매체이다. 그림이 잔뜩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심미안도 기를 수 있고, 술술 넘어가는 책장도 꽤 마음에 든다. 한국 만화는 의외로 소재가 다양하지 않아서 조금 식상한 면이 있는데, 일본 만화는 그 소재와 내용이 워낙 다양해서 그 때마다 골라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무튼 우리집에 있는 만화들도 대부분이 일본만화라서 일본 만화에 대한 애착은 나름 높다고 하겠다.
그런 와중에 일본 만화와 여행을 같이 묶은 책이 나왔다고 해서 얼른 읽어보았다. '만화'와 '여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키워드이자 행위이니 어찌 끌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름대로 유명한 만화 평론가가 쓴 책이라고 해서 기대가 무척 크기도 했었다. 일단 책을 다 읽고나서 뭔가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만화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여행에 대해서 깊게 파고든 것도 아니고 뭔가 애매하게 두 가지를 섞어놓은 느낌이랄까. 당연히 만화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만화는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 어떠한 만화를 주제로 잡고나면 그 주제에 대해 작가가 받은 일본 문화에 대한 인상의 서술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이룬다. 그리고 각 장의 마지막에는 그 지역에서 만화를 가장 잘 체험할 수 있는 스팟을 설명해주고 있다.
전체적인 구성으로 보았을 때는 그리 나쁘지 않으나, 독자의 시선을 강력하게 잡아끌만한 요소가 다소 부족하다. 일본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에게는 작가가 잔뜩 설명하는 일본의 지명은 낯설 뿐이고, 도대체 일본 어디에 붙어있는 곳을 이야기 하는 것인지 감이 전혀 오지 않았다. 책의 첫머리에 보면 가이드 북이 아니라 만화에 대해서 설명하는 책을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썼다는 대목도 잠깐 나오는데, 오히려 만화 가이드북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현장감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일본 여행기도 아니고, 그저 만화를 키워드로 삼은 평론이니 말이다. 여행책자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지도는 이 책에서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혹시라도 나중에 이 책을 가이드 삼아 일본 만화 관련 가게를 방문하고 싶은 사람은 현지 지도나 가이드북을 별도로 구입해야 한다. 따라서 이 책은 별로 가지고 갈 필요가 없는 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의외로 만화 이야기도 별로 나오지 않는다. 만화 뒷편에 깔린 일본 문화를 소개하는데 이 책 내용의 대부분을 소비한다. 사진도 굉장히 많이 실려 있기는 하지만, 어느 위치인지 자세한 설명은 없고 그저 작가가 일본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놓았을 뿐이다. 그 장소가 어디인지 사진 밑에 짧게나마 코멘트를 달아주었더라면 현장 분위기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실린 사진들이 대부분 크기가 작아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야 겨우 사진이 보인다. 만화용품들이 크기가 원래 작은 것을 감안하면 사진속에서는 만화 관련 아이템을 별로 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아무튼 전문가가 아니면 찾기 힘든 장소들도 설명되어 있기는 하나, 뭔가 많이 아쉽다. 만화 이야기라도 잔뜩 듣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한 책의 내용이 왠지 갈팡질팡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비단 나만의 착각일까? 아무튼 덕분에 일본에 대한 다른 책들을 더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