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장편소설을 읽었다. 책 두 권 분량은 너끈히 되고도 남을 두툼한 책 두께는 일단 책을 접하는 사람을 다소 위축되게 만든다. 하지만 두꺼운 책 두께에 비해 가벼운 장정은 침대 머리맡에서 읽어도 부담스럽지 않을 무게이다. 따로 책 읽을 시간을 내지 않고 매일 밤 자기 전에 침대 머리맡에서 조금씩 읽다보니 이 책을 다 읽는데 10일 정도 걸린 것 같다. 아무튼 가볍게 보이면서도 그 내막은 절대 가볍지 않은 소설이다.

 

난 굳이 따지자면 '사이'와 같은 세대이다. 서구문화를 어렸을 때부터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으며, 생활하는 모든 양식은 서구식이다. 막연히 동경한다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그냥 문화적인 배경이 그렇다는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어떤 이들은 그것을 비난하기도 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서구식이든 전통식이든 자신이 편한대로 행동하면 되지 않을까. 여기 나오는 불평등의 원인은 결국 서구사회의 자본주의에 있다. 가진자들은 무한한 힘을 가지고 권력을 행사하고, 가지지 못한 자들은 끊임없이 가난에 시달려야 하고. 아무리 자신이 정직하게 일하려고 해도 있는 사람들이 더 하다고 착취하려는 행위가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각자 어떤 세대를 대표하고 있다. 현재 인도의 모습은 옛날 우리나라의 5,60년대의 모습을 보고 있는 듯 하다. 물론 불행중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한민족 국가라 민족 문제까지는 불거지지 않았다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무튼 모든 사람들이 미국을 가면 대박을 터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무작정 비자를 신청하는 것이나, 막연한 동경 같은 것들은 우리나라의 옛 모습이 아닐까 한다. 물론 지금도 그러한 문화의 잔재들이 남아서 일부 사람들의 생활속에는 남아있지만 말이다.

 

작가는 어떠한 시사적 문제도 직접 언급하지 않는다. 복잡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독자들은 현실을 정확하게 느끼면 된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현실을 표현하고 있는 방법이다.

 

'상실의 상속'이라는 제목에서도 언뜻 볼 수 있듯이 우리는 항상 앞 세대의 문화적인 유산을 이어받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아무리 자신의 부모나 뿌리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자신이 어릴 때부터 만들어진 문화적 배경은 끝까지 따라다닐 수 밖에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 그것은 바로 나의 뿌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마 자신의 정체성을 계속 부정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그러한 부정을 계속 이어받는 후 세대의 모습을 이 책의 제목아래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조금은 우울한 느낌의 표지도 그 의미를 배가시키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전체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두툼한 책이기는 하지만, 절대 어렵지 않다. 쉬운 문체로 씌여져 있어서 오히려 더욱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현재 인도사회의 모습과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인종차별의 실태, 또는 우리나라 근대화가 되던 시절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시사적인 내용을 즐겨 읽는 분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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