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작가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단지 내가 이 책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란, 책표지의 뒷면에 쓰여진 문구가 전부. 뒷표지에는 이러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 현대 환상 문학의 거장 이탈로 칼비노가 마법같은 유년의 숲에서 그러내는 아름다운 성장 이야기." 사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일종의 판타지인 줄 알았다. 아니면 굉장히 달콤한 동화느낌의 소설이든지. 하지만 실제로 이 책을 읽고난 느낌은 극도로 사실적인 이탈리아의 레지스탕스 이야기이다. 아마도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도 들어있다고 하는데, 얼마나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어린아이에서 청소년으로 성장하는 소년의 눈으로 본 혁명이야기인데, 그리 가볍지만은 않은 소설이다.

 

처음 시작은 지저분한 농담을 지껄이는 소년의 모습이 등장한다. 도대체 어린 녀석이 어쩌면 그렇게도 노골적인 말들을 하는 것인지, 만약에 실제로 이런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의 볼기짝을 후려쳐주고 싶을 정도로 장난이 심하다. 물론 핀이 이렇게 된 이유는 가정적인 환경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환경의 영향으로 돌리기에는 조금 억지스럽지 않을까. 아무튼 결코 사랑스러운 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유년기 소년이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처음 표지에 등장하는 소년의 모습을 보았을 때 성질이 고약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더더욱 정이 가지 않는 타입이다. 그래도 일단 책을 펼쳐들었으니 끝까지 읽을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이야기가 점차 진행되면서 소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위의 흐름에 빨려 들어가서 혁명단체에 가입하게 된다. 자신의 의지로 가입했다기 보다는, 그냥 살기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보다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냥 그렇게 된 것이다. 자신이 어떤 이념을 가지고 활동한다기 보다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과 동경하는 사람들이 그 활동을 하고 있으니 같이 있고 싶어서 활동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자신들도 그렇게 결정하는 일이 은근히 많다. 동호회 가입이라든지, 전공 학과의 선택 등. 하지만 심사숙고하게 생각하지 않은 행동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핀도 결국에는 방황하다가 나오지 않았는가.

 

어린 아이의 시각으로 본 혁명은 도대체가 알아듣기 어려운 말 뿐이다. 이탈리아의 혁명에 대한 정보가 무척이나 부족한 독자인 나도 이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혁명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면서 그냥 따라갔다. 혁명이니, 이념이니 하는 것들은 다 필요없고, 독자인 내가 궁금한 것은 그저 사람들간의 관계, 주인공의 앞으로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지가 더욱 궁금하다. 물론 역사적인 지식을 알고 이 책을 읽는다면 더욱 재미있겠지만, 모른다고 해도 읽는데 큰 지장은 없다. 다만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해서 다소 떨어지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패배자의 인생을 살고 있는 듯한 운동가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이 책은 극사실주의적인 이탈리아의 레지스탕스 이야기이다. 물론 아이의 시각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리 심각하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지만 마냥 가볍게 넘길만한 주제는 아니다. 아마 이 책을 읽고나서 이탈리아의 혁명과 관련된 자료를 더 찾아본다면 좋은 공부가 될 듯 하다. 오랜만에 조금 심각한 소설을 만났다. 마지막에 핀이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난 듯 하여 조금은 안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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