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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실험 -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상을 실험한 어느 괴짜 과학자의 이야기
딜런 에번스 지음, 나현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4월
평점 :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올린 문명의 산물이 다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믿을지 모르겠지만, 십수년 내에 인류가 멸망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한 두 사람이 아닌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고, 그 중에 어떤 사람들은 도시가 없어질 것을 대비해서 아예 지금부터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을 살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의 생활 정도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사실 도시 생활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그런 삶이 과연 행복할지, 그리고 지속 가능할지 무척 의문이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삶이 어떻게든 잘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털어서 개인이 하는 실험치고는 꽤 큰 규모의 실험을 실시했다. 이 책의 그 실험이 시작부터 마지막까지의 상황을 가능하면 솔직하게 털어놓은 회고록이다.
저자는 본인이 살아있는 동안에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놓은 문명이 다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무모한 실험을 무턱대고 진행할 리는 만무하다. 그래서 그 시기가 올 것을 대비해서 어떻게 농사를 짓고 자급자족하면서 살 수 있는지 미리 생존 능력을 키우고자 하는 것이 이 실험을 주요 목적 중의 하나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 책의 저자가 딱 그런 상황이다. 본인은 농사나 자연에서의 삶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은 없지만 같은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생활을 하다보면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긍정적인 믿음이 있었다. 명확한 목적과 해결책이 없는 이 실험은 그래서 저자 자신으로 보면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하지만 이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 중 일부는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이 실험의 주최자인 저자가 실험 종료를 선언한 후에도 그 곳에 남아서 본인들 나름대로의 자급자족하는 삶을 꾸려나가기도 했다.
이런 실험을 한 자체는 저자가 처음 시도한 것은 아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거나 아니만 저개발 국가에 가면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는 생활이기도 하다. 다만 이 책이 다른 책보다 독특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실험의 설계자가 본인 실험의 실패를 인정하고 왜 그런 결과에 이르게 되었는지 무척이나 솔직하게 털어놓은 책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실험의 말미에 저자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기까지에 이른다. 그저 세상에 종말이 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시작한 일인데, 새로운 모임의 리더가 되거나 이상과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일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과학자인 저자에게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나보다. 그래서 결국 본인이 활동하던 영역인 연구 분야로 되돌아가서 지금은 무척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무모한 실험의 끝이 어떻게 되는지 생생하게 쓴 이 책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오랜 세월동안 인류가 쌓아놓은 편리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대라고 하지만 이 풍요로움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있을 때 잘 지켜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