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 지음, 김라합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도대체 작가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펼칠 수 있는 것인지 놀랍기만 하다. 추리소설의 고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탐정이 짠-하고 등장하여 온갖 조사와 추리를 동원하여 범인을 찾아낸다. 이와 같은 구성은 요즘 일본 만화에도 영향을 미쳐서 '소년탐정 김전일' 이라든지, '명탐정 코난' 과 같은 작품에서도 같은 형식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추리소설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었다. 물론 이와 비슷한 형태의 추리소설이 지금까지 아예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나 세부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보면 종전까지는 보기 힘들었던 형식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새로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을 아주 즐기는 사람이다. 검은색과 붉은 색의 일러스트로 그려진 표지를 제일 처음 접했을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느꼈지만, 이정도일줄이야. 뭔가 우스꽝스러운 그림체라 약간의 유머도 들어있는 듯 했는데, 알고보니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인 이우일씨의 작품이었다. 강렬한 책 디자인 덕분에 보다 읽는 재미가 배가된 듯 하다. 그리 무겁지 않은 두께를 가지고 있으니 부담없이 가지고 다니기도 편리하니 말이다.

 

내용에 대해서 조금만 서술해보자면, 일단 서술자인 포겔슈타인, 그리고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지만 정작 난 읽어본 작품이 하나도 없는 보르헤스, 마지막으로 쿠에르보라는 범죄학자가 등장한다. 미국식 이름에 익숙해져 있는터라 이름을 외우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으니 처음부터 꼼꼼하게 이름을 기억하는 편이 나중에 등장인물이 헷갈리지 않을 것이다. 보르헤스에 대한 굉장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포겔슈타인은 글을 쓰는 내내 보르헤스에게 존대말을 사용하는데, 이것이 원작에도 그렇게 나와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극존칭을 사용한 덕분에 나중에는 책을 읽는 나조자 조금은 질렸기 때문이다.

 

뭐- 이런 사소한 문제들을 제외하면 이 책은 지적인 추리소설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특히 보르헤스와 포겔슈타인의 대화에 나오는 책들만 다시 정리해봐도 꽤나 긴 독서목록을 만들 수 있을게다. 그것도 가벼운 것이 아닌 꽤 무거운 주제들로 이루어진 책들을 말이다. 인문학적인 지식이 짧은 나로서는 이것들을 모두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래도 책을 읽는데 큰 지장은 없으니 책을 읽기 전부터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물론 여기에 나오는 책들을 이미 알고 있다면 두 사람의 지적인 대화를 보다 감탄하면서 읽을 수 있기는 할 것이다. 나중에 시간에 된다면 천천히 다시 한 번 읽어볼 필요는 있겠다.

 

아무튼 오래간만에 접하는 신선한 추리소설이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은근히 기대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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