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산다는 것 - 학교교육의 진실과 불복종 교육
조너선 코졸 지음, 김명신 옮김, 이계삼 해제 / 양철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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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수 끝에 임용고사에 합격하고 공립학교 교사가 되었다. 교사가 되어 교단에 선다는 기쁨도 잠시. 학교 현장은 내가 생각했던 곳과는 다른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곳이었다. 초임교사로 발령받아 담임이 되었던 첫 해 3월 한달 동안 매일매일 울었던 기억이 난다. 가르치는 보람보다는 여기저기 쏟아지는 공문과 일거리들, 그리고 아이들과의 관계, 학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내 생각과 다른 현실 등에서 많은 좌절을 경험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교사로 산다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어느 정도 가르치는 일이나 학교 생활, 학생들과의 관계가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면서 과연 오늘날 학교의 기능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와 달리 학교는 여전히 작은 공간에 40명이 넘는 아이들을 하루종일 (13시간동안!!) 가둬두고 책 속의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입시킨다. 학교 수업에 흥미 없는 아이들은 졸거나 핸드폰을 만지거나 친구들과 장난치기 일쑤이다. 교사가 바라는대로 지시하는대로 행동하지 않는 아이들은 불량학생으로 낙인찍히는 공간. 국가에서 선정한 교육과정의 내용대로, 또는 사회가 바라는 대로 경쟁하면서 가장 뛰어난 아이들만을 선발하는 이 죽음의 레이스에서 과연 학교는, 교사는 어떤 기능을 하는 곳이고, 어떤 것을 가르치며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계속 회의가 들었다.  

무언가 사회에 대한 문제점이나 학교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면 삐딱한 교사라고 찍히고,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그런한 것을 언급하거나 이야기하는 것도 왠지 스스로의 검열에 의해 조심하게 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회의, 타성에 찌들어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말하는 동료교사들을 보면서 나 스스로도 점점 타성에 물들어가는 것이 참 싫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에 무기력해지는 스스로도 참 싫었고... 그저 회의적인 생각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나의 이런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중요한 것은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내가 서 있는 현장에서 실천하는 것이라는 걸. 누가 뭐래도 자신의 신념이 확고하다면 그것을 행동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타성과 무기력에서 벗어나 싸움을 시작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회 체제의 보수적 가치를 수호하는 거룩한 성지에 다름 아닌 공립학교에서 거짓 성스러움을 벗겨내 아이들에게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p16 

교사 자신의 진정성과 살아 있는 신념은 보이지 않는 교육과정인 셈이다. 학생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수업은 공책에 필기한 내용도 아니고 교과서에 인쇄된 궁색한 문장도 아니다. 그것은 수업 하는 내내 교사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시지다. 그것이야말로 평생 잊혀지지 않는 교훈이 될 것이다.  -p40 

공립학교 학생과 교사의 의식에 주입된 가장 두드러진 억압들 중 하나는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다.  -p41 

교사와 학생은 그게 무엇이든 간에 큰 사안에 직면하면 차근차근 작은 투쟁부터 시작하려는 자발적 의지를 가져야 한 다는 뜻이다. - 불공정한 체제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장소는 바로 우리가 서 있는 곳이다. -p114  

<이계삼 선생님 해제>그는 교사들에게 우선 '솔직해지자'라고 말한다. 학교란 위선과 기만으로 지탱되는 국가기관임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 그저 학교에 십수 년간 붙잡아놓고, 공부로써 경쟁시켜놓으면 십수 년 뒤에는 그들의 기대대로 '낮은 사고력과 쓸데없는 애국심'으로 치장한, 절대로 지배자에 맞서 단결하지 않는 이기적인 존재가 만들어져 나오는 것이다 -p170  

조너선 코졸이 제시하는 최종의 결로은 '행동'이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행동하기 시작한다면 부적절한 자책감에 시달려야 할 이유는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코졸은 이런 거대한 문제에 맞선 '작은 행동'을 안내하고 먼저 시범을 보이는 것 또한 교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한다.   

확실히 교사들은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두려움이야 말로 이러한 악마적인 체제를 유지시키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p175 

 공교육을 지탱하는 물적 근거는 민중의 세금이다. 그러나 민중의 자녀들은 의무교육의 장으로 끌려 나와 배움의 기쁨을 오히려 뺴앗기고, 이기심과 복종과 묵인이 골수에 박힌 '비전 없는' 존재로 빚어진다. 그리고 절대 다수는 학교 교육을 통해 '사회적 실패자'로 확정지어지고 만다. 이에 대한 코졸의 매시지는 간명하다. 정직한 한 인간으로 존재하자는 것, 할 수 있는 한 불복종하고 힘을 모아 싸우자는 것이다. '분노하고 비난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공립학교에서 우리의 권한으로 아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유일한 교훈'이라는 것이다. p-177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고, 교사로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탄하는 이들이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느낀만큼 공부하고 행동하길 권한다. 그렇게 한 걸음씩 전진하면 되는 것이다. 한탄은 무의미하다. -p179

 

 
   

쉬는 동안 좋은 책들을 많이 읽고 나름의 실력을 잘 쌓고, 마음도 단단히 무장한 후 학교로 돌아가 아이들과 더불어 함께 할 때 이 책의 내용들을 잘 간직하고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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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 - 진중권의 철학 매뉴얼
진중권 지음 / 씨네21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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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인식'을 통해 알려지기 이전에 먼저 '기분'을 통해 열린다.  

느낌이 이성보다 근원적이라 보는 철학에서는 당연히 '기분'이 중요한 주체가 된다. '역겨움'과 더불어, 철학적 의미를 갖는 기분이 있다면, 아마두 '지루함ennui'일 것이다. 실존철학의 담론에서 '지루함'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은, 그것이 아예 현대인의 조건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한때 삶에 의미를 주었던 최종적 권위들(신, 국가, 이념)은 무너졌다. 산업화한 도시 속에서 모든 것은 기계적으로 반복된다. 이렇게 무의미한 삶이 기계적으로 반복된다는 느낌. 이것이 현대인이 느끼는 지루함의 요체가 아닐까?  

지루함에도 종류가 있다. 가령 외부의 대상에 대한 지루함이 있을 수 있다. 가령 우리는 영화나 소설을 보면서 지루함을 느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마도 내면에서 올라오는 지루함이리라. 삶 자체가 쳇바퀴처럼 돌고 있다는 느낌. 물론 지루함이 언제나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때로 지루함은 휴식과 반성의 계기를 제공하며 우리를 새로운 창조로 이끈다. 하지만 그 어떤 삶의 행위로부터도 의미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절대적 지루함은 인간을 보들레르가 말한 '처형대'로 이끌 수 있다. 자살에 반드시 처절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영웅적인 것은 이 절대적 지루함을 분과 초 단위까지 충만하게 견뎌내는 인내심에 있지 않을까? 어느 에세이에 나오는 발터 베냐민의 말이 혹시 답이 될지 모르겠다.   

"파괴적 성격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감정이 아니라, 자살을 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감정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진중권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를 갓 졸업한 후였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빨간 바이러스'라는 책을 통해서 그의 글을 접했는데 사회나 세상에 대한 정보나 지식, 경험 등이 부족한 터여서 독서한 후 그 느낌을 '삐딱이의 투덜거림'으로 정리했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그후 세상에 대한 공부도 좀 하고, 정치, 사회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보다보니 그의 말이나 생각들이 좀 다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이후 만난 책들 '미학 오딧세이', '호모 코레아니쿠스' ,'앙겔루스 노부스' 등의 책 등을 통해 그의 폭 넓은 지식과 리버럴한 생각과 태도에 감탄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언론이며 인터넷에서 얼마나 날카로운 논객이던가... 매체를 통해 만나는 그의 모습에는 무언가 범접하기 힘든 날카로운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작년 초 노회찬의 '진보의 탄생' 출판기념회에 참여했을 때 그를 바로 옆애서 직접 본 적(만났다고 하기에는 혼자서 바라만 보았으므로 ㅠㅜ)이 있었는데 편한 캐주얼 차림에다 자그마한 몸집의 그냥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생님 혹은 아저씨 같은 느낌이었다. 곁에 다가가서 사인 받고 싶었는데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바라만 보다 온 쓸쓸한 기억이 있다.  어쩄든 실제 그의 모습과 달리 예술, 철학, 사회, 정치 등 다방면에 관한 그의 지식이나 생각 등은 정말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럽다. 또한 사회 현상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풀어내는 그 말솜씨나 글솜씨 또한 뛰어나다.  

이번 책 같은 경우 개념들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머리말에서 "이 책이 '인식의 효소'. 말하자면 독자들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 속에서 새로운 생각을 숙성시키는 효모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의 바람대로 이 책을 읽고 난 후 각각의 개념어들과 그것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된 것 같다.  

위의 인용문 같은 경우 직장생활을 하면서, 혹은 쉬면서 느끼는 그 감정들을 'ennui - 무의미한 삶이 기계적으로 반복된다는 느낌'의 개념어를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다. 요즘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너무나 명확히 적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 외에도 파타피직스, 파타포 등의 개념 또한 현재 우리 사회의 현상을 설명하고,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인상 깊었던 것 중에 하나가 신을 논하는 종교가 오히려 돈을 숭배하는 유물론적 태도를 보이고, 정당들이 이념 논쟁을 하고 있어 관념론적 태도를 보인다고 한 것. 현실을 이렇게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멋지다.  

책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 좀 더 부지런히 공부해야겠다는 자극도 받았다. 한동안은 꾸준히 그의 책과 글을 좋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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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 들녘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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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읽어야지 하고 맘 먹고 도서관에서 소설책들을 빌려 읽었습니다. 한겨레 신문 토요일자에는 책과 세상이라는 색션이 있는데 거기서 새로운 책들을 소개 받으면 수첩에 적어 두었다 사거나 빌려서 읽곤 합니다. 노트 한 켠에 적혀있던 손아람의 '소수의견'을 도서관에서 읽었습니다.
 

손아람씨는 80년생입니다. 저랑 동갑인데 젊은 나이에 소설을 썼다는 것이 참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니 그 감정이 더욱 커지더군요. 소설은 용산참사를 직접 거론하지 않지만 용산 참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대기업의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쫓겨나게 된 철거민이 4층 건물 꼭대기에 망루를 짓고 항거하다 경찰특공대의 진압 과정에서 아들은 경찰에게 맞아 죽고 그 옆에 있던 아버지는 경찰을 죽인 죄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를 변호하는 국선변호사의 입장에서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사건을 맡고, 변호를 하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자료를 조사하고 법정에서 검찰과 공방하는 과정이 치밀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어려운 법률용어며 법정 절차까지 세세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정말 놀랍더군요.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나 싶어 책에서 손을 놓지 못했습니다. 결론은 현실과 다르게 나름 행복한(?) 결말입니다. 현실에서 느끼는 좌절감이나 절망, 아쉬움들을 나름 달래줬다고 해야할까요?

 

다 읽고 나니 작년에 읽었던 주원규씨의 '망루'가 떠올랐습니다. 역시나 용산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재개발 과정과 철거민들의 투쟁. 하지만 이 '망루'는 대형교회의 비리와 함께 재림예수라는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예수가 재림하더라도 예수는 자신의 이름으로 죄를 짓는 이들을 벌하지 못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저 다친 사람을 기적으로 치료만 할 뿐. 선과 악에 대해 어떤 평가도 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

 

두 작품 다 젊고 새로운 작가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의 문제를 잊지 않고 소설로 표현하여 그것을 잊혀지지 않도록 형상화 했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새롭게 표현하여 독자로 하여금 현실의 문제를 상기 시키는 것, 그리고 새로운 상상력으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문학의 힘이자 문학의 기능이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두 작품 모두 강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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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빼놓지 않고 쓰기로 다짐했는데 그 다짐이 참 쉽지 않더군. 싸이도 닫고, 블로그도 다 폐쇄하려고 하는 건 빅토어 마이어 쉔베르거의 '잊혀질 권리'를 읽은 영향도 있었고, 게으른 탓도 있었고, 학교 생활도 힘들었던 탓도 있었다.  

뭐 이래저래 변명하더라도 결론은 게을러서가 가장 큰 이유겠지. 그리고 생각할 시간도 좀 필요했고.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나면 생각도, 글들도 정리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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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
N.H 클라인바움 지음, 한은주 옮김 / 서교출판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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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겨라. 자기 스스로의 인생을 잊혀지지 않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p60

 
"내가 이렇게 책상 위에 올라서 있는 이유가 있다. 즉 뭔가 또 다른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마음 쓸 필요가 있음을 스스로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이다."

 학생들은 어느덧 그 말에 깊은 감동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키팅의 그러한 행동에 깊이 공감하게 된 것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면 세계도 다르게 보인다는 키팅의 말에 학생들은 진심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은 믿고 싶다는 표현이기도 했다.

 "믿을 수 없다는 것 같은데, 그럼 좋다. 이번에는 너희들이 이 위로 올라오도록 직접 시험해 보는 거다. 자, 자아. 어서 순서대로 이 위로 올라와서 한 번 내려다 보도록."

 제일 먼저 니일이 앞으로 나가 교탁 위로 거뜬히 올라갔다. 대신 키팅이 바닥으로 뛰어내리자 하나둘씩 교탁 위로 올라갔다. 가서 내려다 보았다. 교실 안은 잠시 그것으로 소음에 흔들렸다. 앤더슨 한 명만을 제외한 전원이 한 번씩 교탁위로 올라간 다음 높은 곳에서 교실을 휘둘러 보았다.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게 있다는 그것을 또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키팅은 교탁에서 내려와 제자리로 돌아가는 학생들을 향해 계속해서 설명했다.

 "설령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도, 바보스럽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을 때에는 지은이의 생각에만 주의를 기울이면 절대로 안된다. 스스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주의해야만 되는 것이다."

 키팅은 계속했다. 이번에는 또 다른 표정으로였다.

 학생들의 가슴 속을 꿰뚫어 깨우쳐 주려는 듯 한 분위기로 말하는 것이다.

 "너희들의 목표는,  너희들의 목표는 자신의 소리를 찾아내는 데에 있다. 찾는 일을 뒤로 물려놓으면 물려놓는 그만큼 자신의 목소리는 찾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p113~114

 
   

새학교 오면서 일상의 피곤에 시든 아이들을 보며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많은 고민들이 생겼다. 오월의 햇빛같이 밝던 아이들이 하나 둘 시든 꽃처럼 구부러지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해 견기 힘들었다. 내 수업 또한 강의식에 생각할 거리 조차 던져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단편적인 참고서의 지식들을 읊어대고 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그 불편한 마음은 배가 되고 있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책장을 바라보다 문득 책장 한구석에 꽂혀 있던 이 책이 눈에 띄였다. '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

너무나 쉽고 명쾌한 말이지만 누구하나 현재를 즐기면서 살고 있지 못하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오늘을 지금을 견디고 인내하며 사는 사람들,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현재를 즐겨라고 어떻게 가르쳐 줘야할까...

읽는 내내 1959년의 책 속의 현실이 내가 살고 있는 2010년의 현실과 다르지 않아서, 부모의 기대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오늘을 억압당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과 주인공들의 모습이 자꾸 겹쳐져서 그리고 키팅선생처럼 용감하지 못한 내 모습이 부끄러워서 마음이 답답했다.

수업에 대해 좀 더 생각하고 방향을 바꾸어 보아야겠다. 아이들이 제 삶을 선택하고 살면서도 자유롭게 행복할 수 있도록 미약하나마 그 생각을 흔들어 놓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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