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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 심리학을 읽는 밤 -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의 아들러 심리학 입문
기시미 이치로 지음, 박재현 옮김 / 살림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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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대부분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리려고 할 때 사용된다. 분노를 표출하면 상대가 자신의 말을 들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 목적을 위해 분노라는 감정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슬픔이라는 감정은 상대로부터 동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만들어진다. 이처럼 감정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상대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p89

사실, 문제는 사랑받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지 않다. 보통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그러나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만으로 금방 아이와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있기에 좋은 커뮤니케이션이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커뮤니케이션이 있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태어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원활한 대인관계를 통해 얻어지는 결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p97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온화하고 단호하게 아이를 대하라고 권한다. 온화하다는 것은 힘으로 누르지 않고 끈기 있게 대화를 나눈다는 걸 의미한다. 단호하다는 것은 아이와 부모의 과제를 분리한 뒤,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과제에 맞설 수 있다면 불필요한 개입은 하지 않는 다는 뜻이다. 아이는 온화하고 단호하게 키워야 한다. -p132

아들러는 벌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대인관계를 `수직관계`로 보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위계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벌을 주거나 칭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칭찬한다는 것은 능력 있는 사람이 능력 없는 사람에게 상대를 내려다보며 `잘한다`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인간관계를 종적인 `수직관계`로 보는 것이 정신 건강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이라 간주한다. 그 대신 대인관게를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생각할 것을 권한다. 칭찬하는 것과는 반대로 용기를 주는 것은 인간관계를 `수평관계`로 바라볼 때 가능하다. 서로의 관계가 수평적이라고 생각할 때 비로소 상대방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 -p142

모든 장면에서 모든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지금 자신이 한 말이 상대에게 용기를 주었는지 아닌지를 늘 반성하고, 개개의 장면에서 어떤 말이 용기를 주는지 심사숙고하는 수밖에 없다. 대로는 얼핏 용기를 줄 것 같지 않은 말이 뜻밖에 용기를 안겨주기도 한다. 용기를 준다는 것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함께 구성한 현실 속에서만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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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루쉰 지음, 전형준 옮김 / 창비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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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운 채  배 밑바닥에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나는 나의 길을 가는 중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생각했다. 나는 결국 룬투와 이 정도까지 격절되었지만, 우리의 후배들은 아직 한마음이다. 훙얼은 수이성을 그리워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희망한다. 그들은 더 이상 나처럼, 사람들끼리 결절되지 않기를...... 그러나 나는 또한, 그들이 한마음이 되려고 하다가 그 때문에 나처럼 괴롭고 떠도는 삶을 사는 것은 원하지 않고, 그들이 룬투처럼 괴롭고 마비된 삶을 사는 것도 원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처럼 괴롭고 방종한 삶을 사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땅히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삶을.
  희망을 생각하자 나는 갑자기 무서워졌다. 룬투가 향로와 촛대를 달라고 했을 때 나는 그가 우상을 숭배하면서 언제나 그것을 잊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몰래 그를 비웃었었다. 지금 내가 말하는 희망이라는 것도 나 자신이 만들어낸 우상이 아닐까? 다만 그의 소망은 아주 가까운 것이고 나의 소망은 아득히 먼 것이라는 것뿐이다.

 몽롱한 가운데, 나의 눈앞에 해변의 초록빛 모래밭이 펼쳐졌다. 그 위의 쪽빛 하늘에는 황금빛 둥근 달이 걸려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사실은,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는데,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다.         [19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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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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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는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귀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상대방이 그런 생각을 하게끔 무슨 말이나 질문을 해서가 아니었다. 모모는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글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커다랗고 까만 눈으로 말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모모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문득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겠끔, 그렇게 귀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모모에게 말을 하다 보면 수줍음이 많은 사람도 어느덧 거침이 없는 대담한 사람이 되었다. 불행한 사람, 억눌린 사람은 마음이 밝아지고 희망을 갖게 되었다. 내 인생은 실패했고 아무 의미도 없다. 나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마치 망가진 냄비처럼 언제라도 다른 사람으로 대치될 수 있는 그저 그런 수백만의 평범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모모를 찾아와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그러면 그 사람은 말을 하는 중에 벌써 어느새 자기가 근본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와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소중한 존재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모모는 그렇게 귀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p23~24
 

 시간을 아끼는 사이에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것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아무도 자신의 삶이 점점 빈곤해지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점을 절실하게 느끼는 것, 그것은 아이들 몫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아이들을 위해서도 시간을 낼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가진 것이 점점 줄어들었다.   -p97~98

 

"아, 그 수많은 죽어 간 시간들......"
"그래, 저 바깥 '아무 데도 없는 집' 주변에서 점점 더 높이 자라고 있는 연기의 담장은 죽은 시간으로 이루어졌단다. 아직은 탁트인 하늘이 충분하니까 나도 사람들에게 손상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허나 침침한 연기가 이곳의 하늘을 뒤덮어 버리면, 내가 보내는 시간에는 모두 회색 신사들의 유령 같은 시간이 섞이게 되지. 그것을 받는 이들은 그들로 인해 병이 들게 돼. 그것도 죽을 병이."
 모모는 할 말을 잊고 호라 박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윽고 모모는 나직이 물었다.
 "그 병은 어떤 병인데요?"
"처음에는 거의 눈치를 채지 못해. 허나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없어지지.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지. 한 마디로 몹시 지루한 게야. 허나 이런 증상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카지게 마련이란다. 하루할, 한 주일 한 주일이 지나면서 점점 악화되는 게지. 그러면 그 사람은 차츰 기분이 언짢아지고, 가슴 속에 텅 빈 것 같고, 스스로와 이 세상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된다다. 그 다음에는 그런 감정마저 서서히 사라져 결국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되지. 무관심해지고, 잿빛이 되는 게야. 온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고,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 같아지는 게지. 이제 그 사람은 화도 내지 않고, 뜨겁게 열광하는 법도 없어. 기뻐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아. 웃음과 눈물을 잊는 게야. 그러면 그 사람은 차디차게 변해서,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사람도 사랑할 수 없게 된단다. 그 지경까지 이르면 그 병은 고칠 수가 없어. 회복할 길이 없는 게야. 그 사람은 공허한 잿빛 얼굴을 하고 바삐 돌아다니게 되지. 회색 신사와 똑같아진단다. 그래, 그들 중의 하나가 되지. 그 병의 이름은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이란다.   -p328~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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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11
장 자크 루소 지음, 이환 옮김 / 돋을새김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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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인용문을 입력하세요교육은 세 가지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자연.인간.사물이 그것이다. 자연은 인간을 내적으로 성장시키고 인간은 그 성장을 활용하도록 돕는다. 반면 사물은 그것과 부딪쳐 얻는 경험의 측면에서 교육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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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인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 그는 단지 독립된 실체일뿐이다. 반면 시민은 분모에 의해 값이 결정되는 분자와 같은 사회적 존재이다. 훌륭한 사회제도란 인간의 본성을 유연하게 변화시켜 그 사회의 가치에 맞게 상대적인 존재, 즉 '나'를 '우리'라는 공동체로 융합시키는 제도이다. 이 제도 안에서 '나'는 더 이상 단순한 개체가 아니다. 전체를 의식하고 사고하는 사회적 유기체 속에서의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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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목숨을 부지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 감각을 총동원해 자아를 느끼고, 가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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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교육을 참고 견뎌야만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설령 교육이 합당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억압과 굴종으로. 마치 노예나 죄수처럼 속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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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결핍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결핍을 느끼게 하는 욕망 때문이다.

신체의 고통과 양심의 가책을 빼고 나면 불행은 모두 상상적인 것에서 연유한다.

지나치게 소유함으로써 불행해지지 말라. 지나치게 행복하려고 애쓰지 말라. 그 욕망이 당신을 불행하게 할 것이다.

앞날에 대한 생각이 우리를 불행으로 이끈다. 불확실한 미래를 전망하면서 현재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얼마나 미친 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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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의도를 남의 도움 없이 행동으로 옮겼을 때만이, 진정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한 것이 된다. 그런 점에서 최고의 행복은 권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에 있다.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되, 하고 싶은 일만 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나의 원칙이며 교육에 접목시켜야 할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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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인간을 악화시킨다. 사회는 개인이 스스로의 힘에 대해 지닌 권리를 빼앗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욕망에 따른 능력 자체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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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하지 않는 한, 아이는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싶은가? 그렇다면 간단하다. 그것이 이익이라는 점을 깨닫게 하기만 하면 된다. 모르면 불편하고, 불편하면 결국 손해이다. 알면 편하고, 그것은 결국 이익이다. 그러니까 현재의 이익, 그것만이 아이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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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과 강요로 아이를 규율하지 말라. 남의 의견에 순종하는 아이로 만들지 말라. 자신이 좋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그에게 좋은 것이란 없는 법이다. 자신이 좋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그에게 좋은 것이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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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은 인간에게 자연적인 것이긴 하나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것은 아니다. 수치심은 악을 알면서 생기는 감정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여 아이에게 그런 감정이 생기는 걸까? 수치심과 정숙함에 대한 교육이 역설적으로 그것을 알게 한다. 이 앎이 화재의 진원지이다. 얼굴을 붉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죄인이다. 순수한 사람은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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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대한 감정을 지속시키는 것은 기억이다. 그리고 그것을 증폭시키는 것은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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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은 단지 자연의 책임이 아니다. 습관화된 감정의 누적된 결과이다. 그 결과가 인간의 얼굴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까 나이 들어서의 얼굴은 그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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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계 살림지식총서 85
강유원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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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인용문을 입력하세요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의 절대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 그들은 평생 동안 살아있는 자연만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퍼덕퍼덕 움직이는 세계가 있으니 죽어 있는 글자 따위는 눈에 담지 않는다. 책이 그들의 삶에 파고들 여지는 전혀 없으며 그런 까닭에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과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책을 읽지 않는 그들은 자연과 자신의 일치 속에서 살아가므로 원초적으로 행복하다.또한 그들은 지구에게도 행복을 준다. 지구가 원하는 것은 한 치의 어긋나도 없이 순환의 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인데 그들은 나무를 베어 그걸로 책을 만들고 한쪽 구석에 쌓아놓는, 이른바 순환의 톱니바퀴에서 이빨을 빼내는 짓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생을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나 얼룩말처럼 살다가 어머니인 대지의 품에 안겨서 잠든다.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의 자기반성도 하지 않는다. 마치 사자가 지금가지의 얼룩말 잡아먹기를 반성하고 남은 생을 풀만 뜯어 먹으며 살아가기로 결심하지 않는 것처럼.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오늘날의 사람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책을 읽은 이는 전체 숫자에 비해서 몇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하고 있다 하여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며, 압도적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소수의 책 읽는 이들이 벌이는 일종의 음모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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