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은 분명 나쁜데 마흔이 훌쩍 넘은 중년의 스토너가 젊은 여자 강사 캐서린과 함께 한 시간은 그러한 기준을 빗겨간다. 스토너도 분명 아내에게 첫눈에 반했고 그녀 앞에서 욕망으로 몸이 달았던 시간이 있었지만 이미 그의 결혼 생활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있는 한 그가 자신보다 훨씬 어린 여자와 직장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일은 분명 누군가에게 이해받거나 용인되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스스로 이별을 결심한다. 캐서린과 헤어지고 스토너는 훌쩍 늙어버린다. 그의 가슴 안에 있는 무언가가 죽어버린다. 중년의 사내는 급격히 노인이 되어간다.

 

 

 

 

 

 

 

 

 

 

 

 

 

 

 

 

 

드문 드문 다시 <스토너>를 읽는다. 캐서린과 헤어지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스토너는 그녀가 완성한 책의 헌사의 이니셜을 통해 다시 그녀를 사랑했던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이 대목은 언제나 가슴이 시리다.

 

'To W.S.'

 

둘은 많은 것을 공유했고 그 중에 학문적 성과를 함께 했다. 스토너는 캐서린의 논문에 이정표가 되어준다. 열정보다는 담담한 재발견의 시간이 그들의 사랑의 영토를 채워준다. 작별하고 늙는다. 늙다 죽는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처의 대학 교수가 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입지전적인 일로 평가될지도 모르지만 그의 삶의 궤적의 촘촘한 결을 따라가지 않으면 그의 삶은 평범하고 때로 실망스러운 것으로 폄하된다. 한 사내의 삶을 작가 존 윌리엄스는 놀라울 정도로 사려깊게 따라간다. 그 자신의 자전적인 요소들이 곧곧에 편재하다 보니 이것은 한 사람의 삶의 연대기를 그저 엮어 보여주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때로 오해되고 이해된다. 그 누군가의 삶도 결국 따라가다 보면 한없이 아련하고 서글프고 아름답다. 그가 살며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것들 밑에 가라앉는 것에 대한 묘사는 그래서 고귀하고 소중하다.  그러니 소설은 언제나 죽지 않는다. 보여지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설득할 수 있는 장치는 이럴 수밖에 없다.

 

그냥 다시 읽다 보니 <스토너>를 누가 연기하면 가장 설득력이 있을까 혼자 이런 저런 캐스팅 작업을 하다 콜린 퍼스로 낙찰을 봤다. ^^:; 제시 홀에 입성하던 신입생의 풋풋한 연기까지 가능할 지는 콜린 퍼스의 지금 나이로 상상하기 힘들지만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로지르는 스토너의 삶은 콜린 퍼스가 충분히 잘 소화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캐서린 역이 잘 안 떠오르고 점점 건조해지고 냉담해지는 아내 이디스는 왠지 도도하고 귀족적인 기네스 펠트로가 떠올랐다.

 

이제 스토너가 퇴임을 저울질하며 암선고를 받는 말미에 이르렀다. 이제 스토너는 곧 죽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 존 윌리엄스는 철저히 스토너의 시선으로 스스로의 죽어가는 과정을 그려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침표는 나에게 주어질 것이기도 하다. 이 남자의 삶은 갸륵했지만 무의미하지는 않다.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실패했고 학문적으로 성실하고 진지하게 열정을 쏟아부었지만 큰 성과가 없었다. 끝까지 가르치고 싶었지만 병마 앞에서 좌절당했다. 그러다 마침내 홀로 죽게 된다. 모든 세부의 사항들을 개인적인 것들로 치환하면 커다란 도식은 우리 모두의 것과 닮았다. 끊임없이 시도하고 좌절하고 실망하고 사랑하고 헤어지다 마침내 작아져 죽을 것. 당연한 듯도 한데 이렇게 한 사람의 삶으로 형상화하면 자꾸 서럽다. <스토너>는 서러운 이야기다. 결국 서러워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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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6-08-06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이란 게 참 안타까울 때가 있는 것이, 이 여자다 (혹은 남자다)라고 생각해 결혼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이 여자가 아니라 저 여자인 겁니다. 이럴 때가 참 안타깝지요. 하지만 십년 넘게 잘 살아놓고 젊은 여자를 찾아가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아니다 싶으면 바로 관둬야지, 누릴 건 다 누리고 늙었다고 박대하는 거 아니겠어요.... 블랑카님 리뷰는 늘 재미와 깊이를 모두 느끼게 해줍니다.

blanca 2016-08-06 21:43   좋아요 0 | URL
다른 남자들의 불륜에는 다 부르르 떨면서 스토너는 아내가 아니라 이 남자한테 감정 이입이 되는 모순이 ㅡㅡ;; 작가의 저력인 것 같아요.

다락방 2016-08-07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헌사는 정말 뭉클하죠. 감사함과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한 게 아닌가 싶어요. 스토너가 좋은만큼 이 글도 좋으네요, 블랑카님.

blanca 2016-08-08 10:38   좋아요 0 | URL
언제 봐도 뭉클해요. 다락방님의 여행기 기다립니다. 여기는 정말 가마솥이에요. 흑

앤의다락방 2016-08-17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중엔 엉엉 울면서 마지막페이지를 덮었던 기억이 나네요ㅜ 또 다시 읽고픈 책이었는데..
다시 읽어야지 하곤 실천하진 못했어요.
꼭 한번 다시 읽고자 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답니다.
오랜만에 북플와서 이런 리뷰보니 정말 반가워요.
그리고 요즘 책읽기를 게을리 했었는데 다시금 불끈! 하게 하네요^.^

blanca 2016-08-18 15:13   좋아요 0 | URL
앤의 다락방님, 저는 이 책이 너무 좋아서 (서머싯 몸의 `면도날`이 베스트였는데 밀어내는 중) 원서로 천천히 둘을 같이 놓고 다시 읽었어요. 역시나 좋았어요. 그리고 작가가 어쩌면 소설을 가장한 자신의 내밀한 얘기를 완전히 고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심증을 지울 수가 없더라고요. 완전히 만들어 낸 이야기라면 어떻게 이럴 수 있겠는가, 싶은.

앤의다락방 2016-08-18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꼭 작가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읽다가 나중엔 작가의 이야기라고 믿게 되어버렸어요. 저만 그런생각을 했던게 아니었군요! 지금 blanca님의 댓글을 읽고선 제가 이때까지도 그렇게 믿고 있다는 걸 알았네요. ^.^ 저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당장!ㅋ

blanca 2016-08-19 13:25   좋아요 0 | URL
<아우구스투스>가 나왔다니 얼마나 기대가 되는지.. 죽음을 가기 싫은 여행이지만 또 가고 싶어지는 그런 초조감으로 그린 대목에서 무릎을 쳤어요. 정말 그럴 것 같아요. 사랑도, 헤어짐도 죽음도 이 작가는 픽션이라는 장치를 뛰어넘은 것 같아요. 이미 넘어가 버리면 다시는 넘어올 수 없는.. 나이가 아주 많이 들어 죽음을 앞두고 그가 그린 죽음을 다시 한번 읽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