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 만병의 황제의 역사
싯다르타 무케르지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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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정중앙에는 자그마한 붉은 게가 상대적으로 커다란 '암'이라는 불길한 제목 아래 있다. 고대 그리스의 게를 뜻하는'카르키노스'는 암의 어원이 되었던 기억을 간직하기 위하여 다시 그것을 둘러싼 역사를 풀어내려 한다. 이것은 '암'의 전기를 표방하고 있는 책이다. 마치 암은 살아 숨쉬는 존재가 되어 연대기를 엮어 나갈 힘을 얻은 듯하다. 그래야 이 엄혹하고 처절한 '암'과 인간의 쫓고 쫓기는 싸움의 이야기는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질병은 삶의 어두운 쪽, 더 성가신 시민권"이라는 수전 손택의 이야기는 그녀 자신이 몇 번이나 실제 획득했던 것이기도 하다. 그녀는 그 어두운 자의 왕국에서 두 번이나 건강한 자의 왕국으로 넘어왔다 끝내 그곳에 다시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 그것은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야기이다. 싯다르타 무케르지의 이 책은 거기에서 바로 시작한다. 우리들 중 누구도 죽을 때까지 건강한 자들의 왕국에서 살 수는 없다. 죽어야 한다면 우리 자신의 성장과 노화에서 비롯된 그 필연적인 결과인 '암'과 조우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저자 자신이 바로 종양학자이자 실제 환자를 보는 의사다. 어느 날 세 아이의 엄마 칼라가 그 앞에 백혈병과의 사투를 예고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싯다르타는 암과의 싸움이 실제 이 혈액암에서 커다란 조언을 구하였음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 2004년의 칼라의 병은 1940년대 정력적인 병리학자이자 임상의인 시드니 파버가 백혈병 아이들을 구할 중요한 전환점의 중심에 있었던 정경을 떠올리게 했다. 그것이 글리벡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머나먼 여정을 돌아와야 했지만 여하튼 우리에게는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과거의 통로에서 이 에너지 넘치는 학자의 부활은 숱한 좌절에도 불구하고 분명 긍정적인 미래(이미 우리가 소유한 현재)를 예고하는 지점에서 빛난다. 이것은 정말 이야기다. 무기력하게 죽어가던 아이들을 부활시키는 그 힘으로 향해 절둑이며 걸어가다 심지어 그 자신도 암과 대치해야 했던 사람의 이야기로부터 그리고 그 사람과 아이들과의 사이에서 만들어지고 잊혀지고 기억되고 기념된 이야기들이 흘러가는 경로에 바로 '암'에 대한 불가사의한 이야기가 그 불가해한 성격이 드러난다.

 

암의 연대기는 비교적 우리가 숱하게 넘어지기는 했어도 적어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긍정적인 믿음을 가능케 했던 백혈병을 중심으로 서술되지만 그것이 그 전부를 포괄할 수 없다는 절망이기도 했다. 기원전 2625년경의 파피루스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것은 이윽고 수술로 전부를 도려내는 급진적인 수술법 앞에서도 엑스레이, 보조화학요법, 표적치료 앞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경로를 만들어 내고 부활하고 전이했다. 시드니 파버가 메리 래스커라는 정치적으로 기민하고 탁월한 로비 능력을 가진 매력적인 여성과 연합하여 미국 정부를 암과의 투쟁의 전면에 나서게 한 시간들이 블랙홀로 모두 빨려 들어갔다고 평가한다면 그것은 너무 냉정하고 아직 우리가 암을 모른다는 것을 중언부언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암은 투자한 노력, 시간, 열정, 좌절된 숱한 시도들의 총합 만큼 파악되고 정복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암'의 생존 방식은 우리의 그것과 너무 닮아 있고 철저히 우리에서 출발하여 우리에게 기대어 있기 때문이다.

 

암은 우리의 성장에 내재한 결함이다. 이 결함은 우리 자신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생리작용에서 성장-노화, 재생, 치유, 번식-에 의존하는 과정들을 제거할 수 있어야만, 자기 자신에게서 암을 제거할 수 있다.

-p.510

 

그래도 적어도 암의 본질에 대한 천착은 그 깊이와 넓이가 분명 확장되고 있다. 암 유전자가 사람의 유전체에 있고 그것이 촉발되는 것도 제어되지 않는 것도 이미 저마다의 유전적 특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발견은 모든 암 유전체의 지도를 작성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 유전체 지도가 암의 정복과 동의어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이 과정에서 제어장치가 제거되고 미친듯이 폭주하는 암세포의 성장과 전이의 경로를 효과적으로 방해할 방법에 대한 긴요한 힌트가 주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암세포로의 회귀는 결국 의학이 과학과 다시 친밀하게 소통하고 융합함으로써 반목하고 대치할 때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그것을 다룰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암의 성질과 역사,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좁은 골방 같은 연구실에서 때로는 동료들에게 철저히 배제되고 소외되어  외롭게 그것과 싸우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좌절을 밥먹듯이 했던 의사,과학자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삶들의 총집합이다. 자신에게 닥친 이 암초 앞에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알아가고 때로 의사들에게 치료에 시사점을 주었던 환자들의 이야기 또한 그러하다. 싯다르타는 그 자신의 이름처럼 해탈한 지점을 넘어선 관조 대신 "그러나 삼켜지지 않기란 불가능했다."고 고백한다. 아이 셋, 백혈병 앞에서 창백했던 엄마는 부활한다. 그러나 긍정적이고 대차게 희귀한 암에 대처하며 자신의 여명을 오년 가까이 확장했던 저메인은 두번 째 암의 공격 앞에서 패배하고 만다. 싯다르타는 그녀의 끝까지 무기력하게 암 앞에서 지지 않기 위하여 분투했던 모습에서 암과의 투쟁의 본질적인 면을 깨닫는다. 그것은 "이 질병을 따라잡으려면 , 계속 전략을 창안하고 재창안하고 , 배우고 다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암의 전기는 우리 인간의 그 끈질긴 재생력의 은유에서 출발하여 다시 그 지점으로 돌아온다. 싯다르타 자신도 이것은 그 '무엇'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누구'에 대한 이야기 같았다고 이야기했다. 모두 절망했던 세기를 뚫고 나왔던 의사의 이야기로부터 끝내 패배해야 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패배를 당당하게 거부했던 환자의 이야기로 끝맺는 '암'의 이야기는 아직 그 전기가 완성되지 않았음을 그리고 그 결말은 열려 있음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질병을 은유로 변질시키는 것을 경계했던 수전 손택의 질병의 왕국 이야기의 인용으로부터 시작했던 이야기는 그럼에도 우리 몸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면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는 이 이야기를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의 삶과 결코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만다.

 

어느 날 평온한 일상을, 그 크지 않았던 기대들을, 약속들을 모조리 무참히 짓밟고 마는 암선고를 받은 가족, 친척, 친구. 희망과 절망을 오고가다 미처 체념을 다 끌어안지도 못한 채 이제는 번복할 수 없는 곳으로 급작스러운 배신처럼 떠나 버리고 마는 그 아팠던 결말. 인간의 생로병사가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그 오류들이 존재의 결말이라고 해도 적어도 이러한 무력한 이야기들의 무한반복의 궤도에서는 걸어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생을 꿈꾸어서도 무한 존재를 긍정해서도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바랐던 그 숱한 내일들이 예상하지 못한 틈새로 무참히 짓밟히는 그 통절한 절망 앞에서 삶과 존재 자체의 의미를 포기하게 되는 제왕의 권력을 그것에 주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희망의 이야기도 과학의 승리에 대한 면류관도 아니기에 그 마침표는 더욱 씁쓸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든 어제보다는 더 알아가고 있다는 그래서 포기하지 말자,는 다짐이기도 하기에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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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6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6 1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6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5-10-06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 있었네요.
누구든 언젠가 이런 책 한번쯤 읽어 둬야할 것 같아요.
예전엔 암이 특별한 사람한테만 걸리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너무나 흔한 병이 되어버렸어요.
지금은 예전보다 보장도 잘되있고, 예후도 좋고 생존률도 높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 암에 걸리지 않은 것이
언젠가 나도 걸리겠지 하는 생각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 같아요.
생존률만 높아졌다 뿐이지 낫기까지의 과정은 여전히 환자들에겐
힘든 과정인 것 같아요.ㅠ

blanca 2015-10-06 13:30   좋아요 0 | URL
아, 스텔라님, 저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암은 특히나 특별한 병이 아니라 누구나 부딪힐 수 있는 병이더라고요. 그 전 단계에서 계속 관찰해야 되는 경우도 많고요. 이 책을 읽고 나니 더 인간의 몸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이 더 불가사의하게 느껴져요. 제발 힘든 과정이 어떻게든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되었으면 좋겠어요.

희선 2015-10-14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암 잘 낫는다고 해도 여전히 그걸로 죽는 사람이 많군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니... 그랬겠죠 지금은 사람이 오래 살아서 암에 걸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거군요 그 생각을 하면 어쩐지 무섭기도 하네요 무서워하기보다 알아야 할지도 모를 텐데...


희선

blanca 2015-10-14 14:03   좋아요 0 | URL
아직 알아가는 단계인 듯해요. 정작 알았다고 해도 이제 또 그것과 어떻게 싸워야 할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 숙제가 또 있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영혼뿐 아니라 인간의 육체도 알면 알수록 신비롭고 어려운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