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삶을 편견 없이 또 어떤 선입견에 기초한 재단 없이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기란 어쩌면 하나의 헛된 기대이자 망상, 무모한 시도로 결론나고 말지도 모른다. 시간의 풍화 속에 바랜 사실 들은 그 자체로 마멸, 퇴색되어 남을 것이고 또 어떤 선후 관계나 전후 상황이 소거되고 남은 것은 중립적이고 객관된 진실이 아니라 얼개가 무너진 쇠락한 잔해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하필 그 누군가가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누구라면, 내가 증오하고 반면교사로 삼고 싶은 이라면, 그의 일생을 내가 복기하는 자체가 그저 그 '누군가'를 빗대어 나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몸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한계를 어떻게든 뚫고 나가려고 하는 그 처절한 노력이 비어져 나올 때 우리는 비로소 수긍할 수 있다. 아니 수긍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시인 안도현이 쓴 백석의 평전이 그러한 한 가지 예가 될 수 있을 것같다. 솔직히 유명한 시인이 줄곧 존경하고 사랑해 왔던 게다가 북한에서 중년과 말년을 보내고 사망한 시인의 삶을 복원하였다 했을 때 어떤 가정,느낌, 감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오해했다. 하지만 막상 안도현 시인이 백석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하여 백석을 다시 읽는 일환으로 복원해 낸 그의 평생은 최대한 드러난 진실, 그것을 단초로 추측할 수 있는 것들의 망을 벗어나지 않기 위한 노력들이 두드러졌다. 그 틈새에서 빠진 것들에 대한 상상의 몫은 오롯이 우리들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읽기이자, 백석과의 만남의 일환이 될 것같다.

 

 

 

 

 

 

 

 

 

 

 

 

 

 

 

 

 

 

해방 이후 만주에서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로 귀향하는 백석의 행로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는 이윽고 오산학교 앞에서 하숙을 치며 생활한 부모 밑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는 그의 유년기와 오산학교 시절로 회귀한다. 일본 유학을 거쳐 조선일보 기자로 재직하며 평생의 지기들과 실패하는 첫사랑으로 남게 되는 여인과의 만남 들이 생생하게 시인의 필체로 떠오른다. 군데 군데 삽입되는 그의 시들은 평북 방언들로 처음 대할 때는 어렵게 들리지만 몇 번 되뇌이면 무어라고 언어화하기 힘든 친밀감과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눈과 귀와 마음의 비늘을 벗겨낸다.

 

그러나 무엇보다 백석의 전성기는 함흥의 영생고보 영어 교사 시절인 듯하다. 그때의 모습은 제자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각인되고 추억된다. 올백 머리, 최신식 양복, 50 명의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단번에 매치하고 출석을 부르는 놀라운 기억력, 출퇴근을 나귀로 하고 싶어하는 엉뚱하고 낭만적인 모습. 그리고 평생을 그를 그리워하며 여든이 가까운 노구를 이끌고 그에 대한 추억, 사랑, 아쉬움을 술회했던 함흥권번 소속의 기생이었던 자야와의 만남. 그녀의 백석과의 로맨스는 그녀와 원고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함께 집필하다시피 한 시인 이동순 교수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

 

 

 

 

 

 

 

 

 

 

 

 

 

 

시인으로서의 백석의 쇠락은 해방 이후 그가 고향인 북한에 남음으로써 시작되는 듯하다.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그는 예전 같은 아름다운 토속의 방언으로 된 감각적이고 전아한 시들을 더 이상 발표하지 못한다. 대신 아동을 대상으로 한 동시들, 러시아어 문학 작품 등의 번역 등에 매진하다 북한에서 가장 추운 지방의 하나인  삼수의 협동농장에 현지파견을 나가게 된 백석은 몸에 익지 않은 육체 노동을 하며 젊은 시절 영롱한 문학혼이 응축되어 있던 그만의 시어 대신 사회주의 체제에 어느 정도 복무하는 교조적이고 선동적인 시 몇 편을 남긴다. 북에서의 그의 문학은 사실 문학이라기보다는 어떤 생존을 향한 몸짓 같아 안쓰럽다. 죽는 그 날까지 시인의 이름을 잃어버린 그의 생애를 한정된 자료로 추적하며 안도현 시인은 그러나 섣불리 그의 삶이나 문학적 성과를 단정짓지 않는다. 시인의 이름을 잃어버린 자연인으로서의 그의 삶의 의미나 무게에 대하여 말을 아끼는 안도현 시인의 모습은 단정한 말줄임표 같아 와닿는다.

 

백석이 태어나 자라 늙고 죽은 시대는 유달리 개인의 삶을 질곡으로 치닫게 할 우여곡절이 많은 시공간이었다. 많은 작가들이 일본에 협력하거나 이념에 복무하기를 강요받았다. 그가 적극적으로 시대의 격류에 저항하거나 야합한 흔적은 없지만  그 누구보다도 시인의 표현처럼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려 했다. 그를 내리 눌렀던 질곡의 삶도 그 자체도 가고 난 지금,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첫눈이 내리는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말은 백석 이후에 이미 죽은 문장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오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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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 2015-01-13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빨간책방 듣고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아직 주문못한책이예요
어제 재방으로 듣고 박씨봉방은 검색해서 베껴쓰고 혼자읽어보고 했는데
넘 좋고 쓸쓸하고 슬픈것이 머랄까 이런느낌이 행복한거라고 하려고요

blanca 2015-01-14 15:53   좋아요 0 | URL
아, 이 책이 빨책방에 나왔었군요! 맞아요, 저도 시는 문외한인데 백석시는 방언 때문에 정확하게 의미를 못 알아차려도 그냥 읽는 것만으로도 시란 이런 것이구나, 싶어요.

Nussbaum 2015-01-14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그는 단호하다기 보다는 때론 엉뚱한 구석이 있는 선생님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치만 눈빛은 꽤나 날카롭고 말하는 문장 사이에 나오는 다양한 생각들은 매우 지적인 것이어서 학생들이 그에 대해 받은 인상은 꽤나 강렬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침 책장 뒤에 백석 시집이 있길래 펼쳐보았더니 2010년 어느 커피숍에서 읽었는지 커피 영수증이 있네요. 살짝 바랜 종이가 지난 날을 거스릅니다.

이 밤에 통영, 흰 바람벽이 있어, 여우난골족 같은 시를 뒤적이네요.

blanca 2015-01-14 15:55   좋아요 0 | URL
엉뚱하기도 하고 좀 결벽성도 있고 학생들이 꽤나 고생 좀 하게 한 영어 선생님이었다고 하네요.^^ 맞아요, 두고 두고 백석의 수업 시간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더라고요. 아! 저는 백석 시집에서 엉뚱한 채소 이름(장볼 것) 잔뜩 적은 메모 발견했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