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예전에 참 많이도 걸어다녔던 것같다.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다 집 근처 학교를 두고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배정되거나 해서 혼자서 혹은 친구들과 타박 타박 때로는 비도 맞고 때로는 눈도 맞으면서 잘도 걸어다녔다.

 

딸아이를 업고 안고도 사방팔방 잘도 걸어다녔다. 아기띠 밖으로 비어져 나온 손과 발을 무심코 만져보거나 그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거나 하는 낯선 이들을 만나면서.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걷기'가 뚝 끊겼다. 운전을 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를 업으면 이제 허리가 아파서 등등의 변명을 대면서. 며칠 전 무심코 이 책을 기대없이 펴 들었다. 와, 신기했다. 어떤 책인지 모르는 와중에 만난 책, 마치 아주 친절한 철학 선생님의 찬찬한 수업을 듣는 것 같은 기분. '걷기'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라고까지 이야기할 필요도 없이. 그냥 랭보도 루소도 소로도 칸트도 이렇게 '걷기'라는 단순하고도 평범한 주제로 교차시키며 이렇게 길게 늘이지 않고도 전 생애를 보여주듯이 이야기해 줄 수 있다니. 난 이제야 랭보가 걸핏하면 집을 나오던 가출 청소년이었다는 이야기를, 위선적이었다는 평도 들었던 루소가 마흔 이후로 자신의 지난 날 마차 위에서 보낸 화려한 삶을 정리하고 잘 늙어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는 것을, 니체가 미쳐가고 있을 때 어떻게 돌아온 아들을 어머니가 헌신적으로 보살폈는 지를 알게 되었다.

 

 

 

저자는 프레데리크 그로. 파리의 철학교사. 미셀 푸코 연구가란다.

 

걷다 보면 어떤 사람이 되어 하나의 이름과 하나의 역사를 가지고 싶다는 유혹을, 하나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게 된다-p.17

 

콩코드의 연필 공장을 하는 사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소로의 이야기는 저자의 '걷기예찬'의 가장 대표적인 예증이 될 것이다. 경제적 계산 대신 더 많은 돈을 벌려고 애쓸 때 내가 순수한 삶에서 잃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계산하자는 소로의 이야기는 저자의 그것이기도 하다. 물론 아주 당연하고 아주 진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가 삶의 의미까지 희생하며 이 세계의 부속품이 되려고 자원하겠는가. 어쩔 수 없는 시스템 속에 들어가며 이러한 자각은 때로 괴로운 소외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당연한 불가피한 한계 속에서 뛰어넘고자 하는 저 지향을 보여주는 이러한 책은 언제나 매혹적이다. 그냥 꼭 걷기가 아니더라도 그가 이야기하는 니체는 카프카는 간디는 다시 한 번 감동적이다. 수업 시간에 그렇게나 외워댔던 이 사람들의 그 업적의 편린들은 이 저자의 시선 끝에서 저마다 꿈틀거리며 다시 한 번 산다. 진짜 철학의 아주 작은 부분이나마 제대로 맛본 기분. '걷기'는 단지 하나의 연결고리이자 은유인가 보다.

 

 

 

 

생 자체를 순례에 비교한 것은 사실 이미 진부해져버린 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부하다'는 것은 검증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이 단단한 곳에 결박당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는 힘들다.

 

에드워드. 이 도자기 토끼 인형은 소위 차도남이었다. 소녀 품에서 사랑받다 여러 사람, 각종 상황에서 방황하다 장난감 가게로 돌아오게 된 그가 마침내 맞닦뜨린 이는.

 

여기까지는 그래서? 였다.

장난감 가게 안에 들어와 이 인형 앞에서 서 있던 여자아이의 엄마. 에드워드의 원주인. 커버린 애빌린. 사랑을 믿지 않던 도자기 인형 앞에 돌아온 사랑.

 

반전도 아니건만 눈물이 핑 돌았다. 나에게도 에드워드 같은 인형이 있었다. 비록 비주얼은 훨씬 못 미치는 사람과 원숭이를 섞은 묘한 인형이었지만 나의 뽀송이.

 

엄마는 어느 날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져 버린 뽀송이를 처치하셨다. 울고 불고 했던 기억. 엄마에 대한 원망. 나는 고맘 때 내가 이름을 붙이고 재워주는 뽀송이에게 에드워드 같은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엄마는 나의 그런 마음을 읽어주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뽀송이는 어디로 갔을까. 에드워드처럼 온갖 역경, 온갖 사람 다 만나고 다시 나에게 돌아올 수는 없을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 책의 결말이 질투났다. 모든 잊혀졌던 것들은 돌아온다고 하는 그 은유에서 나도 자유로울 수 없나 보다. 자꾸만 돌아오는 기억들. 사랑을 믿지 않고 오만했던 도자기 인형 에드워드 툴레인의 긴 순례가 남긴 교훈 대신 그 인형을 잊고 지내며 늙어갔던 소녀에게 결국 돌아온 유년시절의 기억을 환기하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일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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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4-06-10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저도 걷기 참 안 하는 편이에요. 주로 차로 이동하고 게을러지네요.
볕도 바람도 좋은 시간대에 아기 유모차 태워서 조금씩 걸어보세요^^ 분홍공주도 유모차에 손 얻고.
첫번째 책이 끌립니다. 담아가요^^
건강한 날들 보내요 우리^^

blanca 2014-06-11 10:32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요즘 아침은 좀 걷기가 선선한데 오후는 더워 힘들더라고요. 공주님은 벌써 잠깐 유모차 놓아 두고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가면 그거 밀고 멀리 도망가버린답니다.^^;; 아, 정말 좋은 덕담이네요! 건강한 날들! 명심할게요, 프레이야님.

페크pek0501 2014-06-13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칸트가 산책을 하면 동네 사람들이 칸트를 보고 시계를 맞추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매일 규칙적으로 걸었다는 거죠.
저도 걷기를 좋하해서 밥 예약해 놓고 해 질 무렵에 걸어요. 소화불량으로 시작되었는데 이젠 습관이 되어 버려
걷고 싶어지기도 한답니다. 물론 걷는 게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요.
하지만 일단 걸으면 기분이 바뀌어 버려서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의사의 말이, 걷기만 해도 머릿속 스트레스가 밖으로 빠져 나온다고 해요.
그러니 걷기는 몸 건강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좋다는 거죠.
걸으면서 길거리 풍경을 보는 재미를 이젠 즐길 줄 안답니다. 저는 걷기 예찬론자예요.
우리 많이 걸어서 몸도 정신도 건강합시다. ^^

blanca 2014-06-17 10:08   좋아요 0 | URL
페크님, 댓글이 늦었어요. 저도 그러고 보니 걷기를 통해서 위염도 낫고 더 건강해진 것 같아요. 점점 더워져 그러지 못한다는 게 아쉬워요. 요 며칠 그래도 아침, 저녁으로 선선하니 좋았어요.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운동화 신고 더 멀리 더 많이 걸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