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어른 -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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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만난 지 얼마 안 되면서부터 소소한 부탁들을 해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러한 부탁의 경중이 지극히 주관적이라 헷갈렸다. 내가 너무 빡빡한가. 그 정도는 들어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던 시작이 물꼬를 트고 이윽고 무리한 것들에 대한 요청이 조금씩 밀려들기 시작했다.  때로 내가 그녀에게 부탁하면 좋은 일들도 있었지만 이내 뒤로 물러서게 됐다. 그 부탁을 함으로써 더한 것들이 밀어닥치지나 않을까, 하는 소심함이 나를 무르춤하게 했다. 그러니 관계에서 도타운 정대신 자꾸 불쾌함과 두려움이 끼어들었다. 단지 그녀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러한 그녀와의 만남이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일종의 경계심을 만들었다. 혹시, 이 사람도 또?

 

옛날부터, 여성 친구에게 빚을 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 있었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그녀들에게는 손톱만큼의 악의도 없지만 일을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사소한 선물에 과도하게 감격하거나 별생각 없이 큰 희생을 치르기도 하고.

 그것은 때로는 미덕일 수 있지만 때로는 아주 난감한 일이다. 예를 들어 화분을 한 번 맡긴 일이, 알게 모르게 하나에서 열까지 도와주었다는 인상으로 바뀌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에쿠니 가오리는 이러한 망설임, 두려움에 대해 예리하게 표피를 벗겨낸다. 그런 것이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녀는 유부녀지만 과거의 연인들을 한 명은 제외하고 다 남성 친구로 만들어 버리는 친화력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러한 경계의 불분명함이 없다는 것이 친구 남자들과의 관계의 강점이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다만 이 친구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피곤함은 절대 함께 나누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그것은 배우자를 위해 남겨두어야 한다고. 그녀 기준에서는 절대 그들과 불륜으로 나아갈 위험성은 없다는 것이다. 음, 작가이고 남편과 떨어져 살고 일본인인 그녀의 친구들과의 관계는 여기 한국에서 받아들여지기는 조금 힘들지만 여하튼 그녀의 솔직 담백한 고백들은 그녀의 투명하고 속살거리는 단문들로 감싸여 매력적인 것이 사실이다. 여자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 느낌이랄까. 몰랐는데 바로 이거구나! 싶은 깨달음의 관문 역할. 무엇보다 그녀의 언어들은 쉽고 짧다. 호흡을 구태여 가다듬지 않아도 그녀의 이야기 전체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외롭거나 심심할 때 부담없이 불러올 수 있는 친구. 게다가 그 친구는 아주 예의바르다. 자신이 떠나야 할 때를 정확히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조금 건조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본질적인 의미에서 스스로를 불량하고 사치스럽고 악의적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알프스 소녀 하이디 같은 선량함으로 한번 세상을 살아보고 싶다고 소망한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들에서 줄곧 살아 숨쉬는 그녀들의 그 투명한 매력들을 생각할 때 그녀들을 만들어 낸 에쿠니 가오리가 유독 불량하고 악의적일 것 같지는 않다. <워터멜론 슈가에서>에 나온다는 아이디아뜨 근처에 가보고 싶다고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을 거라 두렵다고 고백하고 욕조에서 매일 두 시간 동안 있다는 고백은 이 중년의 여인을 상당히 귀엽게 보이게 한다. 어린 시절 여동생과 방 한 곳에서 태풍을 맞아들이는 정경, 아버지와 가족 신문을 만드는 풍경은 동화책의 삽화처럼 사랑스럽다.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는 쉽게 쓰인 것 같고 그 만큼 쉽게 읽히지만 쉽게 가시지 않는 잔상이 있다. 누구나 그녀처럼 생각할 수도 있고 그녀처럼 곧잘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딱 그녀처럼 쓸 수는 없다. 소설을 쓰는 작가가 이다지도 솔직 담백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에세이'이라는 글의 장르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약간의 가식과 적당한 가면을 찾기 마련임에도 그러지 않는 도발이 있는 글들. 한밤중에 꼭 부부싸움을 하고는 밤새 열려 있는 북센터에 들어가 책냄새를 맡고 나와 자신이 다녔던 중학교와 고등학교 앞에서 그때는 이런 날이 올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는 고백을 하는 여자.

 

그게 에쿠니 가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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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4-01-03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그녀처럼 생각할수도, 곧잘 이야기할수도 있겠지만, 딱 그녀처럼 쓸수없다는 말에 크게 공감해요~
참 쉽게 쓰고 쉽게 읽히는 듯 한데, 잔상 또한 오래 남기는 걸 보면, 깨끗하고 따뜻하고 배부르면, 행복하다는 통찰을 굳이 잘 포장해 보여주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베어나오게 쓰는 작가 같달까요~
그 지점 때문에, 아싸 가오리 씨가 매력적이기도 하고, 피하고 싶기도 하고,,, 이중적인 감정을 느껴요~

아,, 블랑카님의 문체로 가오리 씨를 해석해 보니, 아삼삼 멋지네요~

blanca 2014-01-03 16:46   좋아요 0 | URL
에쿠니 가오릭 지나치게 얕다,고 생각하는 의견들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무언가, 좀 무겁지 않은 그녀만의 그 단문들이 편안해요. 지나치게 심각하거나 젠체하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신간이 나오면 꾸준히 읽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