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길가의 퀼트공방을 자꾸 기웃거리다 급기야 저기에 들어가서 바느질을 하겠다고 했다. 물론 어린이도 가능한 분위기였지만 아직 취학전 아이는 없는 것같다. 몇 번 망설이다 데리고 들어가니 강사가 조금 난감하다는 표정이지만 한번 해보자고 한다. 처음에는 헤어핀부터 시작해서 아이는 매일 바느질을 한다.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듯 아이는 매일 그 공방으로 쏙 들어가 서툰 홈질을 해서 이것저것 만든다. 공방에는 초로의 아주머니도 젊은 아이 엄마도 초등학생 들도 온다. 다들 고개를 숙이고 가방을, 지갑을, 인형을 만들면서 적당히 함께 있다는 느낌 속에서 안온하다. 그네들이 유일하게 부담없이 참견할 수 있는 대상이 아이다. 단지 조그만한 아이가 함께 바느질을 한다는 이유로 쏟아지는 관심. 엄마는 어디에 있냐는 질문. 엄마는 몇 걸음 떨어져 엉덩이가 터질듯한 딱딱한 의자 위에서 책도 읽고 이리저리 기웃대기도 한다.

 

11월 하순의 어떤 아침을 상상해보시기를. 벌써 20년도 전, 겨울이 다가오는 조짐이 보이는 아침을. 한 시골 마을, 옆으로 널따란 낡은 집의 부엌도 머릿속으로 그려보라. <중략>

백발을 짧게 자른 여인이 부엌 창가에 서 있다. 여인은 테니스 신발을 신고 여름옷처럼 가벼운 무명 원피스 위에 모양없는 회색 스웨터를 입고 있다. 체구가 작고 당닭처럼 씩씩하지만, 젊었을 때 오랫동안 병을 앓아 여인의 어깨는 가련하리만큼 구부정하다. 남다른 얼굴은 링컨의 얼굴과 별로 다르지 않을 만큼 볼이 울퉁불퉁 홀쪽하고 햇볕과 바람에 찌들어 바랬다. 하지만 생김새가 섬세하고 뼈대가 고우며 황갈색 포도주 빛깔의 눈은 소심해 보이기도 한다. "어머나!" 여인이 외치자 입김이 되어 창문에 어린다. "과일 케이크를 만들기에 좋은 날씨네!"

- 트루먼 커포티 <크리스마스의 추억>

 

이 끈적끈적한 여름, 트루먼 커포티는 자신이 곱 살때 이미 예순 살이 넘었던 사촌 숙이 크리스마스 케잌을 굽던 그 정경을 영롱한 구슬을 내밀듯 쓰윽 가지고 온다. 너무 아름답다. 아이가 바느질에 집중하는 시간, 나는 내처 그 정경 속으로 또르르 굴러들어간다. 어머니, 아버지를 떠나 친척 집에 맡겨진 외로운 아이는 오랜 독신의 조금 모자란 듯한 사촌 할머니와 마음 깊이 교감한다. 그들이 수레를 끌고 바람에 떨어진 피칸을 줍고 크리스마스에 쓸 과일케이크를 만들 기금을 모아 마침내 그 케잌을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풍경. 그리고 선물로 서로 연을 주고받고 그 연을 날리는 대목. 소년이 할머니가 아니라 '친구'라고 불렀던 사촌 숙은 "세상을 떠날 때 오늘의 광경을 내 눈에 담아 가고 싶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눈물겨운 마지막. 소년은 성장하고 '친구'는 노쇠해진다.

 

이게 우리가 함께 보낸 마지막 크리스마스다.

 삶의 행로가 우리를 갈라놓는다.

-p.325

 

이 단편집에는 트루먼 커포티의 자전적인 기록이 군데군데 별처럼 박혀 있다. <추수감사절에 온 손님>은 '리'에게 헌정되었고 가장 비열한 소년으로 그려진 오드 헨더슨의 이야기가 왜 유년 시절 이웃 친구이자 <앵무새 죽이기>의 작가 '리'에게 헌정되었는지 고개가 좀 갸웃거려지기도 하지만 그의 유년 전반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던 사촌 숙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에서도 나온다. <어떤 크리스마스>에서도 자신을 버리다시피 한 아버지와의 어색한 재회를 뒤로 하고 사촌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소년의 소망이 나온다. 면 "첫 별을 보고 또 다른 별을 보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작가의 토양은 이러한 너그러운 유년의 사랑에 기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꼭 부모가 아니어도 소년의 엉뚱함, 치기 들을 온전히 받아주었던 그러한 완충지대가 오늘날 아직도 그 소년의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감동받게 되는 유인이 된 것같다.

 

아이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없다면 그런 것들을 찾아주고 싶다. 트루먼 커포티의 이야기. "살아 있다는 것은 물고기가 뛰노는 갈색 강과 한 여자의 머리카락에 내려앉은 햇빛을 기억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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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07-31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어린 따님이 꼬물꼬물 퀼트하는 모습 상상만으로도 사랑스러워요~~~~
나이 차는 고정관념인데 자꾸 의식하게 되네요. 일곱살과 예순살의 교감...도 참 멋진 일이죠.
어제 천안 호두과자 한개만 사니까 아들내미가 할머니꺼는? 하는데 부끄럽더라구요. ㅎ

blanca 2013-07-31 18:35   좋아요 0 | URL
세실님, 저는 바느질에 취미가 없어 솔직히 학창시절 친구들 덕을 많이 봤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이제 막 시작하고 싶은데 너무 못해서 솔직히 면이 안 서 시작을 못하겠어요. 이것도 못하냐,고 강사가 놀랄까봐요--;; 책을 넣어 다니는 가방을 하나 시도해 보고 싶긴 한데... 자수도 배우고 싶고요. 저도 할머니와 교감을 많이 나눈 편이라 마지막에 소년이 숙과 헤어지는 장면이 절절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삶의 행로가 우리를 갈라놓는다, 이 표현. 너무 슬퍼요. 할머니 잘 챙기는 아드님 저는 그러지 못했기에 상대적으로 너무 부럽고 부끄러워요.